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헌트 (1996)
|83분|다큐멘터리
레드 헌트
학살은 나치와 유대인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일본군에게 끌려간 우리 동포만 학살당했던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같은 민족끼리 죽이고 죽는 일이, 아니 일방적으로 죽음을 당한 학살의 역사가 있다. 전쟁이라는 " 명분"있는 살상도 아니다. 이 땅에서 학살이 광주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6?5가 터지기 전인 1948년 4월, 대한민국 땅제주도에서는 무려 최소 3만명 이상이 같은 민족한테 "까닭없이" 죽어 갔다. 까닭은 있었다. "빨갱이"였기 때문. 하지만 이들이 과연 죽어 마땅한 빨갱이라는 근거는 너무도 미약하다. 다만 이념의 칼날에 피를 뿌린것이다. 누구도 말해서는 안 되는, 4?을 이야기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지난 4월에 열린 제2회 서울다큐영상제 때 본선진출작으로 결 정되었다가 갑자기 상영이 취소됐던 "전력"이 있다. 하나 (레드헌트)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인권영화제 상영작으로 뽑은 것은 아니다. 비록 반세기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이념의 갈등이 낳은 학살과 지금도 씻기지 않은 음습한 후유증에 햇살을 비추는 것은 바로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92년 북제주군 조천읍 구좌면에 있는 다랑쉬굴에서 11구의 시체가발견된 사건에서 시작된다. 이 죽음의 내막을 따라가보면 토벌대가 굴 밖에서 연기를 피워 질식사시킨 것으로 드러난다. 주검은 한줌 재로 수습되고 다랑쉬굴은 당국에 의해 봉쇄됐다. 사건은 7개의 중요한 증언으로 이 어진다. 당시의 사회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방증하는 조병옥 경무부장의발언, 미군정 보고서, 연합국군 최고사령부 포고문, 당시 토벌 총지휘관 이었던 제주지역 미군사령관의 발언, 한국편집기자회의 자료 등 종합하면역사의 진실은 허울을 벗기 시작한다.정방폭포에서 학살당하고 바다에 내던져진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헛묘가 즐비한 동광리, 지금은 제주민속촌이라는 멀쑥한 건물이 들어서 있지 만 18세에서 40세까지의 남자들은 모두 끌려가 학살당한 토산리, 5백여명이 희생당한 가시리, 많은 자료에 "북촌양민학살사건"으로 등장하는, 4백여명이 희생당한 북촌리 등이 학살을 입증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지금도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생존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입은 무겁다. 까닭없이 가족들이 죽어가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 문이다. 80년에야 겨우 4?이란 낯선 낱말을 만났고, 지금도 질곡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공이데올로기와 미군정의 비호 아래 다시 권력 전면에 등장한 친일파들, 국내 정통성이 일천했 던 이승만 정권, 미국 등의 욕심에 따라 죄없이 죽어간 수만 제주도민들 은 미국의 철저한 희생양이 됐던 것이다. 제목마저도 "빨갱이 사냥"이 란 뜻이다.
줄거리 더보기

전문가 20자평

포토 1

  • 레드 헌트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