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Music] 그 순간들을 나누었다 - 키스 재럿 《Budapest Concert》
2020-11-26
글 : 최다은 (SBS 라디오 PD)

재즈 뮤지션들은 다 외워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불필요해서 악보 없이 무대에 오른다. 최소한의 틀만 가지고 즉석에서 변주, 발전시켜가는 방식으로 연주하기 때문이다. 직접 손을 놀리기 전까지는 연주자 자신도 어떤 음악이 만들어질지 모른다는 이 즉흥성이 재즈라는 장르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의 솔로 콘서트 시리즈는 이 특성이 궁극으로 확장된, 가장 창조적인 형태의 음악이다. 전통적인 재즈가 메인 테마가 되는 멜로디, 12마디의 정해진 코드 진행을 따르며 즉흥연주를 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그의 독주회는 연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간적인 영감에 의해 연주된다. 재즈라는 장르가 규칙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했다고는 해도, 100% ‘나오는 대로’ 만들어지는 음악은 처음 선보인 1973년 당시로서도 파격이었고 현재까지도 키스 재럿 고유의 스타일로 남아 있다.

과거에 작곡 혹은 레코딩된 음악을 끄집어내는 행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콘서트라면, 그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활동해왔다. 그날 그 무대에서만 쏟아낼 수 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그걸 녹음해 발매하는 식. 그러니 곡 제목이 있을 리 없으며 앨범 타이틀도 《Paris Concert》 《Rio》처럼 지역명이 붙은 단순한 스타일이다.

최신작 《Budapest Concert》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 음반의 경우엔 단순히 솔로 콘서트 시리즈 중 하나로만 취급될 수 없는 특별한 정서가 뒤따르는데, 발매와 동시에 <뉴욕 타임스>를 통해 전해진 “뇌졸중으로 인한 마비 증세 때문에 더이상의 연주 활동을 할 수 없다”라는 그의 선언 때문이다. 예술가의 수명은 유한하고 우린 기록과 재현으로 그들이 남긴 유산을 더듬는 일에 익숙하다. 하지만 무엇을 연주하고 무엇을 들을지 뮤지션도 관객도 모르는 채 만나 불꽃같은 순간을 공유하는 키스 재럿의 콘서트는 그런 식으로 보존되지 않는 종류의 예술이다. 그가 실재하지 않으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음반은 영원히 아프게 기억될 것이다.

PLAYLIST+ +

《The K ln Concert》

1975년 발표된 키스 재럿 솔로 콘서트 시리즈 중 두 번째 음반. 독일 쾰른에서의 연주를 녹음한 것으로 Part1부터 Part4까지 총 네개의 트랙으로 구성돼 있다. 키스 재럿 음악의 정수와도 같으며 모든 장르를 통틀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피아노 독주 음반이다. 즉흥으로 연주하는 그의 음악이 난해한 듯 들려도 많은 이들을 홀렸음을 증명한 셈.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키스 재럿이 즉흥연주로만 솔로 음반을 낸 건 아니다. 그가 만성피로증후군으로 활동을 못하고 있을 당시 아내를 위해 연주한 곡들을 홈레코딩으로 제작, 후에 발표한 이 음반에는 익숙한 멜로디의 듣기 편안한 음악이 주를 이룬다. 스탠더드 재즈를 해석하는 그만의 방식을 잘 느낄 수 있는 동시에 로맨틱한 감성이 가득한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