[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말하기 어려운, 원망하기 어려운
2017-12-04
글 : 이다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말하기 어려운, 원망하기 어려운

입 밖에 꺼내지 않고 담아둔 감정.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의 사이토 다마키는 모녀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봤다. 사이토 다마키는 일본 쓰쿠바대학 사회정신보건학과 교수로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임상의다. 사이토가 모녀관계에 주목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은둔형 외톨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더 수가 많지만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더 철저하게 은둔하며 그 이유가 바로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가진 특수성을 들여다본다. 아버지와는 쉽게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면 어머니와는 대립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인 딸의 내면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깊게 침투해 있기 때문에, ‘아버지 죽이기’ 같은 ‘어머니 죽이기’라는 상징적인 관계를 끊고 나 자신이 성장하고 독립한다는 일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녀갈등의 바닥에 깔려 있는 정서는 사랑과 배려다. 공감하고 배려하면서 지배하려 든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딸이 신문사에 보낸 어느 투고 내용은 이렇다. 딸이 성인이 된 뒤에도 어머니가 지나칠 정도로 간섭한다. 가방을 뒤지고 전화 내용을 엿듣는다. 다른 상담 내용은 이렇다. 언니가 결혼하자 어머니는 “넌 절대 날 버리지 않을 거지?”라고 물었고, 그 말로 딸은 우울증에 걸렸다.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도 자주 볼 수 있고, 나 역시 경험했거나 주변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 대한 사이토의 분석은 이렇다. “어머니는 자신 안에 있는 딸의 부분과 어머니의 부분을 실제 모녀관계에 대입해 만족을 얻고자 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딸을 결박하려 들지요. 그 결과 딸은 어머니에게 느끼는 죄책감 때문에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여성이라면 무조건 결혼해야 하고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억압구조는 전에 없을 정도로 완화되고 있다. 그런데 왜 모녀관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가? 이전에 모녀관계 트러블의 원인으로 자주 제시된 것은 이렇다. 육아 컨트롤에 많은 시간을 쏟은 어머니는 딸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동시에 딸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과도한 간섭을 시도한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왜 어머니와 딸은 여전히 싸우는 중인 것처럼 보이는가.



최근 모녀갈등을 다룬 책들이 여럿 출간되었다. 가부장제에서 똑같이 억압구조에 놓인 피해자라면 왜 어머니와 딸은 갈등하는가를 주로 다룬다. 이 역시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사유의 결과일 것이다.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무엇일까. 남성으로부터 오는 억압과 여성으로부터 오는 억압은 어떻게 여성의 삶을 일그러뜨리는가를 고민하면서, 그전까지 쉽게 입에 올릴 수 없었던 어머니로부터 기인한 속박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논픽션들로는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의 사이토 다마키와 <종이달>을 쓴 가쿠타 미쓰요 등이 공저한 <나는 엄마가 힘들다>, <사는 게 뭐라고>의 사노 요코가 쓴 <시즈코 상>, 이시하라 가즈코의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아사쿠라 마유미·노부타 사요코의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 등이 있다. 김혜진의 소설 <딸에 대하여>는 어머니 관점에서 모녀갈등을 다루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에이미와 이저벨>은 애증이 뒤얽힌 모녀관계를 보여준다.



같은 여성으로 심리적 밀착감을 부지불식간에 갖게 되므로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진다 해도 딸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따르려고 하는 경향성을 띠기도 한다.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가 말하는 ‘BL(보이스 러브)을 지지하는 여성심리’에 대한 인용은 특히 흥미로운데 현재의 남녀관계의 형태에 무의식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읽는 장르라고는 하지만 그 불편함의 성격에 남녀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제 몫을 하는 남성이 되어 가족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억압 포인트 한 가지를 상대하면 된다면, 여성은 개개인이 본질적으로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부분이 저마다 다 다르고 그래서 연대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세심하게 숙고한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