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인생 버스도 환승 할인, 안 될까요?
2019-11-06
글 : 이동은 (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 다나 (일러스트레이션)

민원 가-0123호. “안녕하세요. 대중교통 환승 제도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시민입니다. 버스를 갈아탈 때나 다른 교통수단으로 환승할 때 기본요금을 다시 내지 않아도 되는 환승 할인 제도는 정말 합리적인 것 같아요. 사실 원하는 목적지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없을 때가 많거든요. 잘못 탈 때도 있고요. 그럴 때마다 요금을 다 내야 했는데, 이 제도 덕분에 이제 버스를 잘못 탔을 때도 조바심내지 않아도 돼요. 이렇게 좋은 환승 할인 제도가 인생에도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확히는 진로 이야기예요. 인생, 진로도 그렇지 않나요? 원하는 일을 하게 되기까지 한번에 환승 없이 도달하는 사람이 있냐고요. 잘못 타는 경우도 부지기수죠. 그렇게 잘못된 노선을 타서 환승해야 할 때는 수없이 많은 정류장 어딘가에 내려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도 생겨나요.

정류장에 머무는 시간에는 일을 하지 않아요. 비노동 상태, 쉽게 말해 백수. 누구나 백수 상태를 겪습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비노동 상태를 경험하죠. 시스템 안의 선발 경쟁 같은 고시나 시험에 실패하고 쉬는 경우도 있고요, 시스템 밖 생존 경쟁에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잠시 노동을 유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노동 상태는 불가피하게도 찾아오지만 한편 반드시 시간을 내야 하는, 꼭 필요한 시간 같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일하면서 노동하는 내가 아닌 나를 상상할 시간도 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사회가 원하는 건 또 무엇인지 돌아볼 틈이 도대체 언제 있겠어요. 이런 쉼표 같은 시간 속에서 한숨 돌리며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물론 청소년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중하게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가당키나 했던가요. 선발 과정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교육과정에서 그런 시간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었잖아요. 요즘 세상은 또 얼마나 빨리 바뀌나요. 4차 산업혁명의 시기라고 부르는 이 시기를 이해하고 적응하기도 전에 숫자가 더해진 또 다른 혁명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노동 경로에서 한번 이탈한 사람은 좀처럼 다시 경로에 진입하기 힘든 시대예요. 한번 그 경로를 바꾸는 데도 많은 유무형의 비용을 치러야만 하고요. 이미 선택한 경로를 한번 포기하면 단순 실패가 아닌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사회예요. 일하다가 방향을 잃는 건 당연한 과정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다른 노선으로 갈아탈 동안 겪게 될 방황과 실패가 두렵지만은 않도록, 인생 버스에도 환승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가 절실합니다. 인생 버스에 환승 할인 제도를 꼭 도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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