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람의 존재감은 떠난 뒤에야 실감하게 된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가수로, 희극인으로, 영화배우로, 라디오 진행자로, 그리고 무엇보다 34년 동안KBS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자로 사랑받았던 ‘일요일의 남자’ 송해(본명 송복희)가 지난 6월8일 세상을 떠났다. 3살 아이부터 100살이 훌쩍 넘는 노인까지 출연해 “1세기의 시간이 하나가 되는” 무대였던 <전국노래자랑>은 송해의 세상이었다. 녹화 하루 전 그 지역에 미리 가서 경치와 동네 분위기를 살폈던 그는 보령에 가면 얼굴에 진흙을 칠했고, 금산에 가면 인삼 왕관을 썼다. 모든 지역 특산물을 권하는 대로 먹고, 그 어떤 돌발 상황에도 당황하거나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며, 누구든 신나게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판을 깔았다. 노인에겐 반갑게 큰절 올리고 어린이 앞에선 무릎 꿇고 말을 건네던 진행자로서 그의 철칙은 “죽은 나무가 나와도 꽃피는 나무라 그래라”였다. 무대에 오른 어떤 사람에게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면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거나 형편이 어렵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의기소침해 있던 후배들도 그의 격려와 덕담에 의지하며 성장했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추모곡으로 <유랑청춘>을 부르는 내내 눈물을 보이던 설운도는 송해와의 추억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선생님은 부족한 저를 항상 ‘가요계의 신사’라고 소개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어디 가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송해 선생님 말씀을 들은 분들이 정말로 저를 신사라고 생각해주실 것 같아서, 그 말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이처럼 어른들의 어른이자 힘든 시대를 누구보다 흥겹게 살아낸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다.
CHECK POINT
카메라 앞의 송해는 언제나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하는 방송인이었지만, 자연인 송해의 삶에는 눈물이 많았다. 피난길에 오르며 헤어진 어머니,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 해로하다 먼저 간 아내를 떠올릴 때마다 그는 울었다.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영화 <송해 1927>에서, 음악 한다는 걸 반대했던 아들이 남긴 노래를 처음으로 들은 송해는 회한에 잠긴 얼굴로 말한다. “부모도 자식 마음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너무 많아….” 이제 그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들과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