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생리하는 몸
2020-10-21
글 : 정소연 (SF 작가)

나에게는 자궁이 있다. 올해 초, 나는 미레나 교체 시술을 받았다. 미레나는 매일 일정량의 황체호르몬을 내보내는 루프를 자궁 내에 삽입하는 피임법이다. 자주 나타나는 부작용 중 하나로 무월경이 있다. 무월경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엄연히 부작용이지만, 이 부작용에 당첨(?)된 다음부터 내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나는 본래 정확히 28.5일 주기로 5일간 생리를 했다. 생리주기가 30일 미만이라 한달에 두번 생리기간이 돌아왔다. 월로 따져보면 한달에 앞쪽 생리와 뒤쪽 생리를 합쳐 거의 정확히 일주일을 생리를 했다. 생리기간이 규칙적인 것은 그 자체로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다. 생활이 예측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생리대를 살 편의점을 찾거나 핏물이 든 엉덩이를 가리려 카디건을 허리에 묶을 필요가 거의 없었다. 생리전증후군도 심하긴 해도 뚜렷했다. 달리 말하면, 생리주기나 기간이 일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언제나 일정 수준의 예측 불가능성을 감당하며 살고 있다.

나는 14살 때부터 생리하는 장기가 달린 이 몸을 그럭저럭 이고 지고 사는 요령을 익혔다. 생리 전에 충동적으로 너무 이상한 물건을 사지 않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어차피 사야 하는 상품을 담아놓았다. 괜한 짜증을 내 인간관계를 다치지 않으려 생리기간을 피해 사람을 만났다. 내 몸에 잘 듣는 진통제를 찾았다. 경구피임약을 먹어 시험기간과 생리가 겹치지 않게 피했다. 수능일에 생리를 하지 않기 위해 경구피임약을 고3 때 처음 먹는 여학생들이 적지 않다. 생리를 하지 않는 몸을 가진 사람들은 이 ‘여학생반에 전해오는 시험준비’를 알고 있을까. 온갖 생리대를 써보며 그나마 덜 불편한 길을 찾았다. 28.5일마다 5일씩 생리를 하니 테스트할 기회만은 부족하지 않았다.

서른 즈음, 나는 부작용을 기대하며 산부인과에 갔다. 초여름이었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피 위에 눅눅히 앉아 있는 일도, 산패한 피 냄새가 나는 쓰레기를 비우는 일도, 쪼그려 앉아 면생리대를 조물조물 빠는 일도, 진통제를 제때 챙기는 일도 다 지긋지긋했다. 서른살의 나는 산부인과의 기초질문을 부담 없이 통과할 수 있는 기혼여성이었고, 마침내 수중에 미레나 시술을 받을 돈 30만원이 있었다.

미레나는 크지 않다. 가로 3cm, 세로 4cm 정도다. 초음파로 보면 상대적으로 자궁이 거대해 보일 정도로 작다. 출산한 여성의 경우 미레나가 절로 흘러나가 소실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월경 부작용에 적응하고 나니 두번 다시 생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교체 주기가 다가오자마자 산부인과에 갔다. 그런데 5년간 잘 자리 잡은 루프가 빠지지 않았다. 생리 주기를 고려해(생리 전에 자궁경부가 열려 제거가 더 쉽다) 두번 제거를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세 번째 시도 후 수면 마취를 했다. 정신이 들고 보니 배가 아프고 기분이 더러웠다. 미레나 교체는 잘 되었다고 했다. 사흘 동안 항생제와 진통제를 먹었다. 제거와 삽입과 수차례의 진료와 약값에 68만원이 들었다. 나는 68만원을 들여 다시 부작용으로 생리를 하지 않는 몸을 얻었다. 그리고 출산 계획은 없는 이 몸을, 어디 갖다버릴 수도 없으니,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