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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 김선영의 얼굴
2019-10-01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옹산 게장 골목에서는 딸이나 며느리에게 게장 저작권과 상속권이 승계된다. 요리를 하는 여성이 권력을 잡고 그들의 남편이나 아들은 식당 주차요원을 하거나 손님에게 파인애플을 판다. KBS <동백꽃 필 무렵>에는 요식업이나 식재료를 취급하는 여성 사장만 여덟이다. 혼자 아들을 키우는 외지인 동백(공효진)도 게장 골목에 술집 ‘까멜리아’를 열고 나름 6년을 버텼다. 술을 판다고 막 대하는 사람들 틈에서 상처를 입던 동백이 각성하고 변화하는 이야기인 만큼 이웃의 면면에도 눈이 간다. 특히 ‘3대 며느리 게장’의 CEO 박찬숙 역의 김선영 배우를 보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화려한 부인복의 목깃을 세우고, 귀걸이와 목걸이는 늘 세트로 맞춘다. 푸른빛 도는 회색의 눈썹 문신, 진한 립스틱은 입술 안쪽이 지워져 테두리만 남아 있다. 동백 네 개업 떡을 잘라 입에 넣는 손가락의 매니큐어가 군데군데 벗겨진 것까지 구현하는 디테일에 감탄만 나온다.

찬숙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상대방 말꼬리를 잡아 이죽거리다가도 제 성질을 못 이겨 뒤로 넘어가는 성격이다. 김선영의 연기는 낙차가 큰 감정을 단숨에 설득해내고, 일단 치솟는 화를 분출한 다음 맥락을 끌어오는 것도 능숙하다. 언제부터 그를 좋아했는지 되짚어보았다. JTBC <욱씨남정기>의 화장품 회사 워킹맘 역할부터다. 회의하다 나온 아이디어의 실행 가능 여부를 따지느라 미간에 짜증이 솟은 실무자의 표정은 아마도 내가, 또 내 동료가 지었을 표정이었다. 김선영을 보면서 언제나 아는 여자의 얼굴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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