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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자' 김량 감독 - 그렇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2020-06-25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한국과 프랑스 등을 오가며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김량 감독은 분쟁의 공간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왔다. 첫 번째 작품 <경계에서 꿈꾸는 집>(2013)은 철원의 민간인 통제구역에 사는 주민들의 이야기였고, 두 번째 작품 <영원한 거주자>(2015)는 터키, 아제르바이잔,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메니아의 접경지역 이야기를 다룬다. 세 번째 영화 <바다로 가자>는 실향민인 감독의 아버지와 가족이 등장하는 보다 사적인 작품이다.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실향민 1세대와 그들의 영향 아래 자란 실향민 2, 3세대의 이야기를 두루 담고 있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영화 작업으로 이어가는 김량 감독을 만났다.

-그동안 파리, 부산, 서울을 오가며 작업을 해왔는데, 최근 생활과 작업의 기반이 되는 도시는 어디인가.

=계속 여러 도시를 오가며 작업 중이다. 디아스포라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아르메니아에서도 영화를 찍고 팔레스타인에도 가고 계속 떠돌아다녔다. 박사 논문도 지정학적 분쟁과 영화 작가들의 디아스포라적인 이동 및 작업에 대해 썼다. 최근엔 영화 개봉 문제로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일이 잦아졌다.

-첫 번째 작품 <경계에서 꿈꾸는 집>은 철원에서, 두 번째 작품 <영원한 거주자>는 아르메니아에서 촬영했다. 세 번째 작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지역에서 찍을 계획이었는데 계획을 변경해 <바다로 가자>를 만들었다.

=3개월 동안 팔레스타인 접경지역에서 현장 리서치를 했다. 여기서 픽션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시놉시스를 썼고 그걸 개발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아 병원에 계시다는 연락이 왔다. 그때 이 영화(<바다로 가자>)를 만들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바다로 가자>는 나의 첫 작품이 돼야 했는지도 모른다. 첫 영화 <경계에서 꿈꾸는 집> 때도 이 이야기를 구상했지만 차마 제대로 이야기할 용기가 없었다.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실향민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더욱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세 번째 영화에서야 카메라를 들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그걸 좋아하셨던 것 같다. 다른 가족은 본인에게 무관심한데, 프랑스에 가서 자주 보지 못하던 딸이 집에 돌아와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찍겠다고 하니 내심 그 관심이 좋으셨던 게 아닌가 싶다.

-영화에는 실향민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린 시절 떠나온 고향이고 어린 시절 헤어진 가족인데도 그들은 평생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산다. 그 뜨거운 감정을 마주했을 때 어땠나.

=오랜 시간 그 감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선뜻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런데 외국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점점 한국에 오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게 되더라. 나이가 들면서 그 느낌이 좋아졌고, 그때부터 아버지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렇게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잠시 외국에 여행을 갔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한국에 들어올 수 없게 된 거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 하던 게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그러다 70년이 됐다면 너무나 황당하고 그립지 않겠나. 실향민들 중엔 자의로 고향을 떠난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그들의 감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는 감독의 어린 시절을 반영한 재연 장면이 등장한다. 재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버지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영화에서 이야기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내가 본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걸 어떻게 영화적으로 풀어낼까 고민하다가 재연을 생각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자고 있는 우리를 깨워 앉혔다. 정말 반복적이었다.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에 방점을 찍어 보여주고 싶었다. 재밌게도 영화를 본 실향민 2세들은 다 공감하더라.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고.

-어린 시절에 실향민인 아버지를 이해해보려 시도한 적이 있나.

=이해 대신 원망했다. 아버지는 몸은 집에 있지만 생각은 늘 다른 곳에 가 있는 분이었다. 어린 나이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아버지는 왜 저러실까 하는 마음이 컸다.

-그렇지만 분단과 분쟁 그리고 경계인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게 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커 보인다.

=그렇다. 내게 사진을 가르쳐준 것도, 나를 영화관에 데려가준 것도 아버지다.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좋은 모습이 남아 있다. 창의적인 면이나 감수성 면에서 자식 중 아버지와 제일 통하는 지점이 많기도 했다. 아버지의 고향(함경남도 단천)에 대해 궁금한 것도 어쩌면 어린 시절 외탁이 아닌 친탁을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고, 내 안에 함경남도 DNA가 있다고 느낀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경상도 음식을 안 좋아한다. 오빠들은 너무나 부산 사람처럼 먹고 말하는데 난 그렇지 않다. 어쨌든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체성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됐고 그것이 작업으로 이어졌다. 개성 출신인 박완서 작가가 자신의 고향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바탕으로 방대한 문학 작업을 한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 분단이라는 주제가 내게는 창작의 근원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향민 2세라는 정체성에 더해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창작에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을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파리로 유학을 갔고 프랑스인과 결혼해 오랜 시간 타지에 머물렀다.

=탈형식적이고 탈영토적인 창작 활동을 하는 게 그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든다거나 탈형식적인 표현방식을 추구한다. 지금까지는 사진과 다큐멘터리 위주로 작업했는데, 픽션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크다. 다큐멘터리가 가진 매력이 많지만 상상력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상상력을 펼치려면 픽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재 분단을 다루는 장편 픽션을 기획 중이다.

-남편이 프랑스의 영화학자 자크 오몽이다. 영화 창작자와 이론가가 만난 셈이니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다.

=남편은 이론을 가르치는 학자지만 창의적인 감각이 좋은 사람이다. 이론에 갇힌 사람이 아니어서 서로 영화 보며 아이디어를 많이 나눈다. 지난해엔 세계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낸 학자 및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발찬상(Balzan Prize)을 남편이 받았다. 영화미학을 연구하고 가르친 공로를 인정받은 일이라 덩달아 뿌듯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확실히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장면을 연출할 때 담론적으로 고민이 되거나 토론하고 싶은 내용이 생기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반대로 남편이 담론을 고민할 때 내가 아이디어를 주기도 한다. 7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 전작전을 했을 때 남편이 관련 기사를 썼다. 영화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예술이고 그래서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대중영화든 홍상수의 영화든 거기엔 굉장히 한국적인 것들이 담겨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말할 것도 없는데, 장남이 부모의 장례를 치르면서 겪는 과정 안에 담긴 복잡한 사회적 코드(임권택의 <축제>)에 관해 남편과 이야기 나눴던 기억이 있다.

-차기작으로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각각 준비 중이라고.

=앞서 말한 분단을 주제로 한 픽션이 하나 있고, 내 고향 부산과 아버지의 고향 단천을 잇는 다큐멘터리도 준비 중이다. 부산에서 바다를 통해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는 야심찬 프로젝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