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Music] 취향의 바흐 찾기 - 랑랑 《Bach: Goldberg Variations》
2020-10-22
글 : 최다은 (SBS 라디오 PD)

클래식 음악이 다른 장르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감상의 단위가 매우 세밀하다는 데에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음악을 들을 때 그 곡이 가진 고유의 선율과 리듬, 가사, 편성 등을 토대로 좋고 나쁨을 순식간에 판단한다. 그러나 클래식은 이 모든 요소가 몇 백년 전에 결정된 그대로, 변동 하나 없이 거듭 소비되는 장르다. 정해진 음표를 어떤 속도와 음량으로 연주하는지, 어느 부분을 상대적으로 부각하는지, 이 모든 작용이 종합되어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질감은 어떤지 등에 자세히 귀 기울이는 것이 클래식 음악 감상의 요체다.

때문에 클래식을 클래식으로 만드는 건 연주자이다. 그들은 각자 가진 기술, 감성, 해석으로 듣고 또 들어온 음악을 새롭게 창조한다. 연주자들에게 선택되어 그 연주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한 작곡가의 음악은 생명을 연장한다. 연주자들 역시 작곡가가 곡을 쓸 때부터 심어놓은 음악적 맥락을 기본적으로 따라가기에, 해석의 차이라는 게 존재하긴 해도 겉으로 크게 드러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느끼고 즐기려면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만큼 귀를 예민하게 발달시키거나 반복 청취로 특정 곡에 대해 꿰고 있는 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어렵게 들리지만, 여기에도 지름길은 있다. 바로 하나의 작품을 여러 연주자의 버전으로 들어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다보면 고만고만하게 들리는 여러 연주 가운데 유독 튀는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데, 언드라시 시프는 72분, 로절린 투렉은 75분 내외로 연주한 바흐의 <Goldberg Variations>을 38분25초 만에 완주한 글렌 굴드의 연주가 그렇다. 확연히 다른 연주는 세밀한 차이를 찾아내는 게 아직 서투른 사람에게는 비교군으로 훌륭히 기능한다. 지난 9월 랑랑이 발표한 《Bach: Goldberg Variations》역시 마찬가지다. 굴드의 음반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튀고, 낯설다. 그래서 이 곡을 즐겨들었던 사람들보다는 내 취향의 연주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PLAYLIST+ +

랑랑 《Prokofiev: Piano Concerto No.3 - Bartok: Piano Concerto No.2》

랑랑은 힘과 테크닉으로 상징되는 피아니스트다. 연주 모습은 현란한 액션 배우를 연상시키는데, 이런 점이 그에 대한 호불호를 가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눈 돌아가게 빠른 손가락, 피아노를 쪼개버릴 것 같은 타건 등 그가 가진 특징은 어떤 작곡가의 곡을 만나느냐에 따라 효과를 달리한다. 이건 좋은 예.

베아트리체 라나 《Bach: Goldberg Variations》

랑랑과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어떤 곡은 속주의 달인으로 알려진 랑랑보다 더 빠르게 연주하기도 했는데, 잘 다듬어진 연주라면 빨라도 편안하게 들린다는 걸 몸소 느끼게 해준다. 2017년 워너뮤직에서 발매한 이 앨범으로 베아트리체 라나는 영국 그라머폰의 ‘올해의 영아티스트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