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장영엽 편집장] 존재만으로 고마운
2020-08-21
글 : 장영엽 (편집장)

올여름, 한국 사회의 한편에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손 살갖이 벗겨지도록 소독을 하고 마트에서 장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도 ‘턱스크’를 하고 전화 통화를 하거나 가족의 팔을 물어뜯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다. 아, 국회의원을 세번 했다는 이유로 코로나19 검진 동행을 거부하는 신기한 마인드의 소유자도 있다. 서글픈 건 본인의 행동이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는 구성원들이 이 사회에 적지 않다는 것이고, 그들의 무심함이 야기한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가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해왔던 많은 이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줬다는 점이다. 최선을 다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은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이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더불어 존재의 무력함에 잠식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한철을 보내고 있다.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고 무엇이든 변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공교롭게도 지극히 루틴에 따르는 일상이 위안이 된다. 이를테면 매일 같은 시각에 여는 단골 가게, 한결같은 목소리로 청자에게 말을 거는 라디오 진행자와 같은 존재들. 그저 사라지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어준다는 이유만으로도 고맙고 애틋한 마음이 드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절감하며, 매주 발행되는 <씨네21>도 독자 여러분에게 그런 의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난 4월 지면 개편과 동시에 <씨네21>의 고정 필진으로 합류한, 비평지면 ‘프런트라인’의 네 필자- 안시환·김소희·김병규 평론가와 송경원 기자- 를 한 자리에 모은 특집 기사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준비했다. 한달에 한번, 의무적으로 7천자에 달하는 분량의 평론을 써야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비평의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취지로 기꺼이 루틴의 무게를 짊어진 네 평론가를 격려하고싶은 마음과 더불어 지난 5개월간 각종 영화 담론과 이슈에 시시각각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었을 이들이 전하는 상반기 한국영화계에 대한 소회가 궁금했다. 최근 개봉한 여름 상업영화에 대한 분석부터 관객의 자리, 영화비평의 자리, 나아가 영화 전문지로서 <씨네21>의 역할에 대한 허심탄회한 고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로 지면을 채워준 네명의 필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들이 프런트라인 지면을 통해 새로 낸 길이 언젠가는 동시대 영화를 조망하는 넓은 통로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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