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전시를 관람했다. 토드 헤인스가 <캐롤>을 연출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던 아티스트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창문, 거울, 쇼윈도 너머로 그가 포착한 뉴욕의 사람과 풍경들을 보니 호기심 많은 내향형 아티스트의 설렘이 보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전시장에서 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또한 만날 수 있었다. 사울 레이터 예술 세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무작정 카메라를 챙겨 들고 뉴욕으로 떠난 영국 출신 촬영감독 토마스 리치가 만난 사울 레이터는 작품만큼이나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55년째 같은 동네에 살며 사람과 사물과 풍경을 찍는 그는 그저 “남의 집 창문이나 찍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자신은 어떤 예술적 운동이나 사조에 동참한 적이 없으며, 세상에 알려지는 걸 바란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돌림노래처럼 반복하는 말은 “뭐, 어쩌겠어요”다. 오랫동안 정리를 하지 않아 집 안 곳곳에 어지럽게 쌓인 사진들이 변질되어도, 여든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도 사울 레이터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 “인생에서는 무엇을 갖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버리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이 아티스트에겐 오직 자신이 아끼고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그림과 사진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는 것만이 중요하다.
‘(인) 노 그레이트 허리’라는 사울 레이터 다큐멘터리의 부제이자 이 글의 제목은 얼핏 생각하면 신년을 여는 타이틀로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연말연시는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한 후회와 조바심에 1년 중 가장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하고 넘치는 의욕을 자랑하는 시기니까. 하지만 서두를 필요 없다는 말의 의미를 속도보다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한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잠시 멈춰서 주파수를 맞추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이번호에서 배동미 기자가 만난 <오징어 게임> 정호연 배우의 말처럼, 독자 여러분 또한 “자신의 컬러와 영역”을 찾는 2022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