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스페이스]
[트위터 스페이스] '카시오페아' 신연식 감독과의 대화
2022-06-03
글 : 배동미
타인의 삶과 고통을 묘사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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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집을 홀로 나선 수진(서현진)이 주차장에 서서 생각에 빠진다. 어디로 가려 했는지 까먹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오래된 전구처럼 깜빡이지만, 또렷이 떠오르는 목적지가 없는 상태. 이윽고 사람들을 사찰로 실어 나르는 승합차가 도착하고 수진도 이 차를 탄다. 그는 30대에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환자다. 영화 <카시오페아>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은 <씨네21> 트위터 스페이스에 참여해 이 병을 묘사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마다 상황이 다르고 증세도 워낙 다양하거든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가늠하기 어려웠어요. 서현진씨와 저는 눈빛 하나 대사 하나에 신경이 곤두섰어요.” 창작자로서 “타인의 삶과 고통을 묘사할 때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는 신연식 감독은 <카시오페아>에서 누군가의 실제 경험을 도둑질하듯 묘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영화를 본 치매 환자 가족들은 수진이 겪는 상황이 “실제로 다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 덕에 신연식 감독은 “약간 긴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페어러브> 이후 10여년 만에 안성기와 재회

수진 곁을 지키는 존재는 아버지 인우(안성기)다. 이혼 후 딸 지나(주예림)를 키우며 바쁘게 사는 수진을 조금씩 돕던 인우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수진을 돌보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다. “<페어러브>(2010)라는 작품을 하면서 안성기 선배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굉장히 컸어요.” 언젠가 다시 안성기 배우와 호흡을 맞추려던 신연식 감독의 구상은 10여년이 흐른 뒤 <카시오페아>로 성사되었다. 그러다보니 영화 구상에 안성기의 실제 삶도 조금은 영향을 미쳤다. “안성기 선배님은 딸이 없잖아요. 아들만 둘이라 오히려 재밌겠다 싶었어요.” 그 반면 수진을 연기한 서현진과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커리어 우먼으로서 관객을 납득시켜야 하고, 엄마로서도, 딸로서도 납득시켜야 했어요. 또 안성기 선배님 품에 안겼을 때 진짜 아기처럼 보일 수 있는 배우여야 했어요.” 그리고 수진에게 똑부러지게 말하는 딸 지나 역은 <우리집>에서의 막내 연기로 “윤가은 감독이 강력히 추천”한 주예림이 맡았다.

현실적이되 환상적인 신연식 월드

<카시오페아>는 가족을 돌보는 상황을 그리는 드라마 장르에 속하지만, 고된 삶을 전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신연식 감독 특유의 환상적이고 영화적인 순간이 이 작품에도 살며시 새겨져 있다. “제 영화는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인물들이 자신의 삶이 전에 생각해온 것과 똑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 부조리를 인식하는 순간순간을 담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수진이 헤매는 장면에서 관객은 수진 곁에 없는 딸 지나가 엄마를 걱정하는 말을 듣게 된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논리적이지 않지만 엄마를 걱정하는 지나의 목소리가 관객을 위로하고 수진을 어루만지는 열쇠가 된다. 신연식 감독은 이런 환상적 순간이 전작에서부터 이어져온 자신만의 화법이라고 말하며 “인물이 처한 상황은 현실적이지만, 지극히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구성해보자”는 마음으로 이 장면을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일주일 만에 완성한 시나리오

신연식 감독은 충무로에서 시나리오를 빠르게, 물 흐르듯 쓰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동주>의 시나리오를 일주일 만에 집필했고, 그가 직접 연출한 <조류인간>의 시나리오 초고도 일주일 만에 완성했다. <카시오페아>의 시나리오 역시 일주일 만에 뚝딱 썼다. “하나를 구상하면 빨리 끝내야지, 중간에 다른 일을 하기 힘들어하는 성격”이라고. <카시오페아> 시나리오와 관련한 재미난 에피소드 중 하나는, 극중 인우에게 영향을 준 실제 인물이다. 인우는 매일 같은 시간에 양치질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에게 “예전에 어떤 선배가 성공의 비결이 매일 아침 양말을 신을 때 왼쪽 발부터 신는 거라고 했어. 그냥 무조건 매일 뭔가에 의미 부여를 하고 의식을 하면 삶이 변한다는 거지”라고 말하며 위로하는데, 여기서 인우가 언급한 선배는 사실 이준익 감독이다. 이준익 감독은 매일 아침 양말을 왼발부터 신는 습관을 갖고 있다.

카시오페아 별자리 같은 영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늘 어떤 필요에 의한 관계라고만 생각해서 갈등이 생기잖아요. ‘나는 이렇게 해줬는데 저 사람은 왜 이걸 안 해줘?’라는 식으로 ‘기브 앤드 테이크’를 생각하곤 하죠. <카시오페아>가 이런 의식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날 대화 말미에 신연식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제목도 <카시오페아>다. “<카시오페아>는 ‘저 북극성을 봐, 저걸 보며 길을 찾아’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거든요. 밝은 카시오페아 별자리들을 보다 보니까 그 옆에 북극성이 보이고 길도 찾게 되는 거지 누군가에게 억지로 방향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에요.” 영화의 결처럼 인간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도 유연하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게 우리 모두의 관계인 것 같아요.” 신연식 감독이 ‘기브 앤드 테이크’를 뛰어넘는 관계를 이해하게 된 건 그의 딸이 세상에 태어난 때부터다.

사진제공 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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