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강릉국제영화제]
GIFF #6호 [인터뷰] '아야' 사이먼 쿨리발리 길라드 감독
2021-10-27
글 : 김현수
사진 : 백종헌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오가는 섬마을 소녀의 성장기

극영화인가, 다큐멘터리인가. 보는 내내 관객을 의아하게 만드는 <아야>는 코트디부아르의 외딴섬에 사는 소녀 ‘아야’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삶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환경 문제로 인해 점점 위태로워지는 섬마을 생활은 아야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엄마는 아야를 위해서 마을을 떠나게 하고 싶지만 결정은 아야의 몫이다. 극중 ‘아야’의 이야기는 백퍼센트 허구지만 사이먼 쿨리발리 길라드 감독이 진두지휘한 독특한 제작과정을 듣고 나면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와 현실이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독특한 실험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칸국제영화제는 1993년부터 독립영화배급조합인 아시드(ACID)의 배급작들을 별도의 섹션인 ‘아시드 칸’을 마련해 소개해오고 있으며, 올해 강릉국제영화제에서도 8편의 아시드 칸 선정작을 볼 수 있다. <아야>는 올해 74회 칸국제영화제 아시드 칸 섹션에서 소개된 영화다. 강릉을 찾은 벨기에 출신의 사이먼 쿨리발리 길라드 감독에게서 홀홀단신 코트디부아르 남부 해안도시 라우를 찾아가 가슴 뭉클한 한 소녀의 성장담을 완성해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 ‘아야’가 실존 인물인지 가상의 캐릭터인지 보는 내내 관객을 헷갈리게 만드는 독특한 영화다. 어떤 계기로 영화를 구상하게 됐나.

= 내가 사는 벨기에에서 모터사이클 세계에 뛰어든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구상 중이었다. 백인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모터사이클 세계에서 흑인 소녀가 어떻게 성공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 도중에 너무 지쳐서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코트디부아르였다. 그 곳에서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차가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이 며칠 묵게 된 곳이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서 바다와 인접한 마을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그 곳은 내 눈에 죽어가는 파라다이스처럼 보였다.

- 그런데 ‘아야’는 정말 가상의 캐릭터가 맞나.

= 그 곳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알게 됐는데 통역도 해주고 가이드도 해주는 그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을 알게 됐다. 내가 이 곳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이야기는 한 소녀의 성장담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아야’를 연기한 마리 조세 코코라라는 소녀를 소개시켜 줬다. 그녀의 어머니도 만났는데 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이전에 만들려던 모터사이클 도전기에서 세상과 맞서 자기만의 삶을 살기 위해 싸워 나가는 여성의 서사만 취한 다음 마리 조세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극중 아야와 그의 엄마, 동생은 실제 마리 조세의 가족이다. 마리 조세는 태어나서 섬 밖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카메라도 처음 봤고 연기는 더더욱 잘 몰랐던 친구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연기가 무엇인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마리 조세가 엄청난 용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 영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 프로덕션 규모가 궁금해지는 영화였다.

= 단편 영화를 찍을 때부터 나는 모든 제작 과정을 혼자서 책임졌다. 영화를 찍고 싶은 곳이 생기면 나 혼자서 카메라와 기본적인 조명장비 몇 가지만 들고 현지인들을 만나 내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을 고용한다. 기술적인 배경지식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고 모든 걸 가르쳐가면서 만들어야 한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개월 동안 그 곳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충분히 친해지고 생활상을 이해한 다음 카메라를 켠다. 그들과 신뢰를 쌓기 시작하면 이후의 제작과정은 훨씬 수월해진다. <아야>는 대략 8개월 정도가 소요됐다.

- 다큐멘터리를 찍는 방식으로 극영화를 만든 셈이다. 그 때문인지 아야가 처한 몇몇 상황은 연기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가령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갈등하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그를 연기한 마리 조세의 실제 삶은 얼마나 반영됐을지 궁금하다.

= 마리 조세의 엄마와 남동생이 실제로 등장한 것 외에는 대부분 지어낸 것이다. 마리 조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는 영화가 아니고 이 곳 라우라는 섬이 역사적으로 감당해야 할 엄청난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리 조세와 아야는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분명한 극영화라는 것이 <아야>의 중요한 점이다. 분명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장면 같은 경우는 실제로도 마리 조세가 너무나 부끄러워하는 상황에서 촬영을 했다. 그녀가 연기를 해야 한다는 걸 분명이 인지한 채 찍었던 장면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키스신을 연기한다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 끝내 아야는 섬을 벗어나게 되고 누구보다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카메라가 아야의 옆에 가까이 붙어서 그녀의 일상과 동선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라우 섬이 처한 환경문제가 계속해서 드러나게 된다.

=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문제 중 내가 담고 싶었던 장면이 무덤 이전이다.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 무덤가 입구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사람들이 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벌써 몇 번이고 이장을 반복하고 있다더라. 그 곳 사람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이 섬의 항구 주변이 대단히 발달된 곳이었다. 호텔과 병원, 역사 유적지도 많았다. 모두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과의 사투에서 최소한의 것들을 계속 해서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조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유일한 행위인 것이다.

- <아야>의 촬영 도중 찍어야 할지 말지 혼란스러웠던 순간은 없었나. 극영화이긴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고민하는 윤리적인 촬영방식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 내가 만들어내는 장면이 아야로 대표되는 그 곳 사람들의 가난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담고 싶지 않았다. 실제 그들의 삶 뿐만 아니라 영화에 담긴 실생활 중에는 우리의 시선으로 가난해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을 마치 비참한 모습처럼 묘사하지 않으려 했으며 그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게 할 생각도 없다. 나와 함께 일했던 스태프들과의 신뢰가 없었다면 완성하기 힘들었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