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우연의 초콜릿 네트워크
2022-06-09
글 : 송길영 (Mind Miner)

바쁜 일정 사이 2시간이 비었다. 무엇을 할까 하다 방문한 곳은 학교 옆 오래된 분식점이다. 떡볶이와 튀김으로 유명한 노포에도 이제는 키오스크가 반긴다. 추억을 30분 이내에 충분히 즐기고 남은 한 시간 반을 보내기 위해 안테나를 세워보았다. 주변이 재개발돼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해버려 포기하려던 순간, 주방 기구들의 도매 성지로 유명한 옛 상권이 바로 옆이란 것을 떠올렸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처럼 분명히 이 오래된 골목에서 모티브를 얻은 용자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송로버섯 탐색견과 같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재빠르게 검색해 평판과 방문기들을 둘러보다 한곳에 눈길이 머물렀다. 지도상으로 대로변이 아닌 깊은 골목에 있는, 수십년된 여인숙을 재생한 카페는 한눈에도 범상치 않았다. 협찬 없음을 강조하는 블로거들이 경험을 공유해주는 사진만으로도 만든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메뉴의 이름과 디자인, 가격대가 자신감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무작정 향했다. 좁은 도로 사이 차도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뒷골목에 자리 잡은 카페의 좌우 건물은 수십년의 세월이 그대로 정지한 상태였다. 돌담 사이 격자로 만들어진 심플한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자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멈춰버린 차분함에 수도원으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었다. 세밀하게 조어된 메뉴들과 조심스레 권하는 화장실 안 문장만으로도 주인의 성정을 나타내 단박에 매료되었다. 주문 후 2층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자 보이는 풍광은 지난 60년의 세월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전해지는 익숙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멋진 곳에 많이도 가보았지만 이처럼 나의 공간으로 갖고 싶은 경험은 드문 일이었다. 주문한 음료들을 가져다주는 직원 분께 공간을 만든 이를 여쭤보니 바로 옆 사무실에 계신단다. 문을 두드려 이야기를 청해 남은 시간을 채워 삶과 공간을 만든 과정을 들었다. 직접 만든 초콜릿 콩을 챙겨주시기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받아왔다.

그 후 일주일도 안되어 채소에 대해 배우고 채식 요리를 나누는 워크숍에 참석했다. 즐거운 배움을 끝내고 몇분과 함께 차를 마시는데 가깝게 지내는 영화감독님께서 그 초콜릿 콩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카페 이름을 이야기하니 그 디자이너 분을 제주도에서 만나 받았다며 다음날 그곳에 방문 예정이란다. 나야말로 감독님께 소개드리려 했다 하며 함께 웃었다. 지금은 그 장소를 사랑하게 된 8명의 사람들이 모인 단톡방이 상시 운영 중이다. 우리는 공간의 앰배서더가 되어 여러분에게 열심히 그곳을 알리고 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기대로 가득 차 있다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 속 주인공 검프의 어머니가 말한 대사가 떠오른다. 나의 삶에서도 초콜릿 콩으로 이어진 인연이 미리 알지 못했던 행복을 채워주고 있다. 역시 인생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음을, 가까운 네트워크에서 반복된 우연은 필연임을 믿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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