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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연의 이과 감성] 우리는 모두 정신 차려야 한다
한 눈에 보는 AI 요약
영화 『돈 룩 업』은 혜성 충돌을 통해 기후 위기를 풍자하며, 과학적 경고가 정치·미디어·사회 속에서 무시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과 대중예술의 역할을 강조하며, 우리 모두가 생존을 위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1. 영화 『돈 룩 업』의 줄거리와 풍자
    1. 천문학자들이 지구 충돌 혜성을 발견하지만 정치권과 언론, 대중은 이를 무시
    2. 대통령은 정치적 이유로 대응을 미루고, 미디어는 과학적 경고를 희화화함
    3. IT 기업은 혜성을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제안하며 위기를 상업화
    4. 영화는 과학, 정치, 미디어, 자본이 위기 대응에 실패하는 모습을 풍자
  2. 기후변화에 대한 은유와 현실
    1. 혜성 충돌은 기후변화의 메타포로, 전문가 경고가 무시되는 현실을 반영
    2. 기후 위기는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실질적 대응이 지연됨
    3. 일론 머스크식 미래 마케팅은 현실적 대안이 아닌 환상
    4. 기후 위기는 생존의 문제이며, 실질적 정책과 국제 협력이 필요
  3.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1. 과학자의 설명이 어렵고 대중과의 소통이 부족하면 경고는 무시되기 쉬움
    2. 영화는 기후 위기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비유적 장치로 혜성 충돌을 사용
    3.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와 과학을 연결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핵심 역할
  4. 풍자의 한계와 대중예술의 역할
    1. 기후변화는 점진적 위기이기에 혜성처럼 급작스러운 재난과는 차이 존재
    2. 영화는 위기의식을 일깨우지만, 실질적 해결 내러티브는 부족할 수 있음
    3. 각자가 탄소 감축 등 실천 가능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
    4. 대중예술은 사회 인식에 영향을 주며, 사회문제는 창작의 영감이 되기도 함

“혜성이 태평양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데요? 파도라도 쳐요?” 미시간주립대학교 천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런스)는 우연히 태양계 외곽에서 혜성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제자의 발견을 축하하던 랜달 민디 종신 교수(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궤도 추정치를 계산하다 이 혜성이 6개월14일 후 지구와 충돌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당장 워싱턴 백악관으로 향하지만 대법관 후보 등 다른 안건에 밀려서 대통령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마침내 대통령과 조우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는 “충돌 가능성이 99.7%라면 100%는 아니지 않느냐”, “이미 경제 붕괴부터 배기가스의 대기 파괴까지 지구 종말과 관련된 회의를 1년 내내 하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무엇보다 이 문제가 세간에 알려진다면 곧 있을 중간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고려해 기다리면서 상황을 지켜보자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는다. 이슈를 만들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추천을 받아 유명 시사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에 출연해보지만 아무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 모두 100퍼센트 다 X진다고 하잖아!”라고 외치는 디비아스키의 표정이 인터넷 밈이 된다. 섹스 스캔들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대통령이 이미지 회복을 위해 혜성 충돌 이슈를 다시 끌어오면서 일이 풀리나 싶더니, 혜성에 140조달러어치의 광물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스티브 잡스 등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 IT 기업 배시사의 CEO 피터 이셔웰(마크 라일런스)은 혜성을 파괴하는 대신 30개의 유성체로 분할하자는 안을 내놓고, 이에 혜성 궤도 변경 작전이자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허무하게 취소된다. <돈 룩 업>은 불편한 과학적 진실에 직면했을 때 개인, 정치인, 미디어, SNS가 어떻게 반응하며 거대한 난장을 만드는지 탐구하는 풍자극이다.

제작진이 여러 번 밝혔듯 <돈 룩 업>의 혜성 충돌은 기후변화에 대한 은유다. 지구온난화와 재앙은 전문가들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 애덤 매케이 감독의 <빅쇼트>는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이 내놓은 파생상품이 시스템을 지속시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준다. 이때도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월스트리트의 금융맨들은 듣지 않았다. 지구온난화 문제 역시 수십년 동안 과학자들이 경고해왔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이 더 급해서, 이런 종류의 잔소리는 항상 존재했지만 꾸역꾸역 잘 살아남은 역사를 봤을 때 이 역시 별것 아니라는 합리화 때문에 간과되어왔다. 혹은 정치권에서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으로 내세워 본질은 사라지고 프레임을 위해 동원된다. 미국 공화당은 기후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낭설이라고 주장하고 민주당 역시 친환경적인 정책을 세우는 데 그리 적극적이진 않다. 기후변화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에 동의하는 이들조차 정치·경제적 문제가 개입하면 석유 시추권이나 화석연료 생산량을 늘리는 데 적극적이다. 일론 마스크를 위시한 글로벌 IT 기업가들은 디비아스키 혜성을 쪼개서 인류를 위해 쓸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허무맹랑한 환상(이를테면 화성 이주)을 마케팅한다.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과학자들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과학 불신과 정치적 알력 다툼이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 기억하고 있다. 소행성의 지구 충돌도 기후 위기도 전염병도 정치의 영역이 아닌 생존이 걸린 일이다. 지난해 1~6월 전세계는 사상 최고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탄소 배출을 최대한 줄여도 이번 세기 안에 힌두쿠시 히말라야(HKH) 지역의 빙하가 30~5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간, 지역간 협의를 통해 기후 위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화석연료 사용 중단을 고민하지 않으면 고온 현상은 더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영화 초반 디비아스키와 민디 박사는 마침내 만난 대통령에게 혜성 충돌을 설명하는 데 애를 먹는다. “가우스 소거법으로 궤도를 추정하면 측정 불확실성이 평균 0.04각초로…”와 같은 설명은 천문학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경고가 너무 어려워서, 전문 지식을 요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를 보편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가장 흔히 동원되는 것이 바로 ‘비유’다. 이를테면 <돈 룩 업>이 혜성 충돌을 소재로 끌어온 것은 <아마겟돈>과 같은 스펙터클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기후 위기 이슈를 쉽게, 그리고 관객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메타포로 삼기 위함이다. 디비아스키와 민디 박사는 무거운 이슈를 가볍게 전달할 때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착오로 <더 데일리 립>에 출연하지만, 나중에 민디 박사가 인정하듯 “모든 대화를 재치 있고 매력적이고 호감 있게 할 순 없다.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과학 커뮤니케이션(과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다양한 활동. 비전문가에게 과학적 발견을 알리고,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관심을 높이고,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공공정책을 알리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이 포함된다)의 역할이다. 어쩌면 이 지면에서 하고 있는 일도 그 영역에 포함될지 모르겠다.

물론 <돈 룩 업>의 혜성 충돌은 기후변화 위기를 은유하기에 완벽히 들어맞는 장치는 아니다. <가디언>에서 찰스 브라메스코는 “기후변화에 대한 긴급성과 회의론이 부족한 것은 대부분 점진적인 특성에서 기인하며 혜성 충돌처럼 우리가 곧 보게 될 미래의 시한이 있는 파괴적 힘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돈 룩 업>은 성공적인 풍자영화지만 이 작품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은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을 수 있다. 영화와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읽을 수 있는 지점도 있다. <돈 룩 업>에서는 혜성 궤도 수정 계획이 무산된 이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기후변화는 각자 탄소 배출량 절감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돈 룩 업> 같은 블랙코미디뿐만 아니라 인류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제안하는 내러티브도 지금 시대에는 필요하다. 대중예술과 스토리는 동시대 사회 인식에 영향을 주고, 역으로 사회문제가 영감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어찌 됐든 <돈 룩 업>은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의 출연과 넷플릭스의 마케팅으로 백번 말해도 늘 무시당하는 기후 위기를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제작비의 소임을 다한다. 우리는 모두 정신 차려야 한다. 100퍼센트 다 X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