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걸 적용하자면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은 “말 한마디에” 1조5천억원의 이익과 손실이 오가는 살벌한 세계를 보여준다. ‘흰머리’여서, 혹은 ‘백번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백사’라는 별명이 붙은 전설의 협상 전문가 윤주노(이제훈)는 산인그룹에 쌓인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M&A 팀장에 임명되어 프로젝트를 이끈다. 드라마는 윤주노의 활약을 중심으로 한 기업 M&A 과정을 쫄깃하게 보여준다. 대중이 잘 모르는 M&A 세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이 드라마의 기본 골격은 ‘하이퍼리얼리즘’ 오피스물이지만 요동치는 사내 정치 풍경을 <동물의 왕국>의 관찰자처럼 보여준다는 면에서 정치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협상’이 어디 기업 M&A와 정치 등의 영역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던가. 물건을 사고팔 때나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매일 늘 누군가와 협상을 한다. 그러니 협상의 기술이란 결국 ‘삶의 기술’의 일부인 셈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최선을 다해 자신(과 조직)의 이익을 도모해야 하기에 ‘기술’이 미덕이요 실력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일이 되게 하는 건 ‘마음’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과정을 의미 있게 보여준다. “서류로 하는 전쟁”이라는 살벌한 협상의 세계에서 기술이 아닌, 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비현실적인 낭만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중심 서사 외에 이 전쟁과 같은 상황도 결국 인간들의 일임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배치하여 상기하게 한다. 즉 ‘감정’은 섞지 않되,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며 그의 마음을 얻는 게 협상의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살벌한 대치동의 학원가 풍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인간됨’을 보여주었던 낭만적인 리얼리스트 안판석 PD의 작품답다.
check point
드라마의 숨은 잔재미는 ‘남성들의 세계’를 보는 것이다. 수직적 위계, 등산과 사우나와 ‘룸’에서 이루어지는 막후 정치,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과 말들이 매우 진지하게 묘사되는데 묘하게 하찮고 우스워 의외의 개그 포인트가 된다. 단지 개그 포인트만 되는 게 아니라 ‘낡은 문화’를 상징하기도 하니 일타쌍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