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2>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작을 뛰어넘는 속편은 드물다. 성공 요인이 공식이 되는 순간 착각과 오해의 함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범죄도시2>는 이른바 ‘마동석 액션’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형사가 범인을 잡고 정의를 구현하는 직선적인 이야기와 시원한 액션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캐릭터를 구축하고 기반을 닦은 1편에 이어 다시 돌아온 <범죄도시2>는 시리즈의 생명을 성공적으로 연장했다. 비결은 단순하다. 전작의 영광에 취하는 일 없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여나간 것이 전부다. 하지만 답을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실현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1편의 조감독을 거쳐 새롭게 메가폰을 잡은 이상용 감독은 시리즈로서 <범죄도시> 프로젝트가 걸어온 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이상용 감독을 만나 <범죄도시2> 기획 과정부터 숨겨진 장면의 의미, 앞으로의 계획까지 자세하게 물었다. 2022년 한국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될 정통 오락영화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 400만 관객 돌파(5월25일 기준) 축하드린다. 올해 한국영화 중에 가장 빠른 기록이다.
= 아직은 체감이 되질 않는다. 시간이 좀더 지나야 상황이 제대로 보일 것 같다. 내심 흥행을 기대했지만 이 정도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관객과의 대화(GV)에서 만난 관객 중에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셨다는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획 단계에선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15세이상관람가로 선보였고 가족 관객이 많이 봐주셔서 뿌듯하다. <범죄도시2>가 만들어지기까지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이미 3편을 준비 중인데 2편이 너무 큰 사랑을 받아 벌써 걱정이 앞선다. 1차 시나리오 작업은 마쳤고 마동석 배우와 함께 계속 회의하며 다듬어가고 있다.
- <범죄도시>(2017) 조감독을 거쳐 이번에 첫 장편 연출을 맡았다.
= <범죄도시>는 1편 기획 당시부터 시리즈를 목표로 했다. 다행히 관객의 사랑을 받아 속편 제작에 들어갔는데, 새롭게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 중에 해외로 나가자는 방향이 채택됐다. 원래는 강윤성 감독님이 하려고 했지만 다른 스케줄과 겹치면서 부득이 하차했고, 누가 빈자리를 메울지 회의한 끝에 내게 기회가 왔다. 아무래도 1편부터 이어진 결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스탭들도 상당수가 1편부터 함께 작업했다. 함께 이야기를 개발하고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겪고 나니 이제는 눈빛만 봐도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식구가 됐다.
- 흥행한 전작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부담과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상당했을 텐데.
= 부담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웃음) 워낙 잘 정돈된 오락영화였고 배우들의 연기 하나도 허투루 흘려버릴 것이 없었으니까. 동시에 이 영화의 속편을 만든다면 나보다 잘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틀이 잡혀 있는 시리즈라 강화할 부분은 강화하고 정돈할 부분은 정리하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동석의 리액션으로 성립하는 영화다. 시리즈의 중심인 마석도(마동석)를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상황과 볼거리가 발생한다. 여기서 1편보다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을 좀더 빠른 호흡으로 가져갔다.
- 마동석 배우의 시그니처 액션은 이미 유명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마석도의 한방 액션에서 오는 타격감은 탁월한 면이 있다. 속 시원한 액션이 한층 강화된 느낌이다.
= 1편이 롱테이크 위주의 사실적인 액션이 핵심이었다면 2편에선 시퀀스마다 다른 느낌을 주고자 했다. 초반에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길게 찍으면서 액션의 동선을 맞춰나갔다. 이건 초반 강해상(손석구)의 캐릭터에 무게감을 더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강해상이 들고 다니는 커다란 마체테(날이 넓고 긴 칼)는 찌르기보다 베는 데 특화된 칼이지만 거기에 무게를 더해 도끼처럼 둔탁하게 대상을 쪼갠다는 느낌을 강조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들의 빠른 등퇴장에 맞춰 컷의 호흡도 짧게 가져갔다. 대신 영화의 기둥처럼 자리 잡고 있는 마석도의 한방 액션이 주는 묵직함은 전체를 관통한다. 액션의 지향점에 대해서는 마동석 배우가 늘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마지막 액션의 무대로 버스를 고른 것도 마동석 배우의 아이디어다. 버스는 이동하는 공간인 동시에 좁은 공간이라는 점이 좋았다. 도망가기 직전 막다른 곳에서 어떻게든 잡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 마동석 배우가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인가.
= 개별 아이디어보다는 영화 전반에 대한 조언과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현장에 가기 전에 큰 틀에서 리허설을 하고 카메라 앞에서 합을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장면을 구체화시켰다. 하지만 즉흥적인 애드리브는 사실 거의 없다. 다양한 의견들이 사전에 논의된다. 예를 들면 베트남의 강해상 숙소에 살수들이 들이닥쳤을 때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는 건 촬영감독님의 아이디어였다. 1편의 화장실 장면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범죄도시> 1편에서 장첸(윤계상)과 대결하기 전에 “혼자야?” “어, 싱글이야”라고 했던 대사가 애드리브였는데, 이번에 그에 상응하는 대사, “5 대 5로 나눌까?” “누가 5야?”는 마동석의 캐릭터와 맥락을 유지하는 선에서 미리 구상했다. 심각한 상황에서 한 템포 웃기고 가는 게 <범죄도시> 시리즈의 매력이다. 물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마동석 배우가 쌓아온 이미지 덕분이다.
-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로케이션이 쉽지 않았을 텐데.
= 처음에는 필리핀으로 시작했는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필리핀은 실제로 총기 사용이 자유롭고 납치 등 강력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국가다. 할렘가처럼 위험한 동네 촬영이 어렵겠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물색 끝에 베트남으로 결정하고 로케이션 헌팅을 시작한 게 2019년 9월이었다. 2020년 2월에 크랭크인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모두 접고 돌아가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손석구 배우는 이틀 뒤 첫 촬영이었는데 출국 조치를 당했다. 그렇게 영화가 중단되고 계속 촬영이 지연됐다. 이대로 접어야 하는지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시나리오를 간결하게 수정하여 한국에서 찍을 수 있는 것부터 찍기로 했다. 2020년 4월부터 7월까지 한국 촬영을 마쳤지만 베트남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거의 1년이 지난 뒤였다.
- 결과적으로는 간결하고 집중력 있는 구성에 도움이 됐다.
= 그렇게 봐주어 감사하다. 제한된 상황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제된 색깔이 나온 듯하다. 가령 납치 장면은 원래 호텔 로비였는데 베트남에 갈 수 없어서 한국의 갈대밭에서 찍은 후 합성했다. 그래서 뭔가 황량하고 고립된 느낌이 더 잘 살아났다고 느꼈다면 다행이다. 무엇보다 후반작업에서 연결이 어색하지 않게 톤을 맞추려고 공을 많이 들였다.
- 공간이 간결해지고 인물에 집중하는 만큼 배우들의 몫이 중요하다. 이번 영화에서 마석도 형사를 상대하는 악역 강해상은 그야말로 지독하게 끔찍한 인물이다. 손석구 배우를 어떻게 캐스팅했나.
= 솔직히 나는 잘 몰랐다. 장원석 대표님 소개로 미팅을 했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묘한 눈빛이 좋았다. 인상이 순한 것 같기도 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이중적인 얼굴이다.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돌변하는 집중력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1편의 장첸과는 또 다른 색깔을 만들기 위한 본인의 열정과 의지가 대단했다. 베트남 로케이션도 함께 가면서 ‘강해상이 이곳에 왔다면 어땠을까’를 계속 만들어나갔다. 손석구 배우 덕분에 강해상이 생명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해상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악이자 벼랑 끝에 몰린 인물이다. 장첸이 가리봉동에서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면 강해상은 좀더 짐승에 가깝다. 자기 것을 뺏어가는 걸 용납하지 못하고 돈을 되찾으러 한국에 다시 돌아오는 지점에서 섬뜩한 광기를 느낄 수 있다.
- 적지 않은 속편들이 실패하는 건 전작의 어떤 부분이 관객에게 유효했는지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범죄도시2>는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빼는, 누구나 알지만 실행하긴 어려운 걸 해냈다. 심지어 1편에서 다소 불편할 수 있었던 부분도 한번 더 정제해 걸러냈다.
= <범죄도시>는 익숙하고 쉬운 장르의 공식대로 흘러간다. 여기에 유니크함을 더하는 건 마동석 배우의 존재다. 끔찍한 범죄 앞에서도 마석도의 등 뒤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악을 쳐부수는 걸 보는 즐거움이 있다. 느리고 간접적인 사법 체계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빠른 정의 구현을 보고 싶은 판타지를 선사하는 셈이다. 든든한 기둥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캐릭터가 빠르게 치고 빠지면서 시너지를 내는 게 중요하다. 거기에 더해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에 코미디의 호흡을 더할 수 있는 것도 마동석 배우 덕분이다. 사실 마석도는 착한 형사라고 보기 어렵다. 불법적인 일도 자주 저지른다. 그런 단점들이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측면도 있지만 이번에는 최대한 간결하고 직선적으로 가고자 했다. 다소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을 지킨다, 범인을 잡는다, 악을 응징한다는 대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 소재 때문에 잔혹한 묘사가 상당히 나올 수밖에 없는데도 의외로 불편하진 않다는 점도 신기하다.
= 사실적인 묘사보다 장르적 쾌감에 집중했다. 칼을 쓰긴 하지만 쑤시고 자르는 것보다 둔탁하게 때린다는 느낌을 더 강조했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건 고어한 장면이 아니라 액션의 쾌감을 위한 적절한 긴장감이니까. 애초에 구상은 청소년관람불가였지만 15세이상관람가가 나왔고 그에 맞춰서 실제로 CG를 통해 피가 나오는 부분을 조금 줄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부드럽게 가면 장면의 맛이 살지 않기 때문에 적정선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 <범죄도시> 3편은 또 어떤 차이를 보여줄까.
= 아직은 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걸 양해 바란다. 무대는 인천이 될 거다. 이번에도 마석도에 대항할 만한 빌런을 세팅하는 데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환경과 무대가 바뀌는 만큼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려 한다. 물론 한방 액션과 인간적인 웃음이라는 핵심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2편의 흥행이 감사한 만큼 겁도 나지만 이번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최종 스코어가 나오면 그때 마음껏 기뻐하겠다. 3편 준비 때문에 아마도 휴가를 갈 순 없겠지만 스스로 고생했다는 의미로 선물을 한다면 오토바이를 바꾸고 싶다. 지금 오토바이를 6년째 타고 있는데 바퀴가 점점 얇아지고 있어서.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