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하지 않을 자유
2019-09-11
글 : 이동은 (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 박지연 (일러스트레이션)

휴대전화가 막 등장했을 때는 최신 휴대폰을 갖는 것이 능력의 척도였다면, 휴대전화가 흔해진 지금은 휴대폰을 갖지 않아도 되는 쪽이 오히려 능력자다. 휴대전화가 경제활동의 필수품이 되면서, 휴대전화가 없다는 것에 ‘특별한 소득 활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상태’라는 새로운 지위가 부여된 셈이다. 소득 활동뿐만 아니다. 현실에서 휴대전화 번호가 없이는 실재하는 본인을 인증할 수 없는 상황에 종종 맞닥뜨린다. 사소한 온라인 쇼핑이든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 포인트 적립이든 소비자로 살려면 휴대폰을 통한 본인 인증은 필수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자유의지의 폭은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 현실적으로 메신저 앱을 깔지 않을 자유가 있을까? 공동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전체 공지를 단체 대화방이 아닌 수단을 통해 전달받는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을까? 만일 당신이 다른 방식의 정보전달을 원한다는 말을 저항감 없이 내뱉을 수 있다면 당신은 소위 권력을 가진 ‘갑’의 위치에 있거나 이미 아웃사이더일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잘 꾸며진 블로그는 취업 활동 시 기업의 SNS 스크리닝을 통해 유리하게 작용한다. 소셜미디어 계정이 없다는 말은 사측에 구직자가 뭔가 숨기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한다. 과거에는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 개인이 자연스럽고 투명한 상태였지만, 이제는 불투명하고 예외적인 인상을 주게 된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상은 현실이다>에서 저자 주영민은 현대인은 누군가를 알게 된 이후에 그와 현실에서 소통하는 시간보다 소셜미디어에서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고 말한다. 사회적 관계와 삶에서 일종의 가상 자아가 필수 기반인 사회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 자아가 생략된 관계는 점차 어색한 사이가 되어 관계 유지의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관계에서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즉 소셜미디어를 통하지 않고서도 사회적 끈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관계의 우위를 점했을 가능성이 크다. 관계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는, 딱히 그럴 필요가 없는 상태 말이다. 결국 이 시대의 자유는 할 수 있는 의지가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의지에서 나온다. 우리는 유튜브의 수많은 채널을 통해 세상의 모든 영상에 접속할 자유를 얻었지만, 광고를 보지 않을 자유란 없다. 오직 그것은 유료 회원이라는 대가를 지불할 때만 허용된다. 그렇게 유료 서비스를 지불할 돈이 없는 이들만이 광고를 본다. 충분한 구매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구매를 호소하는 아이러니라니. 개인은 빅데이터에 필요한 프라이버시를 제공할 때만 한정적으로 무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이 능력이자 권력인 세상이 되었다. 점점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보다,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소중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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