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상상>의 첫 번째 에피소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과 <천국은 아직 멀어>에 출연하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두 차례 호흡한 배우 현리는 감독의 유명한 리허설 방식에 관해 흥미로운 부연을 해주었다. 감정을 뺀 채 대사를 읽되 “상대 배우 뱃속의 종을 울리는 상상”을 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그는 매주 일요일 라디오 DJ를 할 때도 이 태도로 게스트와의 대화에 임한다. “타인의 말을 최대한 듣는 법을 배워간다”는 그는 대화에서도 상대의 뱃속 종을 청명히 울린다. 캐릭터간 장구한 대화가 서사를 축조하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세계에 현리가 더없이 어울리는 이유일 테다. 한국인 배우 현리는 일본과 영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연세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 3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대학만 졸업하면 하고픈 걸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순전히 자신의 언어 능력이라면 졸업을 빨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법대에 진학했다. 그의 언어 감각은 배우로서도 독보적 자산이다. 현리는 크레딧에 배우뿐 아니라 ‘번역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고(<프레임 인 러브>), 일본영화 속 자신의 한국어 대사를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물의 목소리를 듣다> 등). “번역가가 있어도 편한 말이 따로 있다. 출연한 일본영화의 한글자막 번역도 하고 싶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이 작가라는 건 놀랍지 않다. 요미우리 신문을 시작으로 문예지 <소설신초>, 패션지 <스프링>에 꾸준히 에세이를 게재해 호평을 받았다. 현리는 “글을 쓰는 데 점점 재미를 느낀다”며 “언젠가 시나리오도 쓰고 싶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과 일본을 종횡무진하는 그가 이루어갈 마법 같은 성취들이 기대된다.
FILMOGRAPHY
영화 2021 <우연과 상상> 2020 <스파이의 아내> <카오산 탱고> 2016 <플레어> 2014 <물의 목소리를 듣다> <스트리트 파이터: 전설의 귀환>
드라마 2022 <너와 세계가 끝나는 날에> 2019 <미스트리스> 2018 <여자적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