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강릉국제영화제]
GIFF #2호 [인터뷰] VHS를 추억하는 세대를 위한 사랑과 자유의 오디세이
2021-10-23
글 : 김현수
사진 : 백종헌
<스트로베리 맨션> 앨버트 버니 감독

올해 강릉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스트로베리 맨션>은 정부가 인류의 꿈을 컨트롤한다는 독특한 세계관의 설정 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VHS 테이프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적인 추억의 기계 장치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SF 영화로, 관객을 마치 1980년대 비디오숍이 유행하던 시기 어디쯤으로 던져 놓는다. 꿈과 기억에 관한 소재와 기계 장치의 등장만으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작품과의 연관성을 포착할 수도 있고 기괴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오가는 어드벤처 영화라는 점에서 테리 길리엄 감독 세계의 색채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익숙한 레퍼런스에 함몰되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 제작과정에서도 특정한 형태나 기술의 발전된 상태를 지우고 낡고 오래된 과거의 기술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감독이 추구하는 거대한 미학적 세계의 틀이 보다 뚜렷하게 다가온다. 볼티모어 출신의 앨버트 버니 감독은 동료이자 배우인 켄터커 오들리와 공동 연출을 했는데 두 사람의 협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아쉽게도 켄터커 오들리 감독은 영화제 참석을 준비하던 와중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내한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앨버트 버니 감독에게 이 영화의 독특한 제작과정에 관해 물었다.

- 영화 제목을 구글링하니 ‘스트로베리 맨션’이라 불리는 필라델피아의 어느 마을이 먼저 검색되더라. 이 영화의 제목과 해당 마을이 연관이 있나.

=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구상할 때 적합한 제목 같아서 지었는데 동명의 마을이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제목을 바꿀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우리 제목이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놔뒀다. 선댄스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하던 날에도 어떤 뮤지션이 발매한 앨범 제목이 ‘스트로베리 맨션’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우연이 겹치는 상황이 재미있다.

- 인간의 꿈에도 정부가 세금을 매겨 징수한다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설정이 독특하다.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게 됐나.

=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어떤 남자가 집으로 걸어가는데 그 집에 들어서면 VHS 테이프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왜 그 집으로 걸어 들어갔는가, 그리고 그 많은 VHS 테이프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까. 그렇게 아이디어에 살을 덧붙여가다 보니 테이프 안에 사람의 꿈이 기록되어 있다면? 이란 질문을 던져보게 됐고 남자를 세금 징수원으로 만들게 됐다. 특정한 장면이 먼저 떠올랐고 거대한 세계관이 나중에 덧입혀지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이라면 분명히 미래의 언젠가는 꿈에도 세금을 매길 거라 확신하며 상상력에 살을 붙여갔다. (웃음)

- 미래가 배경이지만 디자인 컨셉이 아날로그적이고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만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 198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냈는데 그 때의 경험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당시에는 모든 기계가 거대하고 투박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 때는 1980년대라는 한정된 세계만을 레퍼런스로 삼지 않았다. 다양한 시대를 오마주하고 싶었다. 등장 인물의 수트는 1940년대 디자인이고 이들은 1960년대 디자인이 떠오르는 차량을 타고 다닌다. 영화가 시작한 지 5분 안에 이런 다양한 시대 배경 요소를 뒤섞어 관객을 이상한 상황으로 빠져들게 만들 수 있다면, 이후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모험으로의 초대가 성공적일 거라 생각하며 초반 장면에 집중했다.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요즘 출시되는 21세기의 자동차 디자인에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예를 들어 내가 1967년에 출시된 차를 보게 된다면, 나는 그 차에서 고유한 디자인과 매력을 느끼게 된다. 공동 연출한 켄터커 역시 나와 생각이 같았다. 우리가 좋아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들뜨게 만드는 것들로 영화를 가득 채워보자고 생각했다.

- 영화를 보고 나면 ‘스트로베리 맨션’이란 공간이 뜻하는 바가 궁금해진다. 주인공 제임스의 꿈 속 공간이 빨간색으로 뒤덮여 있어 미학적인 관점에서 딸기와 연결 지어 볼 수도 있다.

= 마치 꿈과 현실이 교차되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나리오 초고 단계에서는 실제 딸기를 등장시키기도 했었다. 푸른 들판 위에 덜렁하니 놓인 집 한 채가 마치 딸기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어떤 의미를 담으려 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쓸 때 직관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를 적용시킨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 세계도 의미를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 제임스가 타인의 꿈을 들여다보며 설명할 수 없는 존재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오디세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방대한 이야기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의 모험담을 묘사하는 공간이나 소품이 여러 시간배경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곧 의도적으로 특정한 시대 묘사를 지양했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제임스의 여정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제임스의 성장일까.

= 이야기의 시작점에서 제임스는 조금은 경직된 사람이었다. 15년 동안 타인의 꿈을 검수하며 세금을 징수하며 살던 공무원이어서 어떤 꿈을 들여다봐도 감정의 동요가 없는 인물로 설정했었다. 그런데 원인 모를 누군가의 꿈을 보고는 사랑에 빠져버리고 어떤 자유로움을 만끽해버리고 난 뒤에 그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 뒤늦게 세상에 눈을 뜨고 질문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의 꿈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어떤 마지막 보루다. 내 꿈에서는 무슨 황당한 일을 겪어도 내가 중심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꿈 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랑의 힘으로 내 삶의 통제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새롭게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나.

= 개인의 정체성과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슈퍼딜라이트>라는 작품을 구상 중이다. 자본주의에 짓눌린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는 이야기다. 말그대로 길을 찾아 나가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한 커플이 쇼핑몰에서 길을 잃고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재미있게 비틀어 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보든 영화를 가내수공업 형태로 작업해왔다. 필요할 때는 친구와 가족들도 출연을 시키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마지 어릴 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규모를 좀 키워서 만들려고 한다. 내가 지금보다 더 성공한 감독이 되더라도 그 느낌을 잃지 않고 작업하고 싶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