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5] - 퀴어&독립장편
2005-05-31
글 : 김수경
사진 : 이혜정
글·사진 : 오정연

키워드 7; 퀴어

소수자의 욕망, 커밍아웃하다

이송희일 감독 <슈가힐>

1997년 9월 열릴 예정이었던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는 그로부터 1년 뒤,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창립한 것은 1998년 9월. 표현의 자유와 검열문제로 독립영화계가 유난히 들썩거렸던 무렵이다. 독립영화인과 동성애운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많은 싸움을 함께했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물론 독립영화와 퀴어영화의 밀접한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선 이러한 집단 경험 이외에 좀더 근본적인 지적이 필요하다. 영화에 뛰어든 뒤 커밍아웃한 이송희일 감독은 1997년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자극받아 첫 작품인 <언제나 일요일 같이>를 만들었고, 이 작품은 제1회 퀴어영화제와 인디포럼에서 상영됐다. “독립영화계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커밍아웃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 그리고 그런 문화행사 자체가 커밍아웃하지 못한 동성애자 감독들에게 작품을 찍을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퀴어영화들에는 독특한 에너지와 강렬한 정서가 있어서 좋다”는 최진성 감독(<동백꽃 프로젝트> 중 <동백아가씨> 연출)은 “독립영화의 존재 이유가 주류에서 얘기하지 않은 것들을 자유로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 연결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커밍아웃 이후 퀴어영화 작업을 계속하는 독립영화 감독은 이송희일 감독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경직된 시선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퀴어영화는 동성애자만이 찍을 수 있다’거나 ‘이성애자는 퀴어영화를 찍을 수 없다’는 편견이다. 그런 면에서 2004년은 독립영화 내 퀴어영화의 미래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할 수 있는 한해였다. 게이커뮤니티에서 이송희일 감독을 알게 된 뒤 영화 작업을 함께해왔던 소준문 감독이 <동백꽃 프로젝트> 중 <꿈꾸는 섬>을 만들고, 김경묵 감독은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나와 인형놀이>)를 통해 커밍아웃했다. 이성애자 감독이 퀴어코드를 적극 차용해 매력적인 멜로영화를 완성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개인작업을 준비 중인 소준문 감독은 “주변에서 동성애자 스스로 열광할 수 있는 발랄한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화적 상상력을 내세워 밝은 퀴어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퀴어영화 제작의 토대가 되어준 독립영화의 자유로운 정서가 이제는 퀴어영화가 특유의 매혹과 활력을 발산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소준문 감독 <떠다니는, 섬>
이송희일 감독 <굿 로맨스>

<굿 로맨스>의 이송희일 감독

“한국 퀴어영화, 아직 갈 길 멀다”

-<굿 로맨스>에 대한 관객 반응은 어땠나.

=남자들은 이해를 잘 못했고, 여자들은 굉장히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내 영화는 계속 그랬다. 퀴어를 찍어도 게이들은 별로 안 좋아하고, 멜로를 찍으면 남자는 안 좋아하고. 남자 캐릭터가 수동적으로 그려지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첫 영화 <언제나 일요일 같이>가 1998년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에서 상영된 지 7년이 지났다. 막상 커밍아웃해 퀴어영화를 지속적으로 찍고 있는 감독은 별로 없다.

=게이, 레즈비언 감독들은 커밍아웃이 두려워서 퀴어영화를 찍지 않으려 하고, 이성애자 감독들은 자기검열이 심해서 퀴어영화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성애자이면서 퀴어영화를 만들어도 되나, 라는 생각 말이다. 영화를 찍기 전에 퀴어영화를 함께 찍을 스탭을 모은다고 해도 다들 피하는 분위기다. 아직 아무리 독립영화라지만 커밍아웃을 하고 본격적으로 퀴어영화를 찍는 것은 많은 각오가 필요하다. 지난해에 <동백꽃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도 친구사이 10주년 기념행사를 위한 영화제를 준비하던 중 ‘반찬이 너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원래는 게이, 레즈비언 감독들이 모여 옴니버스영화를 만들려했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다. 워낙 그런 걸 신경 안 쓰는 스타일이고, 평소에 퀴어영화를 찍고 싶다는 말을 계속 해왔던 최진성 감독이 이성애자임에도 참여하게 됐다.

-지금은 이성애자들도 동성애코드를 적극 끌어들여 영화를 만든다.

=<순흔>이나 <원더풀데이> 같은 영화는 퀴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퀴어멜로였다. 하지만 퀴어영화가 동성애인권운동과 맞물려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던 외국에 비하면 한국 퀴어영화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유난히 당신의 영화에선, 퀴어영화 하면 연상되는 동성애의 매력적인 묘사가 없다.

=할 얘기가 남아 있는데, 행복한 척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게이든 이성애자든 내 영화를 통해 좀더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장편 준비 중인 <굿 로맨스>는 얼마나 진행됐나.

=계속 캐스팅 중이다. 현재 <굿 로맨스>의 제작사인 청년필름에서 또 다른 디지털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본격 퀴어멜로에 계급적 주제를 곁들인 영화다.

키워드 8; 독립장편

2004년은 ‘디지털 장편’의 해

노동석 감독 <마이 제너레이션>

<사랑하는 나의 임 못 보셨소?> <옴니버스 프로젝트: 제국> <사랑의 불바다> <괜찮아요?> <자본당선언: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 <아나모픽> <마지막 자연> <시간지문> <피아노레슨>. 이것은 2004년 4월에 열린 제46회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의 상영작 목록이다. 이중에 필름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없다. 전부 디지털 장편이다. 이외에도 <신성일의 행방불명> <양아치어조> <역진화론> <바이칼> <거칠마루> 등이 등장한 2004년 독립영화계는 디지털 장편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이는 이전까지 정치적 성격이 강하게 부여된 필름 장편(<부활하는 산하>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이나 개인이 제작한 예술영화(배용균)와는 차별화된 흐름이었다. 일단 외적으로는 “2, 3년 전부터 디지털 장편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 CJ-CGV, 각종 영화제들의 지원이 빚어낸 결과”이다. 내적으로는 디지털의 경제적 효율성과 단편 작업에 대한 갈증의 탈출구가 그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역보다는 늦었지만 극영화에서도 디지털 장편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2000년 손재곤의 <너무 많이 본 사나이>와 남기웅의 <강철>과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로 독립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디지털 장편 극영화의 효용은 2002년 <낙타(들)> 이후 잠잠했던 편이다.

황철민 감독 <프락치>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평단과 관객의 각광을 받은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 이 영화는 먼저 초저예산, 주말영화 등의 제작방식으로 주목받았다. 처음부터 극장상영을 겨냥했다는 본인의 의도대로 아트플러스를 통해 극장에 개봉되어 배급과 상영에서도 영화제를 벗어나 대중과 소통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후 황철민 감독의 <프락치>는 현재 멀티플렉스에서 상영 중이다. 이러한 독립영화의 상업극장 나들이 방식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송환>을 아트플러스를 통해 배급했던 김동원 감독은 “기존 상업영화와 똑같은 방식으로 마케팅하고 배급”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는 “독립영화는 입소문에 의해 장기적으로 회자되어 찾아드는 관객이 많다”는 속성을 감안할 때 “그 영화의 성격에 맞는” 상영·배급 방식에 대한 아쉬움이다. 결국 이런 제작활성화를 저변 확대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오랜 숙원인 “독립영화전용관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독립영화계는 입을 모은다. “시장에는 동의하지만 같은 방식으로만 소통할 수는 없다. 한국영화의 근본적인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해결되어야 할 일”이라고 한국독립영화협회 원승환 사무국장은 지적했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노동석 감독

“상업영화와는 다른 배급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노동석 감독은 인터뷰를 하던 당일에도 연세대에서 벌어질 <마이 제너레이션> 상영회에서 있을 관객과의 대화를 준비했다. 처음 만든 디지털 장편으로 상업영화의 모든 과정을 겪어낸 그에게 듣는 독립장편의 가능성과 문제점.

-영화제를 넘어서서 일반상영까지 경험했다.

=운좋게도 극장개봉까지 했는데 문제는 다음 작품을 재생산할 수 있는 수익구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트플러스 라인도 지방관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7:3 비율로 예술영화 관객은 서울에 집중된다. 하이퍼텍나다처럼 자체 노하우나 마케팅 능력이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몇몇 지역극장은 지역 독립영화협회와의 제휴로 개선책을 찾는 것으로 안다.

-독립영화전용관 문제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인 개념으로 배급하고 홍보하는 분들이 극장을 가진다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다만 상업영화 시장도 협소한 한국에서 독립영화전용관이 세워졌을 때 관객을 얼마나 부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3천만원짜리 <마이 제너레이션>도 관객이 1만명은 들어야 수익이 회수된다(참고로 현재까지 관객은 7천∼8천명 정도). 제작비를 내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심지어 극장관객보다는 부가 판권이 더 가능성이 있다. 공중파에 방영되면 장편은 독립영화라도 적지 않은 금액을 받는다. 만드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동안의 영화제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과는 달리 7천원을 내고 볼 때는 다른 방식의 고민을 해야 한다.

-인디포럼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처음으로 영화제에 상영한 작품이 <초롱과 나>, 그리고 그 영화제가 인디포럼이다. 언제나 관객을 상정하고 영화를 만들지만 처음으로 실제 관객을 만난 그때를 잊을 수 없다. <나무들이 봤어> <마이 제너레이션>까지 4년 연속 상영되어 너무 기쁘다.

-향후 디지털 장편에 대해.

=현재의 디지털 장편은 나와 비슷한 상황이 많을 것 같다. 한번 모든 과정을 겪으니까 굉장히 힘들다. 배급과 상영구조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 이렇게 진행되면 상업영화 진출을 위한 단편영화 포트폴리오처럼 될지도 모른다. 다음 영화로 상업영화를 준비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렵다. 사실 개인적으로 디지털 장편을 다시 찍을 만한 상황이 안 된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충무로와 독립영화, 양쪽을 넘나든다면 제일 이상적일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도 경계가 허물어지는 방향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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