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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디에 더 마음이 가는지 살피는 한끗 싸움, <파란> 강동인 감독
한 눈에 보는 AI 요약
<파란>은 죄의식과 구원의 가능성을 다룬 강동인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이식된 장기와 클레이 사격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선을 탐색한다. 감독은 파편화된 이야기와 모호한 감정의 지대를 통해 관객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이수혁과 하윤경은 현실과 비현실, 능숙함과 미숙함 사이를 오가며 복잡한 인물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영화의 핵심은 믿음이며, 이는 불신의 세계 속에서 더욱 빛난다.
  1. 작품의 출발점과 주제
    1. ‘범죄자의 장기를 이식받는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출발
    2. 죄의식을 세대 간 이야기로 확장하며 장편으로 발전
    3. 파편화된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이는 구조를 지향
  2. 클레이 사격의 상징성
    1. 주인공 태화를 폐를 사용하는 인물로 설정
    2. 숨을 참는 행위가 죄책감과 연결되는 설정
    3. 클레이 사격의 파편 이미지가 영화의 비극성과 어우러짐
  3. 배우 캐스팅과 인물 해석
    1. 이수혁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모호함을 표현
    2. 하윤경은 미숙함과 능숙함을 오가는 복합적 감정선 구현
    3. 두 배우 모두 기존 이미지와 다른 새로운 모습 선보임
  4. 감정의 무게와 죄책감
    1. 감독의 개인적 성향이 반영된 강박적 죄책감
    2. 태화는 죄의 값을 임의로 설정하며 스스로 구속
    3. 죄책감은 수치화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역설 강조
  5. 인물 간 거리감과 감정의 역전
    1. 미지는 복잡하고 계산적인 인물로 묘사
    2. 미숙함과 능숙함 사이의 감정선 조율이 중요
    3. 관객이 죄책감의 역전을 납득하게 만드는 설정
  6. 모호함과 믿음의 테마
    1.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리는 모호한 상황 연출
    2. 태화는 자신을 믿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오히려 믿음을 얻음
    3. 믿음은 가까운 이가 아닌 낯선 이방인에게서 피어남

타인의 장기가 내 몸에 이식되는 것만으로 인간은 엄청난 이물감을 느낀다. 더군다나 그 장기가 죄인인 아비의 것이라면 거부감은 죄책감으로 번지고 만다. 아버지에게서 이식받은 폐를 호흡할 때마다 원망하는 사격선수 태화(이수혁)는 피해자의 딸인 미지(하윤경)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지옥 같은 삶을 사는 가출청소년 미지도 마음 한편에 둔탁한 가책을 품기는 매한가지다. 강동인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파란>은 이중 매듭처럼 단단하게 얽힌 죄의식의 난제에 질문을 던진다.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총성과 거칠게 몰아쉬는 숨 속에서 우리는 어느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줄 수 있을까. 산탄총에 맞아 공중에서 부서진 클레이 피전의 파편처럼 흩어진 비극의 조각을 쫓다 보면 우리는 강동인 감독이 마련한 옅은 구원의 단서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 <파란>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는가.

만약 내가 범죄자의 장기를 이식받는다면. 설령 그 장기가 내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더라도, 그가 저지른 죄의 무게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물음에서 <파란>은 시작했다. 처음엔 단편 시나리오로 작업했지만, 죄의식의 문제를 세대를 걸쳐 내려오는 이야기로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매그놀리아>나 <21그램>처럼 파편화된 사건들이 한점으로 모이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던 시기였다. 그래서 전혀 무관해 보이는 두 인물의 우연적인 사건이 끝내 한곳으로 수렴하는 영화를 만들게 됐다.

- 클레이 사격이라는 소재는 한국영화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은 종목이다.

장편으로 시나리오를 확장하면서 주인공이 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물로 그렸다. 실제로 클레이 사격을 몇번 해본 적 있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숨을 참아야만 몸이 고정되어 목표물을 맞출 수 있다. 만일 이식받은 폐를 죽도록 미워하는 인물이라면 사격을 위해 숨을 참는 순간이 유일하게 편안함을 주는 시간일 것이다. 숨을 참으면 폐에 무리가 가지 않나. 태화는 그런 방식으로 나름의 죗값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고정된 과녁을 맞추는 사격과 달리 클레이 사격은 목표물을 격추하면 펑 하고 터진다. 파편적인 이미지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산산조각난 상황과도 잘 어울렸다.

- 클레이 사격선수 태화 역의 이수혁과 가출청소년 미자 역의 하윤경. 두 배우 모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주위로부터 태화가 상당히 이상한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다. 태화가 미지를 숙소에 바래다주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미지가 안 가겠다고 버티자 자가용을 버리고 택시를 탄 채 홀연히 떠나는 선택을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바로 이런 면모가 태화의 정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일상적인 선택을 해도 용인이 되는 배우가 필요했다. 이수혁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놓인 모호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로버트 패틴슨이 떠올랐다. (웃음) <트와일라잇>의 배역을 소화한 뒤에 <굿타임>에 나온 패틴슨 말이다. 판타지적인 얼굴이 현실에 발을 붙인 채 서 있는 모습이 보고팠다. 하윤경 배우의 경우 촬영 당시 독립영화와 단편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었다. 이 배우가 출연한 작품을 많이 챙겨봤는데 어떤 인물을 연기해도 그것이 옳다고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 <파란>을 짓누르는 감정은 죄의식이다. 하지만 태화의 죄책감은 보편적인 수준보다 훨씬 무거워 보인다.

개인적인 성향이 많이 반영됐다. 나는 누군가에게 빚을 지면 어떻게든 제로섬으로 돌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근데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임의로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화의 경우 미지를 보자마자 예물을 건네면서 자기 멋대로 죄책감에 800만원이란 값을 매겨버린다. 분명 사회적인 시선에서 보면 저게 무슨 계산법이냐고 하겠지만, 왠지 내가 그였다면 그렇게 할 것만 같다. 완전히 타인을 책임질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값이라도 치러서 무거운 마음을 외면하고자 하는 판단인 것이다. 물론 태화는 그럼에도 응어리진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게 참 역설적이다.

-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에서 출발한 관계가 점차 진행되면서 둘 사이의 거리감을 어떻게 설정하는지가 중요한 관건이었을 텐데.

굳이 나누자면 미지의 감정선이 더 어려웠다. 태화는 직관적이다. 반면 미지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기에 태화보다 훨씬 복잡한 인물이다. 매 순간 일정 비율의 거짓과 진실을 오가며 태화를 대해야 했기에 정교한 계산이 필요했다. 동시에 미지는 미성숙한 소녀이기도 하다. 진실을 숨기며 태화를 밀쳐내지만 동시에 자신의 지옥 같은 상황에 대한 구조 요청을 은연중에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미지가 태화와 동행하는 장면마다 미숙함과 능숙함 사이의 거리감을 형성하는 데 집중했다. 이 부분이 잘 표현되어야만 종국에 발생하는 죄책감의 역전을 관객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파란>은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도 납득이 가는 모호함의 지대에 놓인 영화이기도 하다.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를 사랑한다. 그의 영화를 보면 어느 편을 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인물만 배치되어 있다. 결국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더 마음이 가는지 살피는 한끗 싸움으로 귀결된다. <파란>도 선과 악의 문제에서 벗어나 모호함의 지대를 살피려는 습성을 지니려 한 것 같다.

- 불분명한 것 천지인데 두 사람 사이에선 찰나의 믿음이 피어나는 순간이 있다.

<파란>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믿음이다. 미지의 세계 속 어른을 살펴보면 온통 거짓된 사람뿐이다. 그런 불신의 세계에 태화라는 인물이 입장한다. 친절을 가장한 어른들이 전부 미지를 속일 때 태화는 오히려 자신을 믿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태화가 미지의 세계에서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란 점이 중요하다. 우린 어릴 때부터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선의로 접근하는 사람을 신뢰하라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때론 나와 대척점에 놓인 낯선 이방인에게서 믿음이 회복되는 순간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