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다큐멘터리와 전시로 만나는 포토그래퍼 사울 레이터의 삶과 예술
2022-01-07
글 : 남선우
그저 바라보니 보이는 것들

사울 레이터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의 눈치가 보인다. 가려져 있을수록 자유롭다는 믿음. 작품이 남들에게 보일 만큼 가치 있지 않다는 판단. 사진집 한권으로 족하다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탐탁지 않아 한 심경. 2013년 11월 숨을 거두기까지 그런 마음들을 지고 산 유대인 예술가는 그로부터 8년이 흐른 한국에서 전에 없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 12월18일 피크닉(piknic)에서 전시가 시작되었고, 29일에는 다큐멘터리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가 개봉했다. 힙스터들의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가 생기고, 한글로 된 영화 잡지까지 나서서 자신을 조명하는 이 상황이 먼 곳의 레이터에게 퍽 당혹스러울지 모르겠다.물론 미술사가 맥스 코즐로프가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의 초입에서 읽은 글귀처럼, 레이터의 겸손을 넘어선 도피는 “그의 진심이지만 대단한 착각이기도 하다”. 컬러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챈 선구안과 매일의 도시 생활로부터 그 재료를 골라낸 비범함은 그의 이름을 언제고 묵혀둘 수만은 없게 했다. 천천히 빛을 본 그의 필름들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이 되었고, 멍한 현대인들의 감각을 깨웠다. 그러니 레이터의 눈치는 그만 보려고 한다. 그가 카메라로 본 동네를, 전시와 영화로 남은 그 기록을 영영 기꺼워하려 한다. 그렇게 그가 살아온 방식과 찍어온 사진을 엿보며 차분히 새해를 맞이하기로 하자. 레이터는 사진이 온갖 것을 음미하게 해줘서 좋다고 했다. 페이지를 넘기며,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날들을 음미할 수 있기를.

탈무드 대신 카메라를

Red Umbrella, c.1958 ⓒ Saul Leiter Foundation

사울 레이터가 13살 혹은 15살 때로 기억하는 어느 날. 그는 시 한편을 썼다. 제목은 무려 <신에게 이르는 길>. “신에게 이르는 길은 낡고 해어졌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짧은 글은 일찍이 의례와 규율에 신물을 느낀 유대인 집안 아이의 비유적 넋두리였다. 탈무드 학자인 아버지에게 “평생 유대인을 직업 삼아 살긴 싫다”고 항의했음에도 랍비 학교에 진학해야 했지만 레이터는 실은 오랫동안 화가를 꿈꿨다. 집안에서 바란 학문적 성취가 아닌 시각적 표현으로 세상에 접속하려 했던 레이터는 중퇴 후 뉴욕으로 이주했고, 갤러리에 그림을 선보였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가로 나서기 시작한 건 추상 화가 리처드 파우제트 다트와 친해지며 그로부터 사진을 권유받고부터다. 1950년대 들어서면서 그의 사진은 <라이프> 지면, 뉴욕현대미술관 등에 소개됐는데, 어떻게든 사진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그를 보호했다.

선구자이자 은둔자인

Untitled, undated ⓒ Saul Leiter Foundation

꾸준했지만 조용했다. 20대에 뉴욕에 정착해 60년 넘게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렸지만 사울 레이터가 주목받은 건 2000년대 중반으로, 그가 80대에 접어든 시점부터다. 컬러사진이 흑백사진에 비해 예술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던 시기에도 컬러 작업에 열성을 기울였던 그의 작업이 뒤늦게 관심을 받은 게 계기가 되었다. 레이터는 컬러사진의 선구자로 회자되며 사진 역사에서 중요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느리게 찾아온 찬사에 한탄하거나 감복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드러나지 않은 채 지내왔어도 “늘 만족했다”고,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커다란 특권”이었다고 말하는 예술가였다. 눈에 띄는 것들과 감춰진 것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숨겨진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진 그는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다면 다행이지 책이나 영화로 자신을 대단한 사람 취급하는 시도가 때로 마뜩잖았다고.

창문 뒤에서 왼쪽 귀 간질이기

Through Boards, 1957 ⓒ Saul Leiter Foundation
Untitled, 1960s ⓒ Saul Leiter Foundation
Carol Brown, Harpers Bazaar, 1959 ⓒ Saul Leiter Foundation

“별거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쪽 구석에 뭔가 알 듯 말 듯한 게 있는 사진을 좋아해요. 내 사진은 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게 목적이에요. 아주 살살요.” 사울 레이터의 삶과 취향, 예술적 지향을 한줄로 꿰는 이 발언은 그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틈을 비집고 헤쳐나가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균열 너머를 바라본 그의 카메라는 사물과 사람을 작게, 흐리게, 어둡게 포착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유리창을 중간에 두거나 자동차, 빌딩, 우산 등이 만들어낸 공간 사이로 겨우 들어가는 것도 그의 장기였다. 매그넘 포토 디렉터이자 큐레이터인 폴린 버메어는 이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포토저널리즘에 몰두한 작가들과 비교되는, “설교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방식이라 칭했다. 어떤 운동이나 사조에도 동참하지 않았던 레이터를 추상표현주의나 나비파와 연결짓는 비평들이 있었을 뿐이다. 마티스, 세잔, 보나르의 화집을 즐겨 보고 일본 미술을 동경했던 레이터는 오직 꾸밈없는 일상의 순간들을 붙잡기 원했다. 다큐멘터리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에도 나오듯 길을 걷다 벤치에 앉은 사람을 찍고, 대학 졸업식 현장을 찍는 것도 그 찰나를 스친 반응이자 표현이다. 연인 솜스벤트리와의 산책길을 찍을 때도, <하퍼스 바자>에서 패션 화보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레이터는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이 나한테는 유명인 사진보다 훨씬 흥미롭다”는 고백을 했을 뿐 상업적인 사진 촬영을 자발적 작품 활동과 굳이 다르게 여기지도 않았다. 돈벌이를 위한 사진과 예술을 위한 사진이 상호보완적이라 여겼다. 이런 그의 태도는 도리어 잡지 사진을 창조적으로, 전시 사진을 대중적으로 보이게 하는 여지까지 열어젖히며 경계 없는 ‘간지럽히기’를 가능하게 했다.

사울의 시선으로 <캐롤>을 바라보다

Paris, 1959 ⓒ Saul Leiter Foundation
<캐롤>

영화 <캐롤>의 테레즈(루니 마라)는 사진을 찍는다. 소극적이었던 그의 뷰파인더를 풍경에서 인물로 당긴 것은 캐롤(케이트 블란쳇)과의 사랑. 테레즈의 두눈으로 관계의 디테일을 들여다보려 했다는 감독 토드 헤인즈는 영화의 배경인 1950년대 사진 작품들을 참고해 프레임을 구성했다. 사울 레이터의 이름은 루스 오킨, 에스더 버블리, 헬렌 레빗, 비비언 마이어와 같은 여성 포토그래퍼들과 같이 거론되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사울 레이터에게서 당대 뉴욕의 분위기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 배웠다고 한다. “그의 차분한 컬러 팔레트는 반짝거리고 깨끗하며 매끈한 아이젠하워 시대 이전의 1950년대를 매우 구체적으로 대변한다.” 특히 도시 이미지가 담긴 창가나 거울 너머로 상대를 바라보는 <캐롤>의 시선은 사울 레이터의 분신과도 같다. 멀리서 천천히 다가가는 연인의 마음으로, 테레즈는 레이터의 렌즈를 빌린 셈이다.

전시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서울 남산 어귀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에서는 지난 12월18일부터 사울 레이터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레이터의 흑백사진과 컬러사진, 미공개 슬라이드 필름을 비롯해 패션 화보와 ‘페인티드 누드’ 회화 작업까지 망라한다. 레이터가 가족과 연인, 이웃들을 촬영해 간직한 스니펫(인쇄된 사진을 명함 크기로 찢어 만든 조각들.-편집자) 모음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레이터가 사용했던 의자를 공수해 그의 작업실을 재현한 ‘사울의 방’ 또한 피크닉 시네마 내부에 마련되었다. 피크닉 시네마에서는 매일 3회(오전 11시, 오후 1시·3시)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를 상영한다. 매주 월요일마다 쉬어가는 이 전시는 2022년 3월27일까지 이어지며 네이버 예약을 통해 티켓을 예매할 수 있다.

사진제공 피크닉(piknic)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