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백성을 사랑한 왕 세종을 무대에서 만나다
2021-11-29
글 : 배동미
창작 뮤지컬 <세종, 1446>
사진제공 여주세종문화재단

창작 뮤지컬 <세종, 1446>은 2018년 세종 즉위 600주년을 맞아 탄생했다(연출 김은영, 극본 김선미, 작곡 임세영·김은영).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초연된 작품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단계적 일상회복이 이뤄지는 최근 전국을 돌며 관객을 만나고 있다. 10월과 11월 하남과 진주 공연을 전석 매진시킨 <세종, 1446>을 소개하는 리뷰와 함께 작품을 제작한 한승원 HJ컬쳐 대표의 인터뷰를 덧붙인다. 뮤지컬 <세종, 1446>은 민과 관이 협력해 맺어진 결실이다. 세종대왕의 왕릉이 있는 여주시와 여주세종문화재단이 뮤지컬 제작사 HJ컬쳐와 힘을 합쳐,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담긴 작품을 탄생시켰다. 민과 관이 함께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 남다른 노하우를 지닌 이항진 여주시장의 인터뷰도 놓치지 말길 바란다. 다음 장부터 백성을 사랑했던 왕, 세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막이 오르면 조선 궁궐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늘에는 용무늬 장식이 돋보이는 근정전의 천장이 있고, 그 아래에는 붉은 어좌가 놓여 있다. 무대 위에 가장 먼저 등장한 이는 조선의 3대 왕 태종, 세종의 아버지다. 배우 남경주와 김주호가 연기하는 태종은 굵고 깊은 목소리로 “죽어라. 왕의 길 막는 자”라고 노래하며 고려 문신 정몽주와 정도전을 제거하고 형제의 피까지 보고야 만다. 이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넘버 <조선을 위해>는 난폭한 양녕 대신 서책에 파묻혀 살던 충녕이 세자에 책봉되고 빠르게 왕위를 이어받는 과정을 담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던 태종은 장자가 아니라는 열등감이 있었고, 생존한 아들 중 맏이인 양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양녕은 세자 수업을 게을리하며 여인에게만 관심을 쏟았는데, 상왕인 정종의 후궁까지 건드릴 정도였다. 무대 위 사대부들은 “양녕을 폐하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조선을 위해”를 반복해 합창하고, 태종은 “세자 양녕을 폐하노라. 세자 충녕에게 선위하겠다”라고 노래한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세종은 실제로 빠르게 왕위에 올랐다. 세자 책봉 2개월 만인 1418년 9월 22살에 그는 왕이 되었다. 태종은 살아서 왕위를 물려주는 대신 조정에 두루 간섭했는데, 외척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세종의 장인인 영의정 심온을 제거하기까지 했다. 배우 박유덕과 정상윤은 이같이 평탄치 않았던 세종의 삶을 연기하며 인간 이도의 혼란과 슬픔을 깊이 있게 표현한다.

사진제공 여주세종문화재단

<세종, 1446>은 태종 사망을 기준점으로 삼아 1막과 2막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2막에서 세종의 선정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는데, 태종식 피의 정치가 끝나자 조선은 정치적 안정뿐 아니라 국방과 과학,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꽃봉오리를 맺는다. 1막에서 수염도 없이 등장했던 어린 세종은 2막에선 긴 수염을 늘어뜨린 채 등장해, 왕성하게 정사를 돌보기 시작한다. 세종은 여진족의 침범에 맞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국경을 확장하고, 가뭄과 수해에도 불구하고 매년 변함없이 거둬들이는 조세제도를 손본다. 노비 장영실에게 벼슬을 내리고 자격루(물시계), 앙부일구(해시계)를 발명하게 했다. 참고로 1막에서 양녕을 연기했던 배우 황민수, 김준영은 장영실로 분해 1인2역을 소화하며 감미로운 목소리로 세종과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2막은 1막과 비교해 밝아진 조명과 맑은 멜로디로 세종이 이룩한 조선을 표현해낸다.

<세종, 1446>은 교훈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액션 장르의 재미를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압록강, 두만강 유역에서 조선군이 활약하는 모습을 무대 위에 펼쳐내고, 고려의 부활을 꿈꾸는 세력이 소동을 벌이는 장면에서도 액션을 가져왔다. 무사 운검을 연기한 배우 이지석은 날렵한 발차기를 선보이고, 객석에서도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만큼 힘찬 칼싸움 군무를 소화해낸다.

사진제공 여주세종문화재단

“들판에 피어 있는 이름 없는 꽃들의 이름을 부르고자 글자를 만든다.” 세종은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그가 사망하기 4년 전의 일이다. 눈을 감기 전까지 그가 얼마나 한글 창제에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연 막바지의 세종은 긴 수염이 희끗희끗하고 기력이 쇠한 채 훈민정음을 완성시키는데, 지병인 당뇨로 눈 건강을 잃은 상태다. ‘임금의 눈은 거의 멀었지만 훈민정음으로 백성은 눈을 떴다’는 작품의 메시지는 피날레 합창에서 더욱 강조된다. 1막에서 태종의 노랫말 “죽어라, 왕의 길을 막는 자”는 피날레에서 세종의 “왕의 길 위에는 백성 있으니”라는 가사로 바뀌고, 세종과 백성이 함께 어울려 노래하는 목소리가 극장에 울려 퍼진다. <세종, 1446>은 세종이 지닌 해박한 지식뿐 아니라 그의 애민정신이 있었기에 훈민정음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걸 감동적으로 짚어낸다. 그가 만든 28개의 글자가 있어 한국 문화가 지금처럼 꽃필 수 있었다. 세종의 뜻대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이 자신이 뜻한 바를 읽고 쓰고 말하게 되는 세상”이 이뤄진 현재,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웠는지 보고 느낄 수 있는 무대가 오는 12월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과 여주세종국악당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