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4] - 스타&정치성
2005-05-31
글 : 오정연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사진 : 오계옥

키워드 5; 스타

홍보전략에서 브랜드로

이하 감독 <1호선>

김동원, 변영주, 송일곤, 류승완, 정지우, 김용균, 임필성, 신재인, 이송희일, 노동석, 김정구, 민동현, 원신연, 이경순, 최하동하, 채기, 이하…. 이들 외에도 독립영화계의 스타로 꼽히는 감독들은 많이 존재한다. 독특한 영화세계, 의미있는 성과, 참신한 시도, 또는 감독 개인의 캐릭터 등 덕분에 일부 감독들은 언론이나 영화제 등의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유운성씨는 독립영화계의 스타가 1997년 무렵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스타 만들기는 인디포럼 등 영화제가 자리잡지 못했던 당시만 해도 독립영화의 존재감을 주류사회에 알리는 유효한 전략이었다. 그런 전략을 영화저널을 중심으로 한 매체들이 받아들이면서 스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몇몇 스타는 독립영화라는 미지의 대지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얼굴마담’ 또는 ‘필요악’ 구실을 한 셈이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제작되는 독립영화의 편수가 급증하고 영화제가 늘어나면서 독립영화 스타의 지위는 달라졌다. “스타는 출세라는 의미 비슷하게 받아들여지게 됐거나 장편영화로 가는 디딤돌이 됐다”고 유운성씨는 말한다. 그는 나아가 “감독들이 나는 이런 영화를 만든다며 스스로를 라벨화하게 됐다”고 말한다.

민동현 감독 <지우개 따먹기>
송일곤 감독 <소풍>

“문제는 스타로 불리는 감독이 아니라 저널”이라고 원승환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은 지적한다. 독립영화의 새로운 경향이나 나아가야 할 바를 짚어줘야 할 저널들이 구색 갖추기 차원에서 일부 독립영화 스타를 조명하는 작업에만 치우침으로써 “독립영화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만들어내고, 독립영화의 지평을 축소할 수 있다”(홍효숙 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 프로그래머)는 것이다. 김노경 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은 <마이 제너레이션>에 대한 저널의 반응을 일례로 든다. “이 영화가 얼마나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졌나, 얼마나 고생했나 등만 조명했지 정작 이 영화의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파고들지는 않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또 지원기관도 표면적인 성과를 기준에 놓다보니 스타로 분류되는 감독의 영화에 각종 지원이 집중되고, 흥행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영화제들 또한 “스타성 있는 감독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홍효숙)게 된다. 관객에 의해 만들어진 ‘자발적 스타’야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저널의 ‘스타 메이킹’의 경우 “이제 필요악이 아니라 독약”(김노경)이 된 건지도 모른다.

<용산탕> <1호선>의 이하 감독

“독립영화인들 그들 모두가 스타 아닌가”

이하 감독은 <용산탕>(2000)과 <1호선>(2003)으로 독립영화권의 스타가 된 인물이다. 특히 남녀의 미묘한 감성을 뛰어나게 소화해낸 <1호선>은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대상, 서울독립영화제 단편 우수상,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그해 가장 인기있는 독립영화 중 하나로 꼽혔다. 첫 장편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촬영을 코앞에 두고 있는 그는 스스로 의도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던 ‘스타성’에 관한 우문에 현답으로 응수했다.

-독립영화계의 스타였다.

=나는 학교의 지원으로만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독립영화를 만들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독립영화 스타로 분류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고, 그동안 열심히 독립영화를 만들어온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스타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개인적으로 독립영화계에 몇몇 스타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스타 아닌가.

-<1호선>은 큰 인정을 받지 않았나. 상도 많이 받았고.

=누구에게 인정받았느냐가 중요하다. 저널이나 평론가보다 관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게 가장 크다. 영화제나 상영회에서 관객의 반응을 직접 보고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의미있었다. 상보다도 내가 생각한 것과 관객의 반응이 일치한다고 느꼈을 때가 기뻤다. 그것은 일면 내게 자신감의 형태로 돌아오는 것 같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1호선>을 회고해본다면.

=나만의 색다른 시도가 있었고, 그 색다른 시도를 일관성이 유지된 채로 완성했다는 것에 1차적인 기쁨이 있다. 스타로 인정받고 말고를 떠나서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점이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2차적인 거지만 관객의 좋은 반응이 있었다는 점 또한 큰 힘이 됐다.

-장편영화에 돌입한다.

=단편영화를 만들 때처럼 찍을 거다. 제작사와 투자사가 존재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개인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을 하고 있다. 졸업영화를 찍을 때처럼 생각을 충분히 해가면서 안 쓸 것은 찍지 않을 거다. 누구에게 보여준다는 점보다 우리 스스로 만족하느냐를 먼저 생각한다는 마인드다. 단국대와 영화아카데미 선배인 최주영 촬영감독이나 단편 만들 때 함께 했던 연출부원, <1호선>에 출연한 유승목과 <용산탕>의 정우혁 같은 배우도 도움을 줄 것 같다.

키워드 6; 정치성

부정하고 반대하는 것이 우리의 힘!

최진성 감독 <캐치 미 이프 유 캔>

이라크전 반대가 한창이던 2003년 완성된 옴니버스 프로젝트 <제국>, 국가보안법 철폐가 핫이슈였던 2004년 만들어진 <국가보안법 철폐 프로젝트>.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묵직한 주제에 접근한 두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개별 영화들의 산만함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면서 반전시위에 다니던 감독들이 자연스럽게 기획했다”는 <제국>은 신자유주의, 웨딩촬영, 이주노동자, 신체권력, 학교폭력, 핵/MD, 반전 등을 소재로 일상 속의 제국을 이야기한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기획된 <국가보안법 철폐 프로젝트>는 간첩단 조작사건에 대한 고전적인 다큐멘터리부터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연상시키는 극영화, 재기발랄한 페이크다큐 등을 포함한다.

1980년대 사회변혁운동과 많은 것을 함께했던 한국 독립영화는 이제 첨예한 정치적 사안을 우직한 다큐멘터리로 다루거나, 주류세력에 맞서는 주인공의 갈등을 익숙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의 기원> <자본당 선언> 등 무시무시한(?) 영화를 만들어온 김곡·김선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독립영화가 “반대하는 건 자본주의적 미세지각”.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콜라주하여 전혀 다른 영상물을 완성하고(윤성호), 루이스 브뉘엘과 장 뤽 고다르를 본받아 익숙한 영화적 관습을 자신만의 언어로 대체시키며(김곡·김선), 키치적 감성을 끌어들여 주류의 경직된 사고를 비웃는(최진성) 등 이를 위한 개별 감독들의 전술은 모두 다르다. 아방가르드와 액티비즘을 동시에 조준하는 이러한 움직임을 향한 시각 역시 단일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소통을 외면하는 미학적 아방가르드를 경계하고, 한편에선 극한의 실험영화까지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풍토가 건강한 정치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함께 영화작업을 하고 있는 김곡·김선 감독조차 영화의 실제적 영향력의 정도에서는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 역시 산만하고, 느슨하게, 그러나 가장 미세한 영역까지 파고드는 오늘날 독립영화의 특징을 반영하는 사례. 어차피 과녁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총이든, 활이든, 혹은 돌팔매든,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장기를 살려 즐겁게 임할 수 있다면, 적중률은 높아지게 마련이라는 것이 독립영화의 믿음이다.

윤성호 감독 <삼천포 가는 길>
김곡·김선 감독 <시간의식>

<반변증법> <시간의식>의 김곡·김선 감독

“우리가 생각하는 건 뇌세포의 프로파간다”

<시간의식>은 창녀에게 얹혀사는 시인의 특정 기억을 반복·변주한다. “철학적 관념의 이미지화를 시도하여 영화를 통한 새로운 방식의 발언”을 꾀했다는 이유로 인디포럼 10년의 새로운 발견 중 하나로 선정된 이 영화는 김곡·김선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일곱편에 달하는 이들의 영화 모두는 “영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화두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첫 영화가 무엇이었나.

=김선 | <이사람을 보라>라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었다. 애니메이션이 뭔지 하나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물어봐가며 만들었다. 갓 제대해서 할 일이 없었던 김곡과 함께 한달 동안 종이인형과 씨름했다.

=김곡 | 이 영화가 2000년 십만원비디오페스티발에서 상영되면서 많은 독립영화인을 만났다.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는데 혼자 설원을 방황하다가 지하에서 활동 중이던 레지스탕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웃음)

-<시간의식>을 시작한 계기는.

=김선 | ‘컷’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컷은 언제쯤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인위적으로 컷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등등. 그래서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컷을 나누기 위해 정교하게 설교를 했고, 컷을 나누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두 공간을 한컷에 담으려 했다.

=김곡 | 그때는 컷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반영화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컷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좋은 컷과 나쁜 컷이 있다는 식으로 정리가 됐다.

-“내용상의 급진성과 형식상의 프로파간다”를 쟁취하는 것이 목표라고 들었다. 프로파간다를 위해서는 모든 이와 소통해야 하는데, 두 가지 목표가 서로 충돌하는 것 아닌가.

=김곡 | 프로파간다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사회적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영화는 세상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건 뇌세포의 프로파간다다. 뇌세포는 미세지각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행동을 유발할 수는 없지만, 이념적 사회적 유전자로 남아 전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

-독립영화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김선 | TV에서 상영하는 독립영화의 심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 우리 영화는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됐다.

=김곡 | 관객을 위하는 척하면서 다시 관객을 대상화시키는 것 같다. ‘그런 영화로 관객과 소통이 가능하겠냐’고 묻지만, 그들의 뇌세포는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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