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영화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패러렐 마더스>입니다. 세기가 바뀌기 전, 알모도바르 감독은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욕망의 낮과 밤> <키카> 같은 원색적인 영화들로 사랑받았어요. 그러다 1999년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후, 도발성을 서서히 가라앉히면서 장구한 시간을 배경으로 삼는 멜로드라마, 가족드라마로 방향을 전환했어요. TV 아침 드라마의 소재로 예술을 한달까요. 우연한 만남이 엄청 많다거나, 기막힌 비밀을 갑자기 폭로한다거나, 결정적인 오해를 몇십년 동안 하는데, 이를 통해 복잡하고 큰 질문들을 스타일리시하게 던지죠.
<패러렐 마더스>의 배경은 2016년 마드리드예요. 포토그래퍼 야니스가 페넬로페 크루스의 배역입니다. 학살로 구덩이에 파묻힌 사람들의 시신을 발굴해 장례를 치르는 것이 야니스 고향 사람들의 숙원 사업인데, 야니스는 기사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법의학자 아르투오에게 그에 대한 도움을 청합니다. 나아가 매력적인 두 남녀는 연인이 되지요. 이 영화가 얼마나 스피디한지, 섹스 신을 은유하는 하얀 커튼이 휘날리면 어디로 가게요? 분만 대기실이에요. 야니스는 비슷한 시각에 출산하게 된 다른 산모 아나를 만납니다. 밀레나 스밋이 연기하는 아나는 10대 소녀로, 원치 않은 임신을 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다양한 양상을 띠어요. 처음에는 친구로 만났다가, 유사 모녀인 것 같다가, 자매애를 나누다가, 궁극적으로는 성애를 포함한 사랑에 가까워지지요.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갭이 하나 있어요. 20년의 나이 차에서 비롯되는 중대한 차이는 스페인 근대사에 대한 거리감이에요. 야니스는 농촌의 노동계급 출신으로 고통과 가까이 있지만, 어린 아나는 역사를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파헤쳐 고통을 되살릴 필요가 있냐고 묻죠.
이 영화는 알모도바르 감독이 스페인 내전과 이후의 프랑코 독재라는 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중요한 두개의 평행한 이미지가 바로 야니스가 유전자 검사를 위해서 아기의 입안을 닦아내는 면봉과 발굴단이 유골의 검체를 채취하는 면봉입니다. 미래를 살아갈 아이와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거죠. 좁게 보면, ‘패러렐’이 수식하는 말이 ‘마더스’예요. 야니스와 아나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두운 정치적 상황에서 남자들이 억울하게 죽고 사라졌잖아요. 아이들을 키우며 역사를 기억했다가, 수십년이 지나 그걸 발굴해내려는 모든 여자들을 통칭하는 것 같아요.
요컨대 이 영화는 세대와 혈연을 건너서 서로 손을 잡고, 선택에 의해 가족을 만들어내고, 역사를 망각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지켜내는 페미닌한 힘에 관한 영화예요. 이걸 함축하는 숏이 구덩이 시점에서 마을 여자들을 비춘 장면이죠. 유해를 내려다보는 결연하고 평온한 얼굴이 ‘세상은 그녀들이 지탱한다’라는 메시지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즉 조상의 유해 발굴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를 누가 어떻게 키우느냐의 문제, 이 두 가지가 <패러렐 마더스>의 ‘패러렐’한 주요 서사입니다. 그러나 이 둘이 플롯 단위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미진한 감이 있어요. 아나가 야니스 세대의 관점을 납득해가는 과정이 거의 생략돼 있습니다. 이 점 또한 종종 지적되곤 하는데, 마드리드의 풍경은 인종적으로 훨씬 다양한 것에 비해 이번 영화도 압도적으로 백인들의 세계입니다. 다양한 인종의 캐스팅이 알모도바르 세계에도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패러렐 마더스> 와 함께 보면 좋을 작품
남선우 @pasunedame <애프터 웨딩 인 뉴욕>에도 알모도바르 세계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소재가 많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가 있고, 아이를 두고 떠났던 곳에 돌아온 이도 있죠. 줄리앤 무어,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하는 두 여성은 비밀과 거짓말이 밝혀지는 동안 각자의 선택을 내립니다. 처음엔 마냥 성숙하게 다음 스텝을 밟아나가는 캐릭터들이 의아했는데, <패러렐 마더스>를 보고 나니 이 영화가 다시 보였달까요. 두 작품 모두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움직임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되묻습니다. 참고로 바트 프룬디치 감독은 줄리앤 무어의 남편입니다. 부부가 함께 만든 영화라는 점을 알고 보시면 더 재밌을 겁니다.
배동미 @somethin_fishy_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시간적·심리적 거리감이 크지 않은 세대가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다룹니다. 지금은 독일이 과거사를 빠르게 해결한 모범 사례처럼 이야기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요. 영화가 플래시백하는 1958년만 해도 독일은 경제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어요. 68혁명 이후 젊은 세대가 이전 세대의 과오를 따지며 나치와 얽힌 과거사 문제가 다시 표면화됐고, 이것이 영화의 주요 이야기로 연결되는데요. 중년 여성과 청년 남성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만 홍보됐지만, 역사가 제대로 매듭지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