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현지시간) 개최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보헤미안 랩소디>, <블랙 팬서>, <그린 북> 등 여러 쟁쟁한 작품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중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외국어 영화상, 촬영상, 감독상 세 개 부문을 석권했다. 최다 수상을 차지한 영화는 <보헤미안 랩소디>지만,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사람은 촬영까지 겸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2014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그래비티>로 편집상, 감독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한번 받기도 힘든 오스카 트로피를 각각 다른 영화로, 무려 네 개 부문에서 수상한 감독이 됐다. 그렇다면 그와 유사한 길을 밟은 이들은 누가 있을까. 알폰소 쿠아론 감독처럼 한 사람이 각각 다른 영화로 아카데미 두 개 부문 이상을 석권했던 경우를 알아봤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포함하지 않았다)

조지 클루니
2006년 <시리아나> 남우조연상 / 2013년 <아르고> 작품상
감독 겸 배우로 유명한 조지 클루니도 두 영화로 각각 다른 부문의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첫 번째는 미국과 중동의 국제정치를 다룬 <시리아나>에서다. 네 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석유 문제에 대한 미국의 부패를 꼬집는 작품. 조지 클루니는 은퇴를 앞둔 CIA 요원 로버트를 맡아 조용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그는 캐릭터를 위해 약 한 달 만에 14kg을 증량, 쇠퇴한 CIA 요원을 표현했다. 고문 장면에서는 척추 부상을 입기도. 살신성인을 보여준 조지 클루니는 <시리아나>의 배우들 중 유일하게 아카데미 후보에 노미네이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조지 클루니의 두 번째 아카데미 수상은 배우, 감독이 아닌 제작자로서다.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그가 제작 프로듀서로 참여한 <아르고>가 작품상을 수상했다. 작품상은 감독과 함께 프로듀서들이 수상자로 지명된다. 이에 그는 연출을 맡은 벤 애플렉, 그랜트 헤슬로브 프로듀서 등과 함께 무대에 올라 상을 수여받았다.

엠마 톰슨
1993년 <하워즈 엔드> 여우주연상 / 1996년 <센스 앤 센서빌리티> 각색상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엠마 톰슨도 있다. 그녀는 세 번째 주연작 <하워즈 엔드>로 1993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1900년대 초 영국을 배경으로 여러 집안들의 화합과 갈등을 그린 <하워즈 엔드>. 엠마 톰슨은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관용의 자세로 주변 인물들을 변화시키는 마가렛 부인을 연기하며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자랑했다. 이미 베테랑 배우였던 헨리 역의 안소니 홉킨스보다도 호연을 펼쳤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엠마 톰슨은 1996년 주연과 각본을 겸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각색상을 수상했다. 제인 오스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리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놀라운 것은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엠마 톰슨의 첫 영화 각본이었다는 점. 게다가 그녀는 공동 작업이 아닌 단독 각본가로 영화에 참여했다. 시작부터 아카데미 각본상을 거머쥐며 작가로서의 재능을 입증한 셈이다. 이후로도 그녀는 <위트>, <내니 맥피> 시리즈, <애니> 등의 각본을 집필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68년 <화니 걸> 여우주연상 / 1977년 <스타 탄생> 주제가상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매번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미국 가요계의 전설이 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그녀는 가수뿐 아니라 배우로도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데뷔작인 <화니 걸>(Funny Girl)에서부터 1968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그녀가 연기한 주인공 퍼니 브라이스는 촌스러운 외모를 이겨내고 브로드웨이가 스타가 되는 소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퍼니의 다양한 면모 세밀하게 표현, 출중한 노래 실력까지 뽐내며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그녀는 1977년 또 다른 대표작인 <스타 탄생>으로 주제가상도 섭렵했다. 1937년 윌리엄 A. 웰먼의 <스타 탄생>에 기반을 둔 두 번째 리메이크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상을 수상했던 <스타 이즈 본>의 전신 격 작품이다. 주연까지 겸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직접 작사, 작곡한 ‘Evergreen’으로 주제가상을 차지했다. <스타 이즈 본>에서 레이디 가가, 브래들리 쿠퍼가 부른 ‘Swallow’ 못지않은 감미로운 멜로디와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

페드로 알모도바르
2000년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외국어영화상 / 2002년 <그녀에게> 각본상
이미 <욕망의 법칙>(1987),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1988) 등으로 명감독의 자리에 오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그는 1999년 제작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칸영화제 감독상,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그 명성을 이어갔다.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마누엘라(세실리아 로스)에게 얽힌 복잡한 과거 그리며, ‘어머니’라는 이름의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헌사를 담은 작품.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다음 연출작인 <그녀에게>로 곧바로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수상했다. 전작들에서도 컬트 요소와 금기를 다루는 파격적인 소재로 독특한 상상력을 자랑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그녀에게>에서는 코마 상태에 빠진 여자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남자들을 내세워 ‘소통이 불가능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각에서는 범죄 미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아카데미는 탁월한 그의 이야기 전개에 손을 들어줬다.

프레드 진네만
1952년 <벤지> 단편다큐멘터리상 / 1954년 <지상에서 영원으로> 감독상 / 1967년 <사계절의 사나이> 작품상, 감독상
오스트리아 출신의 거장 프레드 진네만 감독. 그는 세 편의 영화로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했다. 첫 수상은 1952년 단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31분짜리 영화 <벤지>다. <하이 눈>(1952)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직전 제작한 단편영화다.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치료하려는 소아과 의사의 이야기.
이후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 눈>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음악상, 주제가상, 편집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프레드 진네만 감독에게 트로피가 수여되지는 않았으며 배우, 해당 분야 제작진들이 상을 받았다. 그가 트로피를 거머쥔 것은 1953년 제작한 <지상에서 영원으로>으로다. 2차 세계대전 속 여러 인물들의 사랑, 이별, 복수 등을 그린 작품이다. 스릴러영화 <하이 눈>으로 주목받았던 프레드 진네만 감독은 톤을 바꿔 낭만적인 멜로드라마로도 연출력을 자랑하며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13년 뒤인 1967년에는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의 이야기를 그린 <사계절의 사나이>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헨리 8세의 조언자였지만 신념을 굽히지 않아 처형당한 토마스 모어. 영화는 그의 비극적인 인생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며 종교와 정치, 신념과 융통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월트 디즈니
1933년 공로상 ~ 1969년 <곰돌이 푸 2-폭풍우 치던 날>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했던 이는 디즈니의 창시자 월트 디즈니다. 그는 1933년 제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으며 첫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9년까지 제작자로서 무려 22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노미네이트까지 포함하면 총 52번. 그중 마지막 수상작인 단편 <곰돌이 푸 2 - 폭풍우 치던 날>은 그가 1966년 생을 마감한 이후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