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CNN 필름 스쿨 장학 프로그램 참여한 한국과 미국의 젊은 감독 4인 대담: 정새별, 정태회, 세르게이 하르토노, 스카일러 글로버
2021-12-26
글 : 김성훈
다양성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

영화 만들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코로나19도 막을 수 없다. 지난 12월10일 온라인에서 열린 CNN 필름 스쿨의 ‘제네시스 영화 장학생 프로그램’ 상영회에서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 4명이 만든 단편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CNN 필름 스쿨은 CNN 인터내셔널 커머셜(CNNIC)이 제네시스와 함께 글로벌 차세대 영상 제작자를 양성하기 위해 올해 초 론칭한 프로그램이다. 이번 장학 프로그램에 선발된 학생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 중인 정새별(<City Mermaid>), 정태회(<Waves>), 뉴욕대학교의 세르게이 하르토노(<Jordie: Challenging America’s Fashion Industry>), UC버클리대학교의 스카일러 글로버()다. 각각 1만5천달러의 장학금과 CNN 필름 스쿨의 전문적인 멘토링과 지도 아래 제작한 단편다큐멘터리는 국적도, 소재도, 형식도 제각각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다양성과 공동체 연대의 가치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씨네21>은 한국과 미국의 재능 있는 학생 네명과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한 <CNN>의 존 젠슨 에디터를 줌으로 만나 코로나19 시대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과 최근 급변하는 콘텐츠 산업 환경, 전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네명의 학생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는 CNN 필름 스쿨 홈페이지(https://edition.cnn.com/specials/world/cnn-film-school)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정새별 감독
세르게이 하르토노 감독

-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어떤 영화를 만들고자 했나. 혹시 주최측으로부터 특별히 요청받은 주제가 있었나.

정새별 사회적으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주제를 다뤄야 한다는 것 외에 특별히 주문받은 건 없었는데, 4편의 작품을 보니 인종과 나이가 각기 다른 감독들이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 놀라웠다.

세르게이 하르토노 모두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가운데 상황을 긍정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열정과 희망을 전달하는 이야깃거리를 찾으려고 했다.

스카일러 글로버 맞다. 나 또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스토리를 발굴하려 했다.

정태회 <CNN>이 감독에게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재량권을 많이 주었다.

존 젠슨 우리는 학생들에게 사회적으로 전달할 가치가 있는 스토리와 코로나19 속에서 청사진을 제시할 만한 소재를 찾을 것을 요청했다. 어떤 문화나 스토리가 선정되든 캐릭터, 감정, 갈등, 시각적 요소 등을 다룰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김성훈 기자
정태회 감독

방역 지침하에서 촬영하기

- 말씀대로 역경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작업했나.

정태회 수영장에서 아쿠아로빅을 하는 주인공 할머니의 생생한 표정을 담는 게 관건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출연자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해서 곤란했다. 그런데도 안전하게 촬영하기 위해 아쿠아로빅 수강생 출연자 수를 계획했던 것보다 줄였고, 백신 접종자만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방역 지침을 따르는 게 쉽지 않았지만 계획한 장면 모두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스카일러 글로버 나 또한 방역 지침을 충실히 따랐고, 마스크를 항상 착용한 채 촬영을 진행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오랫동안 지켜온 규범이 무너진 사회에서 어떻게 대응할까 항상 고민했다.

세르게이 하르토노 내 작품 주인공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를 돌며 성장한 인물이다. 그가 서울패션위크에도 참여하고 싶어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서울에 갈 수 없었다. 촬영 내내 어떻게 하면 그가 겪는 현실과 일상을 잘 담아낼까 고민했다. 사람들은 장애인이 잘 돌아다니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과 나는 택시를 잡아타며 잘 돌아다녔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늘 흥미로웠고 즐거웠다.

정새별 코로나19 때문에 시도하고 싶은 걸 많이 하지 못해 아쉽다. 내 작품의 주인공은 고령이라 촬영 내내 걱정을 많이 했다.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고등어 축제에 많은 사람이 모여 즐기는 모습을 찍어 공동체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촬영 당시 스탭 대부분 백신을 접종하지 못해 찍을 수 없었다. 카메라가 지금보다 더 인물 가까이 다가갔어야 했는데, 방역 지침을 따르느라 식사 장면, 친구 만나는 장면, 시장 나가는 장면 등을 찍지 못했다. 방역 지침의 제약만큼이나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다. 큰 문제 없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어 감사하다. 존 젠슨 스토리 관리, 제작 진행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아무리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직원과 학생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보다 우선될 순 없었다.

- 이번 프로그램이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됐나.

정새별 멘토링이 흥미로웠다. 고향인 부산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멘토에게는 새로운 스토리로 다가갔다는 점이 신기했다. 단순히 학생과 멘토가 아닌 같은 시대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동료로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됐다.

세르게이 하르토노 뉴욕대학교에서 뉴스와 다큐멘터리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지만, 실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CNN>에서 온 내 멘토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매일 진행된 화상 회의를 통해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스토리를 전달할지, 시각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등을 함께 논의하고, 쓸 수 있는 영상과 그렇지 않은 영상을 골라냈다.

스카일러 글로버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 나는 프로덕션과 포스트프로덕션에 능숙한 반면 프리프로덕션이 약한데 멘토 덕분에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정태회 이야기를 어떻게 간략하고 효율적으로 구성할지,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할지 맞춤형 도움을 제대로 받았다. 학생으로서 적지 않은 예산을 지원받은 덕분에 수영장을 대관하고, 수중촬영을 진행하며, 많은 출연자를 모을 수 있었다.

스카일러 글로버 감독

-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사연도 궁금하다.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인가.

정태회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학부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다큐멘터리 전공 전문사 과정을 밟고 있다. 영화를 공부하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에릭 호퍼다. 그가 ‘200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디어는 없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 영화나 다큐멘터리 또한 러닝타임 안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중요한 매체다. 그의 글쓰기 철학을 따라 짧지만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스카일러 글로버 10살 때 카메라가 좋아서 촬영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부터 적성을 찾은 셈이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는데도 어머니께서 밤낮으로 일하며 키워주신 덕분에 좋아하는 영화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스토리텔러나 필름메이커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설명하기 힘든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지를 항상 고민한다.

세르게이 하르토노 첫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함께 일했던 촬영감독에 대한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열정을 내게 많이 심어주었다. 뉴욕대에 합격한 뒤 <CNN>의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지 영감을 많이 받았다.

정새별 어릴 때 KBS와 EBS에서 틀어준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에는 다양한 장르가,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녜스 바르다가 롤모델이고, 세상의 모든 여성감독을 존경한다.

존 젠슨 에디터

우리가 꿈꾸는 다큐멘터리

-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OTT가 급성장했고 시리즈, 숏폼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들이 나오는 현재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정새별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보면서 OTT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우리 같은 젊은 창작자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OTT에선 다큐멘터리도 시리즈로 제작되지 않나. 장르나 형식,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

세르게이 하르토노 새별의 얘기대로 지금은 다큐멘터리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OTT 덕분에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전통적인 극장과 최근 급성장한 OTT가 공존하는 지금은 전환기라고 생각하고, 그 덕분에 관객에게는 콘텐츠를 골라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럼에도 매주 극장을 찾을 만큼 극장 가는 걸 좋아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15개월 동안 극장에 가지 못했다. 집에서 다큐멘터리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빨리 안전한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

스카일러 글로버 맞다. 극장은 절대 사라져서는 안된다. 다만 고무적인 건 최근 미국 사회가 개방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비영어권 영화나 시리즈가 여기서 인기를 모으는 게 인상적이다. 유튜브에도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존의 틀을 깬 영상들이 많다. 전통적인 플랫폼과 새로운 플랫폼을 잘 조화하는 게 중요하다.

정태회 확실히 변화를 체감하는 게 내가 만든 영화를 여자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2배속으로 감상하더라. (일동 폭소) 생존하기 위해 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해야 하는 건 거부할 수 없는 변화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트렌드라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바라보고 좇아야 하는 것일까. 2배속의 욕망에서 벗어나 한 작품을 온전히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공간은 결국 극장이다. 극장의 가치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지금은 많은 한국 콘텐츠를 미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최근 인상적으로 본 한국영화나 시리즈가 있는지 궁금하다.

스카일러 글로버 봉준호 감독. 영화가 마음에 들면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2, 3번 반복해서 감상한다. 반복해서 볼 때 영화뿐만 아니라 관객 반응까지 유심히 지켜본다. 사람들이 어떤 장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비교하는 거다. <기생충>이 대단했던 건 한국어 영화인데도 영어권 관객에게도 잘 전달해 몰입시켰다는 거다. 앞으로 계속 <기생충> 같은 한국영화를 보고 싶다.

세르게이 하르토노 한국 영화산업은 스릴러와 호러를 잘 만드는 것 같다. 아내가 호러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며 추천했다. 영화 <#살아있다>도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정새별 호러영화를 좋아하는 세르게이 아내에게 ‘K좀비’ <킹덤>을 추천한다. 한국은 스릴러나 호러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도 잘 만든다.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도 추천한다. (웃음)

사진제공 CNN 필름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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