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다국어 왜 써Yo? 이상韓 표어들
2021-09-30
글 : 정소연 (SF 작가)

법원 주차장에 법무부 이송차량이 있다. 차에는 밝은 표정으로 양손을 들고 하나의 줄을 잡고 선 사람들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치우침 없는 공정한 재판을 위한 법Join, 국민참여재판’이라는 표어가 쓰여 있다. 아마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가(join)하는 국민참여재판에 적극 협조하여 법조인(法曹人) 역할을 하자는 뜻일 것이다.

구치소에 갔다. 해상도 낮은 LED 전광판에 교정 마스코트인 보라미와 보드미가 찌그러진 채 웃고 있고, 그 옆으로 ‘청렴韓 교정’ 어쩌고 하는 표어가 흘러간다. ‘韓’자만 한자로 쓰여 있다보니 글씨체가 다르고 줄도 안 맞는다. 아마 한국(韓國)의 교정공무원을 상징하는 보라미와 보드미가 맡은 바 소임을 청렴하게 다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일전에 관공서를 지나가다 표어와 사진 공모전 홍보 포스터를 보았다. ‘마음을 이어주는 크리에이터’라고 쓰여 있었다. ‘마’, ‘이’, ‘크’ 세 글자를 한눈에 들어오게 크게 썼다. 아마 공모전에서 모집하는 표어나 사진은 주제를 전달하는 장치가 되니 마이크(microphone)와 같다는 뜻일 것이다

관공서와 공공 영역을 점령한 이런 표어를 볼 때마다, ‘어째서 다개국어로 장난을 치지?’라는 생각을 한다. 별 우스운 말장난을 열심히 한다고 웃고 넘길 수 없다. 너무나 많은 공공 영역의 표어가 영어나 한자 같은, 초급 한국어와 한글의 범위를 넘는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join이라는 영어 단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국민참여재판 홍보 문구의 영어는 아무런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다. 표어 아래의 그림도 사람들이 줄 지어 같은 줄을 잡고 선 것이라 재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런 표어가 유치하다고 웃을 수 있는 사람과 이런 표어의 의미를 온전히 해석할 수 없는 사람이 나뉠 수밖에 없다. 연령, 교육, 성별 등을 불문하고 국민 일반의 의식을 재판에 반영한다는 국민참여재판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 청렴韓 행정, 청렴韓 교정도 마찬가지다. 표어 공모전의 표어가 2개 국어 말장난인 ‘마이크’는 이런 형식의 표어를 허용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수많은 시민공모에 출품되는 표어나 홍보 문구가 2개 국어 동음이의를 활용한 것이고, 우수작을 선정하거나 홍보물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으니 이런 표어가 계속 쓰이는 것일 터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명을 한자로 쓰고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 한글을 못 읽는 사람이 어디 있냐느니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를 배운다느니 국가명 정도는 한자로 읽을 줄 알아야 국민이라느니 하는 말을 할 일이 아니다. 어째서 어떤 사회 구성원들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문장과 표현을 만들어내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일까?

홍보나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 내가 막연히 생각해보아도, 돈이나 음료수병 앞에서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사양하는 동작을 취하는 보라미와 보드미의 모습이나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연령과 성별이 다 다른 배심원들의 모습 같은 그림만으로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이러는지 모르겠다. 한국어를 포함해 2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사람을 상정한 표어를 볼 때마다 나는 이런 표어들이 전부 차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거 혹시, 나만 불편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