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쏟아지는 거장들의 러브콜, 애덤 드라이버를 선택한 감독들
2018-05-29
글 : 심미성 (온라인뉴스2팀 기자)

애덤 드라이버

배우 애덤 드라이버는 데뷔 이래 쉼 없는 활동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HBO 드라마 <걸스>(2012)의 무심한 괴짜 ‘애덤’ 역할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로 그의 잠재력을 많은 감독들이 탐냈다. 아직 데뷔 10년도 채 되지 않은 애덤 드라이버. 이렇게 바쁘게 만들어진 그의 필모그래피엔 건너뛸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틴 스코시즈부터 노아 바움백과 짐 자무시까지. 소위 거장의 칭호로 영화 팬들의 필견 리스트를 만들어온 이 시대의 주요 감독들이 애덤 드라이버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왼쪽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애덤 드라이버는 데뷔부터 거장 감독들과 함께해 남다른 운을 과시했다. 첫 장편 데뷔작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11년 작 <제이. 에드가>. FBI의 창설자 J. 에드가 후버의 생애에 관한 전기영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나오미 왓츠 등 내로라하는 배우를 포함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떠오른 아미 해머가 주연을 맡았다. 애덤 드라이버는 주유소 관리인 ‘월터 라일’이라는 작은 역할로 첫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출발이 좋았던 덕일까. 그의 다음 영화 출연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2012)이었다. ‘사무엘 벡위드’라는 전보 통신원을 연기했다. 링컨 대통령의 전보를 해독, 발송하는 캐릭터다.

<제이. 에드가>의 애덤 드라이버 (왼쪽).
<링컨>의 애덤 드라이버 (오른쪽).

노아 바움백 (Noah Baumbach)

노아 바움백 감독

뉴요커의 양면적인 삶을 영화에 담아 온 노아 바움백과의 인연도 이 무렵 시작됐다. 190 센티미터에 가까운 큰 키에 개성 있는 마스크의 애덤 드라이버는 바움백과 함께한 두 편의 영화 <프란시스 하>(2012), <위아영>(2014)에서 지적인 매력과 함께 자유롭고도 괴짜 같은 면모가 뒤섞인 독특한 아우라를 뽐냈다.

(왼쪽부터) <프란시스 하>, <위아영> 포스터

노아 바움백은 <오징어와 고래>(2005)로 첫 연출 데뷔를 했지만 <프란시스 하>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27살 뉴요커 프란시스(그레타 거윅)의 삶은 총체적 난국이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룸메이트도 잃은 그녀는 무용수로 성공하고 싶은 거창한 꿈에 다다르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녀가 새로 머물게 된 거처는 부족함 없이 삶을 즐기는 힙스터 예술가 레브의 집. 애덤 드라이버가 연기한 레브는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프란시스의 20대를 더욱 초라하게 부각시키는 캐릭터다. 프란시스는 무용수의 꿈만이 아닌 현실의 사소한 관계 속에서도 괴리를 경험하는데, 시종 여유와 위트가 넘치는 레브를 만난 이후로 그 간극은 수도 없이 되풀이 된다.

<프란시스 하>의 애덤 드라이버 (왼쪽).

애덤 드라이버는 <위아영>에서 다시 힙스터 예술가를 연기했다. 뉴욕의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조쉬(벤 스틸러)와 그의 아내 코넬리아(나오미 왓츠)는 20대 커플 제이미(애덤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만나며 이들의 열정적인 삶에 매료된다. 40대 기성세대의 눈으로 바라본 제이미 부부는 빠르게 다양한 문화를 차별 없이 섭취하는 자유분방한 아티스트다. 두 부부는 함께 어울리며 격식 없는 친분을 쌓아 가지만, 조쉬 부부는 점차 이들의 깊이 없는 삶에서 길을 헤매게 된다. 애덤 드라이버는 <프란시스 하>의 레브와 <위아영>의 제이미가 되어, 넓고 얕은 이미지를 취하는 힙스터의 전형을 그려낸 동시에 주인공의 공허를 대비시키는 중요한 캐릭터를 담당했다. 드라이버는 “노아 바움백과 함께라면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다”며 그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위아영>의 애덤 드라이버 (오른쪽).

코엔 형제 (Coen Brothers)

(왼쪽부터) 에단 코엔, 조엘 코엔 형제 감독

<프란시스 하>의 국내 개봉이 2년 늦은 2014년에 이뤄진 탓에, 사실상 애덤 드라이버가 국내 영화 팬들에게 얼굴을 각인시킨 건 <인사이드 르윈>(2013)이 먼저였다. 세계 최고의 형제 감독으로 거론되는 코엔 형제의 음악영화 <인사이드 르윈>에서 그는 이상하지만 귀에 쏙쏙 꽂히는 코러스를 불러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주인공인 무일푼의 뮤지션 르윈(오스카 아이작)이 참여한 광고음악 ‘플리즈, 미스터 케네디’(Please, Mr. Kennedy)의 녹음 장면. 익살스러운 창법에 괴상한 코러스를 얹은 이 노래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중독성 강한 곡이다. 뮤지션으로서의 자의식을 지키고 싶어 하는 르윈은 이 음악을 이해할 수 없고, 애덤 드라이버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가 우스꽝스러운 코러스 알 코디 역을 소화하면서 <인사이드 르윈>의 블랙 코미디에 유쾌한 분위기를 더했다.

<인사이드 르윈>의 애덤 드라이버 (오른쪽).

마틴 스코시즈 (Martin Scorsese)

마틴 스코시즈 감독

이후 애덤 드라이버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새 영화 <사일런스>(2016)에 참여한다. 엔도 슈사쿠의 원작 소설 <침묵>을 기반으로 한 <사일런스>는 범죄 드라마는 아니지만 스코시즈 감독이 오래도록 계획해 온 영화다. <사일런스>는 17세기의 일본, 천주교 박해가 한창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포르투갈의 신부 로드리게스(앤드루 가필드)와 가르페(애덤 드라이버)가 일본으로 떠난 스승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가 배교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일본 땅을 밟지만, 이들을 기다린 것은 처참한 박해 현실. 마틴 스코시즈는 <사일런스>를 통해 믿음이란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얼마큼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

<사일런스>의 애덤 드라이버 (왼쪽).

애덤 드라이버는 가르페 역에 몰입하기 위해 앤드루 가필드와 함께 수도원에서 7일간 수행하며 엄격한 규율과 침묵을 지켜냈다. 영화 촬영을 마친 후, 그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게 만들어준 영화다. 내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도 깨달았다”며 소회를 남겼다.

짐 자무시 (Jim Jarmusch)

짐 자무시 감독

뉴욕 인디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짐 자무시는 애덤 드라이버를 기용한 <패터슨>을 만든다. 버스 운전사 패터슨을 연기한 애덤 드라이버는 실제로 영화를 위해 버스 운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로써 그의 성(Last Name)인 드라이버를 실현했다는 농담도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내용이 바로 이와 같은 반복의 재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패터슨 시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매일 같은 패턴의 일상을 조명한 일주일의 시간을 담고 있다. 패터슨이 매일같이 써 내려가는 시의 각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끼어드는 자잘한 변주는 <패터슨>의 관람에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가 된다. 물론 감독은 아담 드라이버가 버스 드라이버 역할에 캐스팅 된 건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 한 편의 영상 시 같던 영화 <패터슨>으로 애덤 드라이버는 각종 비평가 협회상의 후보를 꿰차며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타게 된다.

<패터슨>의 애덤 드라이버.

제프 니콜스 (Jeff Nichols)

제프 니콜스 감독

현대인의 불안에 대한 고찰을 영화에 담아온 제프 니콜스도 애덤 드라이버를 선택했다. 그의 SF 영화 <미드나잇 스폐셜>(2016)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꼬마 아이 알튼(제이든 리버허)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구상을 초월한 힘을 다루는 알튼의 신묘한 능력은 종교 극단주의자들의 타깃이 되는데, 이들로부터 아들을 구하기 위해 부모는 도망길에 오른다. 제프 니콜스의 작품들에 꾸준히 얼굴을 비춘 배우 마이클 섀넌이 아버지 로이를, 조엘 애저튼이 경찰 루카스를 연기했다.

<미드나잇 스페셜>의 애덤 드라이버.

애덤 드라이버는 미 국가안보국 요원 폴 세비에로 활약했다. 정부의 부름으로 알튼을 추적하는 폴 세비에는 부드러운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며, 알튼이 마음을 여는 단 한 명의 국가 세력이기도 하다. 노아 바움백과의 작업에선 쿨하고 낙천적인 젊은 세대가 됐던 드라이버, 그가 폴 세비에가 됐을 때는 그의 개성 넘치던 얼굴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진중하고 믿음직스럽다.

스티븐 소더버그 (Steven Soderbergh)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저예산 독립영화와 할리우드 주류영화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스티븐 소더버그는 떡잎이 남달랐던 감독이다. 1989년 발표한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칸영화제에서 26살 최연소 나이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 그 후로도 <오션스 일레븐>(2001) 시리즈 외 다수 작품을 연출하며 유명세를 쌓은 그는 <쇼를 사랑한 남자>(2013)를 마지막으로 은퇴했으나 2016년, <로건 럭키>로 복귀한다. 채닝 테이텀과 함께 로건 형제를 연기한 애덤 드라이버는 다니엘 크레이그와 세스 맥팔레인, 케이티 홈즈, 힐러리 스웽크 등의 배우와 함께 인생 역전을 노리는 한탕 작전을 그린 케이퍼 무비 <로건 럭키>를 완성했다.

<로건 럭키>의 애덤 드라이버 (오른쪽).

외팔이 바텐더 클라이드 로건 역을 맡은 드라이버는 한 손으로 음료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 장면을 첫 테이크에서부터 완벽하게 해내 현장 스탭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극중 클라이드 로건은 이라크 파병을 두 번씩이나 다녀온 인물이다. 실제로 9·11 사건 이후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경력이 있는 그가 분한 클라이드 로건이라는 캐릭터는 스스로에게도 남다른 감회로 남았을 것이 분명하다.

JJ. 에이브럼스 (JJ. Abrams)

JJ. 에이브럼스 감독

TV 시리즈 <로스트>, <앨리어스>로 굉장한 성공을 거둔 JJ. 에이브럼스는 곧바로 <미션 임파서블 3>(2006)의 감독을 꿰찼다. 그는 이어서 <스타트렉>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시퀄을 연출하며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거듭났는데,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에서 새롭게 등장한 빌런 카일로 렌에 애덤 드라이버가 캐스팅됐다. 카일로 렌은 <스타워즈>의 주역 한 솔로와 레아 공주의 아들이다. <스타워즈>의 메인 빌런이지만 내면의 선함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갈등을 겪는 인물.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애덤 드라이버.

애덤 드라이버는 이 캐릭터에 매료된 까닭이 어느 정도 자신의 개인사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했다. 친부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고, 목사인 새아버지의 엄격한 교육하에 자랐다고 회고하는 그는 카일로 렌의 내면적 갈등을 스스로와 동일시하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드라이버는 카메라가 켜져 있지 않을 때도 헬멧을 쓰고 현실 세계와 관련된 상상에 빠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한편, 실제로 TV에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등 테크놀로지와 가장 거리가 먼 사람 중 하나인 애덤 드라이버가 공상 과학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또한, <인사이드 르윈>을 통해 만났던 오스카 아이작과 이 작품에서 적으로 재회한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카일로 렌.

테리 길리엄 (Terry Gilliam) / 스파이크 리 (Spike Lee)

(왼쪽부터) 테리 길리엄, 스파이크 리 감독

애덤 드라이버의 매력적인 영화 두 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테리 길리엄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와 스파이크 리의 <블랙클랜스맨>. 두 영화는 모두 올해 제71회 칸영화제에 소개됐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의 애덤 드라이버 (왼쪽).

미국 영화계의 탁월한 비주얼리스트로 꼽히는 감독 테리 길리엄은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 무려 30년을 바쳤다. 이 영화는 테리 길리엄이 1989년부터 구상해온 프로젝트였으며, 1998년에 첫 제작에 돌입했다. 그러나 홍수로 인한 장비 파손, 주연 배우의 건강 문제, 제작비 부족, 돈키호테 역을 맡은 배우 존 허트의 죽음 등 악재가 끊이지 않아 20년째가 돼서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어렵사리 완성된 영화는 이후로도 난항에 시달렸는데, 프로듀서와의 법적 분쟁으로 칸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초청되지 못하고 폐막작으로 선정되며 불투명했던 개봉도 겨우 올해로 확정을 지었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의 애덤 드라이버.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자신을 돈키호테로 알고 있던 노인(조너선 프라이스)이 광고 회사 임원인 토비(애덤 드라이버)를 산초 판자로 오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테리 길리엄은 애덤 드라이버를 “지금까지 찾아 헤맨 배우”라고 표현해 기대치를 올렸다. 제작 과정이 워낙 길었던 터라 길리엄은 “이 영화 완성하기 전엔 못 죽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공개된 영화는 “테리 길리엄의 후기 작품다운 판타지 영화”라는 미묘한 평을 남겼다.

<블랙클랜스맨>의 애덤 드라이버 (왼쪽).

스파이크 리는 <똑바로 살아라>(1989), <말콤 X>(1992) 등의 영화로 급부상한 감독이지만 2013년 미국판 리메이크작 <올드보이>를 발표하며 기세가 주춤했다. 흑인 영화 작가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고발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그는 <블랙클랜스맨>(2018)으로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영화는 1970년대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단에 잠입한 흑인 형사 론 스툴워스의 에세이를 바탕으로 했다. <블랙클랜스맨>은 실존 인물의 일화를 코믹하게 그린 버디 무비로 만들어져, 심각할 수 있는 소재에 종종 유머를 접목하던 스파이크 리의 시도가 돋보이는 또 하나의 영화가 될 것이다. 칸영화제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까지 수상하며 기대를 모은 가운데, 애덤 드라이버는 주연인 유태인 잠입 경찰 역으로 활약했다.

짧다면 짧았을 그의 배우 생활에 이 정도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는 건 실로 놀랍다. 유명 감독들의 선구안일까, 그만이 그려내는 독특한 분위기 덕일까. 왠지 애덤 드라이버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도 탄탄대로일 것만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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