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공유진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교육위원, 과소 대표되었던 집단이 좀더 재현될 수 있게 한다
2021-09-17
글 : 남선우
사진 : 최성열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의 달력은 여름을 지나며 더욱 빼곡해졌다. 올해 5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개정되어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되었고, 개정된 법이 지난 8월 19일부터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든든은 8월 한달간 총 23건의 교육을 실시하고 997명의 영화인을 수강생으로 만났다. 영화계 특성을 반영한 ‘성희롱 예방교육 표준강의안’도 추가로 내놓았다. 유엔개발계획,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등에서 젠더 및 여성 문제를 다뤄온 공유진 교육위원은 변화의 중심에서 든든의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 중이다. 그는 “든든이 말 그대로 영화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다”는 약속과 함께 영비법 개정 이후의 목적지를 가리켰다.

2021 성희롱 예방교육 표준강의안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화의 배경과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지원사업 대상작 구성원들에게 성범죄·성희롱 사실확인서, 성범죄 예방교육 이수확인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이 예방교육 의무화의 시작이었다. 이번에 제정된 법률은 지난해 10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안한 것으로, 예방교육을 영화산업 전체에서 의무화하고, 영진위가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영화계는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노동자가 많은 만큼 여타 산업에 비해 보호 장치가 적은 편이다. 이번 개정은 영화인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한 기본적 조치다.

-지난 8월 든든은 영화계 특성을 고려한 ‘성희롱 예방교육 표준강의안’을 발간했다.

=2018년, 2019년에 이어서 2021년에 세 번째 표준강의안을 발간했다. 2019년에는 영화 현장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안을 만들었고, 올해는 영화제와 대학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추가로 개발해 각각의 특성에 맞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영화계 성희롱·성폭행 실태조사에 기반을 두고, 든든에 자주 신고되는 사례들, 실제 강의에서 강사들이 많이 받는 질문 유형을 연구해 어떤 현장에서 어떤 피해가 주로 발생하는지 정리했다. 강의안에서는 미투 운동 이후 영화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왜 성평등한 영화계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먼저 이야기한 후 사례별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일터로서 영화계가 가진 특징이 성희롱 예방교육에 반영된 예시가 궁금하다.

=예를 들어 영화제 스탭과 자원활동가가 겪는 경험도, 고용 관계도 다르다. 스탭들은 영화제라는 조직에서 직장 내 성희롱과 유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한편 자원활동가들은 단기간에 여러 공간에 퍼져 일한다. 그래서 스탭들에게는 사건 처리 절차와 조직문화 개선에 초점을 둔 교육을 제공했다면, 자원활동가들에게는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책을 소개했다. 대학 강의안의 경우 학교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단톡방 성희롱이나 스토킹 범죄처럼 피부에 맞닿는 사례들로 구성했다. 성평등한 대학과 영화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연대 활동도 함께 소개했다.

-예방교육 이후 영화계에서 볼 수 있는 변화는 무엇인가.

=2019 영화계 성희롱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희롱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예방교육에서 배운 내용을 제지의 근거로 쓸 수 있어 좋았다는 응답이 많았다. 든든은 매번 수강생들에게 교육 이후 피드백을 받고 있는데, 성희롱·성폭력의 개념과 구체적인 사례, 위계적인 권력구조에 대한 인식 등의 내용이 도움이 되었으며, 사건처리 절차와 주변인으로서의 대응, 조직 차원의 해결방안 등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의견을 많이 볼 수 있다.

-든든은 지난 8월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다양성 교육 또한 진행했다.

=나와 조혜영 영화평론가가 시범적으로 진행했다. 나는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강의했고, 조혜영 평론가는 영화에서의 다양성과 포용이 왜 중요한지 강의했다. 다양성 교육을 통해 단순히 성희롱을 하면 안된다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다양성과 평등의 가치가 영화에 도움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성별, 인종, 성적지향 등과 관계없이 현장에서 존중받으며 일하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각자의 실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다. 예비 영화인 교육에서 그런 메시지를 더 강조하려고 한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개최한 든든 컨퍼런스 ‘평등, 다양성, 그리고 영화’에서는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을 점검하고, 해외영화계 성평등 정책을 소개했다. 든든이 주목한 해외영화계 사례는 무엇인가.

=미국의 ‘타임스 업’ (Time’s up)과 영국의 영국영화협회(BFI) 사례를 발표했다. 미투 운동 이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 타임스 업은 엔터테인먼트 업계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이중 노출 및 성적 장면을 촬영할 때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와 함께 일할 것을 권하는 점에 주목했다. 액션 신을 촬영할 때 배우들이 액션감독과 리허설을 하듯, 성적인 장면을 촬영할 때도 배우와 스탭들 사이에서 불편함이 생기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다.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에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함께한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한국 영화계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양성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또한 BFI는 성별, 인종, 장애, 성적 지향 등을 모두 고려한 다양성 표준을 개발했다. BFI는 공적 기금을 받는 작품은 다양성이라는 공익성을 띠어야 하고, 이것이 곧 영화 서사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한국영화계 또한 과소 대표되었던 집단이 좀더 재현될 수 있는 창작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영비법 개정 이후 든든의 새로운 계획과 목표는.

=영비법 개정 이후 제작사들로부터 성희롱 예방교육 요청이 늘었다. 강의를 개선하기 위해 강사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관련 최신 이슈는 물론 활발한 실시간 소통 방법 등을 특강으로 전달하고 있다. 지금은 실시간 온라인 강의만 진행하고 있는데, 상시 들을 수 있는 영상 강의 또한 개발하려고 한다. 이 밖에도 든든 홈페이지와 SNS에 카드뉴스, 칼럼 등 다양한 콘텐츠를 올리고 있으니 현장에서 많이 활용하길 바란다. 든든의 핵심 활동인 상담지원과 예방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다양성 교육을 통해 포용적인 영화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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