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1; 검열
‘표현의 자유’를 향한 고된 싸움
198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검열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은 대부분 충무로보다는 독립영화 진영에서 터져나왔다. <파랑새> <부활하는 산하>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를 관람하는 것은 시위 참여와 다를 바 없었다. 1996년부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전투는 극에 달했다. 그해 6월 푸른영상 김동원 감독이 불구속수사 처리된다. 이틀 뒤 대책위가 설립되며 표현의 자유와 영상 관련 악법 철폐에 대한 영화계의 대응은 급물살을 탄다. 그리고 10월 헌법재판소는 공륜의 영화 사전검열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다. 1997년 인디포럼의 상영 중단 사태, 퀴어영화제 무산으로 다시 불붙은 검열 철폐와 사전심의에 대한 논란은 제2회 인권영화제 사태를 통해 말 그대로 ‘폭발’한다. 홍익대쪽의 집행위원장 고소, 시설물 보호 요청, 상영장 봉쇄, 옮겨진 상영장 난입, 압수 수색, 개막작 상영 직전 단전 등의 폭거가 이어졌다. 그러나 학생회와의 공동주최를 통해 발전기, 빔프로젝터 동원 등으로 맞선 영화제 사무국에 4천명의 관객은 참석으로 화답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발전기 플러그가 뽑히고, 전경들에 살벌하게 둘러싸여도 관객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당시 서준식 집행위원장은 “당국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끼지만 관객에게선 희망을 느낀다”고 술회했다.
지방 순회상영에서 인권영화제 집행위원 3인이 긴급체포되며 사태는 커져간다. 급기야 11월5일 이적표현물 <레드헌트> 상영을 이유로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가 구속된다. 사전심의를 거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정상적으로 상영된 <레드헌트>가 국가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작품 속의 무고한 수많은 제주도민이 극우들에 의해 빨갱이 사냥이란 명목으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희생되었던 것처럼. 4·3 항쟁 이후 미군정과 경찰에 의해 주도된 살육처럼 <레드헌트>의 지방상영에서도 탄압은 줄기차게 계속된다. 광주는 상영 무산, 전주는 관계자 출석요구, 수원은 고발조치에 대한 구두경고, 안양은 과태료 부과 및 출석요구, 대구는 음비법 위반으로 고발. 명목은 다양하지만 그것이 국가보안법과 검열의 그림자라는 것은 자명했다. 후일 조성봉 감독의 구속영장 기각, 서준식 대표의 국가보안법 무죄판결로 일부 진실은 밝혀진다. 그러나 이후에도 <둘 하나 섹스>의 헌법소원 청구,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의 TV 편성 불가 사건, <죽어도 좋아>에 이르기까지 독립영화 진영과 가위손의 대결은 오래 지속된다.
<레드헌트>의 조성봉 감독
“다른 사람들이 고생한 게 괴로웠다”
4·3 사태를 정면으로 다룬 <레드헌트>로 국가보안법과 검열의 문제를 수면 위로 부상시켰던 하늬영상의 조성봉 감독. 현재는 지리산 구례 깊은 산중에서 한국전쟁 전후의 빨치산 이야기를 다루는 차기작 <진달래산천>을 준비하는 그에게 검열과 사전심의에 관해 물었다.
-당시 압수수색 이후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했다. 영장실질심사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도 덕을 봤다. 예전 같으면 바로 구속했겠지만 판사가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니 별일이 아니란 걸 파악한 결과였다.
-인권영화제 사건 전후에도 <레드헌트>는 심의문제로 시달렸다.
=큐채널의 다큐멘터리영상제가 첫 상영이었다. 본선 참여하라고 해서 서울로 스탭들과 갔더니 행사장에서 상영을 못한다고 통보하더라. 채널에서 상영할 때 방송심의를 통과 못한다는 이유였다. 심의통과를 조건으로 그쪽이 제의했던 것은 시작 부분에 “희생자 수나 인터뷰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자막을 넣으라는 것. 동행한 스탭들과 상의하고 관계자를 만나 교섭하다가 모멸감을 느껴 자진철회했다. 당시만 해도 스스로 심의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었고, 기회주의적 측면이 있었다. 7월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일괄심의를 받는데 우리는 일괄이든 뭐든 심의를 반대했다. 논의 끝에 상영은 하고, 이후 심의 철폐와 국가보안법 포함해서 시위를 열자는 쪽으로 타협했다. 그때도 내가 원칙주의자였다면 상영을 안 했을 것이다. 그 다음이 인권영화제였다. 제일 난감한 건 다른 사람들이 고생한 것이다. 서준식 대표도 구속되고, 심지어 창원대 총학생회장이 이 건으로 2001년에 대법원까지 갔다. 그런 게 괴로웠다.
-4·3 항쟁을 방송에서도 다루는 세상이 되었다.
=사실 제주에서는 그전에도 민방에서 해마다 다루었다. 지역사회에서는 정치·역사적으로 근본적인 문제니까. 중앙정부나 우리 사회 전체에서는 다루질 않았고 그러다보니 4·3이라는 소재나 <레드헌트>가 방송부적합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차기작 <진달래산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2년 정도 작업했다. 보통 빨치산은 산에서 평균적으로 4년 정도 활동했더라. 우리도 4년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스탭들에게 말했다.(웃음)
키워드 2; 다큐멘터리
현장 이야기에서 창작자의 내면으로
<송환>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한 시대를 구획짓는 분기점이다. 그 속에는 전통적인 액티비즘의 다큐멘터리가 지닌 진지함과 고민, 사적인 정치성의 확장, 세월을 거슬러오르는 끈기있는 카메라, 모든 것을 절제하는 담담한 시선이 공존한다. 인구에 회자되는 12년의 준비기간, 500개의 테이프, 800시간의 촬영분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동원 감독의 ‘머금는’ 연출방식이다. 이는 ‘내지르고 조롱하는’ 연출과 형식파괴의 스타일로 세계영화사에 한획을 긋고 있는 마이클 무어와는 정반대의 방법론이며 상계동과 봉천동 현장의 피끓는 전투를 전달하던 그의 ‘투사’적 기질과도 전혀 다른 형질의 접근방식이다.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를 지속적인 연작을 통해 다뤄온 푸른영상의 김태일 감독의 작품들과 대조하면 더욱 풍요로운 텍스트로 읽혀질 수 있다.
1996년을 기점으로 디지털 시대가 개막되었고 다큐멘터리의 제작편수는 급증했다. 예전 영화제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감독들이 참여했던 인디포럼의 창립도 이에 부응하며 상영의 해방구로 자리했다. 다큐멘터리 집단 빨간눈사람의 최하동하 감독은 “네다섯개로 한정되던 다큐멘터리집단이 개인으로 분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푸른영상, 바리터, 서울영상집단 등 집단에서 주어지는 명제로 현장에 들어가서 진행하던 한정된 이야기가 창작자들의 내면으로 대상을 넓혀나갔다. 즉, 사적 다큐멘터리가 생겨나고 독립다큐의 정치성과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개인으로 길을 나선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점차 자신이 집중하는 주제로 전문화해가는 추세이다. 장애인 이동문제, 가족사와 개인사의 반영, 퓨전화되는 정치 다큐멘터리, 극영화와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 등은 다큐멘터리에서 독립다큐 진영에서 더이상 낯선 공간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박기복 감독의 <영매>는 관객동원에도 성공했다.
김동원 감독은 “다른 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독립다큐라는 용어도 TV다큐와 굳이 구분하기 위해 써왔는데, 이제는 독립이라는 말을 빼도 된다”고 말했다. 이는 다큐멘터리의 본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역할을 감당하는 점에서 “한국의 독립다큐가 곧 다큐멘터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빈번히 편성불가를 이야기하던 공중파 방송사에서 먼저 독립다큐에 관심을 표명하는 변화된 상황은 정보전달 중심의 일률적인 스타일에 대한 위기의식이면서, 동시에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송환>의 김동원 감독
“한국 다큐는 여전히 씩씩하다”
<상계동 올림픽>으로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김동원 감독. 그는 아이들의 참관수업에 다녀오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푸른영상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곰삭은 역작 <송환>으로 빼곡한 시간을 보낸 그에게 듣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주소.
-지난 10년간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집단보다는 개인적 참여가 늘었다. 현재 주관적인 다큐가 양적으로는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편, 한국 독립다큐의 전통이 액티비즘쪽에 있고, 정치 다큐멘터리가 아직도 많다는 부분도 엄연한 현실이다. 축적된 자료와 옛날 화면들이 많아진 상황이다. <송환>도 그렇게 가능했고. 다큐의 기능이 1980년대처럼 직접적인 사회변혁보다는 내면과 본성에 접근하고 있다. 한국 다큐는 여전히 씩씩하다.
-<송환>은 사적인 느낌의 내레이션과 정적인 카메라가 조화를 이룬다.
=내레이션을 사용하는데 주관성이 개입하는 건 좋지만 어떻게 개입하는가가 문제다. 방대하지만 집중적으로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레이션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내용을 꿰려면 나의 시점이 필요했다. 주관적 시점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상계동 올림픽> 때부터 내레이션이 딱딱한 편은 아니었고 그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디지털과 다큐멘터리의 상관관계라면.
=디지털을 제일 빨리 흡수한 곳이 다큐멘터리다. 필름다큐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아날로그 비디오도 여러 가지 난점 때문에 디지털이 나오면서 불가능했던 편집이 용이해졌고 감독들은 환호했다. -다큐멘터리의 극장상영은 아직도 어렵다.
=<송환>은 꽤 덕을 봤지만 <송환>이나 <영매>만 괜찮고 나머지는 아닌 것처럼 잘못 인식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만드는 사람들은 맥이 빠지고 일반관객은 우리 다큐는 2, 3년에 하나씩 극장에 걸린다고 느낀다. 실제로는 훨씬 더 풍부하지만 보여줄 기회가 없다. 영진위도 독립영화전용관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식할 것이다. 지금 형태로는 힘들다고 본다.
-<송환> 이후, 그리고 차기작에 관해.
=<송환> 때문이라기보다는 기획하는 게 조금 막힌 상황이다. 여러 가지 중 제일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게 협조를 못 받고 있다. 우리 어머니가 등장해야 하는데 옛날 이야기 하시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셔서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담배를 끊으면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하시더라.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