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강릉국제영화제]
GIFF #7호 [인터뷰] '이웃들' 마노 카릴 감독
2021-10-28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어린이 교육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마노 카릴 감독은 시리아 난민이었다. 시리아에 있는 쿠르디스탄에서 살았던 그의 어머니는 총에 맞아 죽었고, 그의 학교에는 쿠르드어를 금지하고 아랍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부임했다. 시리아로 다시 돌아갔을 때 그는 감옥에 수감되어야 했다. 스위스로 망명한 이후 비로소 그의 과거를 영화로 펼쳐낼 수 있었던 그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이웃들>이다. 1980년대 초 시리아의 어느 국경 마을, 소년 세로는 처음으로 간 학교에서 언어를 규제하고 유대인을 증오하라고 가르치는 교사를 만난다. 그저 만화를 볼 수 있는 TV를 갖는 게 꿈이었던 소년은 흉포한 전체주의가 어떻게 마을을 변화시키는지 관찰한다. <이웃들>이 담은 80년대 시리아의 모습은 현재 시리아의 전쟁과 난민 문제를 이해하는 단서다. 마노 카릴 감독을 만나 그의 어린 시절과 영화에 대한 꿈, 시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이웃들>은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 구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 다시 쿠르디스탄으로 돌아가서 영화를 찍으리라 다짐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시 군부에 의해 수감됐던 나는 출소 이후 스위스로 망명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25년 전부터 갖고 있었지만 일련의 사건들이 있어서 영화화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들은 실제 경험에서 일부분을 가져왔지만 <이웃들>이 보다 특별한 것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선 지대에 있는 마을에서 산 것, 쿠르드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국가 사회주의를 강압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를 다닌 것 등 모든 것이 과거 경험을 그대로 녹여낸 것이다.

- 당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에서 실제로 촬영하는 건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실제와 허구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해갔는지.

= 쿠르디스탄은 시리아와 이란, 이라크, 터키 4개 지역에 걸쳐 있다. 내가 살았던 건 바로 그 경계에 있는 지역이었다. 아버지는 시리아인, 어머니는 터키인이었기 때문에 양쪽 가족들도 국경을 중심으로 갈라져 있었다. 난 시리아에 있는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에서 <이웃들>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터키 쪽의 쿠르드인들을 공격하면서 그 계획은 어렵게 됐다. 그래서 이라크에 있는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세트를 공수해 와서 같은 분위기와 느낌의 마을 하나를 만들었다. 비용이 많이 들긴 했지만 크루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곳이 이라크인지 시리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옛날에 살던 곳과 똑같은 분위기의 마을을 만들 수 있었다. 또 시리아 사람들이 보더라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언어의 모든 디테일을 신경 썼다. 결국 쿠르드인들은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한 생김새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강압적인 교사를 포함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 아이와 다양한 어른들의 만남을 통해서 삶의 모자이크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전기만 들어오면 행복할 정도로 단순하고 순수한 삶을 살았다. 그들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잔혹하게 망가지는지를 어린이의 눈을 통해 담고 싶었다. 한 세대를 만드는 데 있어 교육은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만 봐도 너무 명확하게 보인다.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다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어른으로 자란다. 어린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교육하느냐가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특히 독재자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실제 시리아는 북한을 모델 삼아 아이들에게 유니폼을 입히고 스카프도 두르게 했다. <이웃들>도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던 마을에 아랍의 독재 군부가 들어오고 강압적인 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아이들을 나쁜 세대로 키워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무장조직 아이시스(ISIS,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가 만들어진 과정과 비슷하다. 45년 전 인형의 목을 따는 것을 배운 아이들이 자라서 실제 사람의 목을 따는 어른이 됐다. 나는 학교에서 독을 먹어도 부모님이 해독제처럼 치료해줬기 때문에 지금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아이시스와 똑같은 어른으로 자랐을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권이 있을 때 독재를 선택하지 않는다. 독재자들은 군중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그들이 어둠 속의 짐승처럼 선택권 없이 살도록 만든다. 사람들이 태어날 땐 모두 핑크색이다. 아기가 울 때 먼저 우유를 주고 존중을 심어줘야 좋은 어른으로 자란다. 우유는 먹였지만 존중은 주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시리아가 이렇게 된 것이다. 시리아에서 24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상됐다. 지금 시리아는 나치와 똑같은 이념을 물려받은 바트당이 지배하고 있다. 그것이 시리아 사람들부터 문화유산까지 모든 것을 붕괴시키고 있다.

- 당신의 필모그래피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로 나뉜다. <이웃들>은 극영화로 찍었다. 다큐멘터리 혹은 극영화 중 어떤 형식으로 만들지 어떻게 결정하나.

=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화학교에서 공부를 할 땐 극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닐 때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둘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과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어느 쪽이 더 좋은 방법인가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명확히 구분 짓지 않는 거 같다. 극장에서도 다큐멘터리, 극영화, 할리우드영화를 차별 없이 보여준다. <이웃들>을 극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밸런스에 있다. 당시 상황을 화면에 옮겨서 생생하게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미 시리아가 많이 파괴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로 찍을 수는 없었다.

- 터키 군대로부터 삶의 터전을 파괴당하고 난민이 된 쿠르드인 양봉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데르 임커>는 어떻게 찍게 됐나.

= 다큐멘터리 작업을 좋아하지만 작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주인공과 우정을 쌓고 그들의 존중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감독과 대상이 친구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터부 없이 마음을 열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우정이 돈독해진 후 작업에 들어간다. <데르 임커>는 주인공 양봉가 그리고 벌들과 3년 동안 산에서 함께 지내면서 관계를 쌓은 후 촬영을 시작했다. 그래서 해외 관객들은 극영화인 줄 알고 “저 배우는 누구냐”라고 묻기도 했다. 영화를 만드는 신인 감독, 특히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그 영화는 만들 수 없다”라고 얘기한다. 영화 작업은 공장에서 무언가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식 하나 낳아서 잘 키우는 것과 같다. 그만큼 열정과 애정이 필요하다. 극영화도 다큐멘터리 주인공에게 하는 것처럼 똑같은 애정을 갖고 친분과 우정을 쌓고 존중을 얻으려고 노력한다면 관객에게 이야기가 잘 전달될 것이다.

- 주인공은 TV에서 만화를 보고 싶어 하는 어린이인데 실제로도 그랬나. 그게 당신이 영화감독이 된 이유와도 연결되나.

= 어렸을 때 전기가 없는 지역에서 살았다, 만화를 너무 보고 싶었고 TV를 갖고 싶었다. 중학교 때는 늘 영화를 보러 다녔다. 아주 싼 값에 극장에 들어갈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이 있었다. 영화 상영이 시작되면 매표소 직원이 전부 떠나고 그 앞에 경비들만 지키고 있는데, 그들에게 티켓값의 1/4만 주면 몰래 들여 보내줬다. 대신 초반 10분은 못 본다. (웃음) 너무나 어둡고 잔혹한 밖의 현실과는 달리 인도영화든 미국영화든 나를 꿈과 자유의 세계로 데려갔기 때문에 그 시절 영화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웃들>의 세로는 TV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싶다는 아주 작고 소박한 꿈을 갖고 있는데 외부에서 더 크고 잔혹하고 사악한 꿈을 갖고 마을에 들어온다.

- 당신은 시리아 난민이었고 그들의 삶에 관한 영화를 찍기도 했다. 팬데믹 시대 난민들의 상황은 어떤가.

= 난민 텐트에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제대로 살 수 없는 만큼 아주 열악한데 그 상황이 2배로 더 힘들어졌다. UN은 백신을 주더라도 난민들에게 직접 주는 게 아니라 캠프를 운영하는 국가에게 전달한다. 그럼 이 국가들은 자기들에게 협조하고 동조하는 사람들한테 백신을 주지 쿠르디스탄 사람들에게 주지는 않는다. 이라크의 경우 아이시스와 싸우기 위해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백신도 받지 못했다. 터키도 마찬가지다.

-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나.

= 지금 작업 중인 영화가 2편 있는데 둘 다 스위스에서 찍을 거다. 그중 하나는 어린이 영화다.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서 머릿속 이야기를 상상해서 들려주곤 하는데 아이들이 정말 재밌다고 한다. 그 스토리를 확장 시켜 영화를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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