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조커>의 모든 것①] 기존 <배트맨> 시리즈들과 다른 길 가는 <조커> 이야기
2019-10-02
글 : 이주현
병든 도시의 비열한 ‘킬러 광대’

<조커>는 배트맨의 천적이자 고담시의 제일가는 악당인 조커의 기원을 써내려가는 영화다. 알려졌듯 DC 코믹스 <배트맨> 시리즈에서 캐릭터와 배경을 가져왔지만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진 않는다. 토드 필립스 감독과 스콧 실버가 함께 쓴 각본은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싶은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는 과정, 즉 반영웅의 탄생 서사를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1976)의 톤으로 그린다. 히어로와 안티히어로의 초능력이 충돌해 우주적 재앙을 불러오는 21세기 슈퍼히어로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더불어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와도 다르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도 다르다. 캐릭터 드라마에 가까운 <조커>는 조커라는 인물에 온전히 집중하며 조커의 내면에 깊숙이 접속한다.

사회 또한 병들어 있다

영화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위기에 직면한 고담시의 상황과 거울 앞에서 광대 분장을 하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며 시작한다. 쓰레기 더미와 슈퍼 쥐가 점령한 거리, 극심한 빈부격차로 분열된 고담시의 모습은 마치 대공황 시대의 뉴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영화에 명시되진 않지만 시대적 배경은 1981년으로 설정되어 있다).언제라도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도시에서 아서는 광대로 일하며 성공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길 꿈꾼다. 낡은 아파트에서 함께 사는 엄마 페니(프랜시스 콘로이)와 고담시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인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의 <머레이 쇼>를 보는 것도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다.

하지만 아서를 둘러싼 현실은 모순투성이다. “어머니는 제가 웃음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씀하셨죠.” 페니는 다 큰 아들을 ‘해피’라 부르지만 아서의 현실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아서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져나오는 발작적 웃음은 상대에게 불편함을 안긴다. 이러한 병증으로 무시와 외면과 모욕을 받아야 했던 아서는 결국 그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웃음이 불러온 비극. 하지만 세상의 모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서의 살인은 부유층에 대한 반감이 동기가 된 살인사건이 되어버리고,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 시민들은 ‘킬러 광대’에 열광하며 거리로 뛰쳐나온다. 도시는 분노로 불타오르고, 아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느낀다.

아서는 스스로의 분열된 자아와 사이좋게 공존하는 데 실패하면서 자신에게는 물론 이 세상에도 위협적인 인물이 된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조커>를 통해 다루고 싶었던 주제 중 하나가 “공감 능력, 더 정확히는 작금의 현실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의 부족”이라고 말했다. 각본가 스콧 실버 역시 “연민과 공감의 결여, 예의 없는 사회. 그 환경이 조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사회 또한 병들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영화는 망상과 분열증으로 고통받는 아서를 통해 우리가 모순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빈부격차의 문제, 부자들의 무지와 공감 능력의 결여를 토마스 웨인(브렛 컬런)을 통해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다.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아버지인 토마스 웨인은 고담시를 위해 일하는 박애주의자적 면모로 그려졌다. 그런데 <조커>에선 대중의 분노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진 자로 그려진다. 토마스 웨인은 살인을 저지른 광대에 대해 “가면을 쓴 건 용기가 없어서이고, 그런 비열한 자들은 한낱 광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후 시민들은 “우리는 모두 광대다”라는 구호가 적힌 푯말을 들고 거리로 나온다. <조커>가 철저히 아서의 시점을 따르는 영화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아서의 범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코미디를 통해 세상과의 접속을 시도했던 인물이 조크에 실패한 조커가 되는 과정이고, 조크에 실패한 조커가 부자들의 사회를 전복하려 한 영웅이 되는 역설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있다.

<조커>는 여러모로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1983)을 연상시킨다. 도시의 인간 쓰레기를 말끔히 청소해야 한다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와 아서 사이에선 어렵지 않게 감정적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으며, <코미디의 왕>의 루퍼트 펍킨(로버트 드니로)과 아서는 코미디언과 TV쇼라는 키워드를 직접적으로 공유한다. 이외에도 토드 필립스 감독은 <조커>에 영감을 준 영화로 <형사 서피코>(1973), <네트워크>(1976),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 등 1970~80년대 영화들을 언급한 바 있다. 모두 로버트 드니로, 잭 니콜슨, 알 파치노 같은 위대한 배우들이 출연한 캐릭터 중심의 영화다. <조커> 역시 두말할 것 없이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를 관통해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조커의 탄생을 보여주는 영화다.

찰리 채플린과 <모던 타임즈>

<조커>가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또 다른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다. 시민들이 높은 실업률과 가난으로 ‘못 살겠다’고 시위를 하는동안 웨인홀에선 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상영 중이다. 잘 차려입은 부자들은 지척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을 끄고 과거의 무성영화를 보며 여가를 즐긴다. 고상한 영화감상과 고성의 시위 현장을 배치하는 이런 장면은 <조커>가 영리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풍자하는 영화라는 것을 말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광대 찰리 채플린 자체가 <조커>에 특별 기여했다고도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아서가 광대로서 보여주는 동작 중 일부는 찰리 채플린의 ‘리틀 트램프’ 캐릭터에서 직접적으로 가져온 것이다. 토드 필립스가 코미디영화로 주목받은 감독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찰리 채플린의 춤과 영화를 인용한다거나 조커의 전사를 광대와 코미디언으로 풀어가는 것이 그에겐 썩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조커>의 음악과 관련해선 프랭크 시내트라의 명곡 두곡이 사용되는 게 눈에 띈다. <That’s Life>와 <Send in the Clowns>가 그것인데, <That’s Life>는 머레이 프랭클린의 토크쇼 주제곡인 동시에 영화의 주제곡처럼 쓰인다. 토크쇼의 엔딩 멘트 또한 “그것이 인생이죠”(That’s Life)이다. 이 말에는 삶의 여러 모순 혹은 비극을 수긍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내 삶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야”라며 아서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 때,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돌진하는 한 인생을 보게 된다. 세상에 웃음을 주지 못하고 공포를 주는 악당 조커의 탄생. 악당이 된 광대의 삶에도 기술할 이야기가 있음을 <조커>는 보여준다.

최신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