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생략된 ‘은희’와 ‘지숙’의 두 번째 투숏은 지숙의 방 침대에 누워 ‘sex’를 발음하는 전자사전 기계음을 반복 청취하며 자지러지는 모습이다. 사적 공간인 ‘방’에서 기계음을 빌려 크게 발음해보는 섹스, 섹스, 섹스…. 영화가 대서사시처럼 그려낸 10대 여성의 “광대한 마음의 지도”, “정서적 스펙트럼”의 한축은 분명 온갖 종류의 ‘친밀성’에 대한 갈구다. 그건 ‘성애적인 것’을 포함하며, 결코 특정 성별을 대상으로만 작동하지도 않았다. 영화 <벌새> 이야기다.
은희는 “우리 키스하자”라며 남자친구 지완과 이성애 행위를 실험하지만, 그와 나란하게 교차되는 것은 록카페에서 “X” 맺기로 결의한 “보이시한” 후배 ‘유리’, “짧은 머리”에 담배를 피우며 은희를 매료시킨 ‘영지’와의 관계다. 그 관계들은 순식간에 돌변하고 상실된다는 점에서, 은희에게 공평하게 소중했고 가혹했다.
유리 옆에서 은희가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을 부르는 장면은 단연 최근 본 가장 시적인 플러팅이었지만, 서늘하기도했다. “아름답게 빛나지만 깨어지기 쉽다”는 가사가 유리와의 관계를 암시했고, 무엇보다 곧 은희가 집 소파 밑에서 발견할 유리 조각에 마음이 쓰였다. 피를 보고야 끝나던 폭력, 아무 일 없던 듯 이어지는 일상. 은희가 찾아낸 유리 조각은 지금 평온하다고 해서 폭력이 없던 게 아니라고, 그건 분명 있었다고 말하는 “증거”였다. 그리고 이 사회는, 유리와의 관계도 증거가 필요한 종류의 일로 기억 (안)하는 사회다.
수술을 마친 뒤, 병원을 나온 은희를 기다리는 것은 꽤 무자비한 사건들이다. 은희가 너무 좋다던 유리는 “그건 지난 학기”의 일이라며 냉담해졌고, 영지는 말없이 학원을 그만뒀다. 한 계절, 한 학기가 지났을 뿐인데 모든 게 일변했다. 14살 은희가 감각하는 세계의 속도. 오직 카메라만 이 속도에 적응 못한 채 흔들리는 은희의 눈동자를 끈기 있게 응시한다.
시나리오에서, 퇴원 후 은희는 다른 남자아이와 정다운 유리에게 ‘왜 다른 애 만나?’가 아니라 “왜 남자 사귀어?”라고 묻는다. 하나 영화에서 유리는 여전히 ‘여자’와 노닥거리며, “왜” 이후 은희의 대사는 생략돼 있다. 은희에 대한 영지의 감정에 대해서도 영화는 말을 아꼈다. 운동권 출신 영지의 정치적 올바름을 고려할 때 영지가 미성년자 은희에게 성적 욕망을 가졌을 리 없다지만, 영화의 관심은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차라리 그냥 ‘올바름’에 있을 터다. “자기가 싫어질 때”조차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봄으로써 만들어지는 ‘올바름’.
은희는 유리와 영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기억할까. ‘이상하고, 나쁘고,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진, 비규범적인, 하지만 분명 실재하는 그 친밀성에의 열망들. 아마 은희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고’ 항변할지 모른다. “잘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나 안 이상해! 안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