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노말리>는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두번 착륙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세달 전에 안전히 비행을 마친 파리발 뉴욕행 비행기와 똑같은 비행기가 동일한 승객을 싣고 다시 착륙 요청을 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과학자, 종교인, 정치인들을 소집해 미스터리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뜻밖의 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에르베 르 텔리에는 <아노말리>로 2020년 공쿠르상을 수상했고, <아노말리>는 밀리언 셀러가 되며 역대 공쿠르상 수상작 중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 ‘아노말리’라는 비행기의 운행 이상 상태를 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삼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 여러 사람이 각자 자신의 자아를 대면하는 상황을 설정하다 보니 이 사람들을 다 같은 공간에 모을 필요가 있었고, 비행기가 가장 적당한 장소가 되었다. 버스, 기차, 배, 비행기 전부 가능하지만 사회적인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일 수 있는 장소로는 비행기가 가장 좋겠더라. 책에 나오는 난기류는 많이 만나봤지만 무섭지 않다. 오히려 재미있다.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 <아노말리>는 일종의 사고실험처럼 보인다. 3월에 도착한 사람들과 6월의 사람들이라는, 근접한 시간 차이를 두고 마주한 동일한 사람들이라는 설정을 위해 많은 것들을 정교하게 계산해야 했을 것 같다.
= 최초의 의도는 자아와 대면할 때 인간의 반응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가능한 사건을 세팅해보니, 16가지 정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그중 8개를 남겼다. 즉, 상황을 먼저 세팅하고 그 상황에 맞는 인물을 선택한 셈이다. 예를 들어, ‘나 자신을 대면했을 때 나를 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청부살인업자가 있었고, ‘나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 ‘나와 협력하는 사람’ 등을 차례로 선택한 셈이다.
- 왜 106일인가.
= 3월과 6월이라는 106일의 시간 차는 53일에 2를 곱한 숫자다. 53은 소설가 조르주 페렉의 마지막 작품 <53일>에서 가져왔다. 이 106일 사이에 봄이 지나간다. 그사이에 자살한 사람, 연인과 헤어진 사람, 아이를 낳은 사람 등이 있다. 106일이 지났다고 해서 우리가 육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지는 않는다. 106일은 생리적이나 신체적으로 봤을 때 0.3% 정도 변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106일의 차이를 둔 자아와 대면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와 똑같지만 106일 동안 다른 삶을 경험한 사람을 만난다는 뜻이다. 나는 운명에 관심이 많다. 나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운명은 어떻게 갈라질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 <아노말리>에서는 동일한 사람이 더블로 존재한다. 도플갱어 이야기가 신화적인 부분이 있다면 <아노말리>의 설정은 그보다 미디어에 대한 철학에 가까워 보인다. <매트릭스>를 비롯한 SF영화를 본 사람이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 같은. 그런 영화들의 영향, 혹은 철학의 영향을 받았나.
= 책에서 <블랙 미러>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레퍼런스가 많이 있다. 하지만 <매트릭스>가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라면 <아노말리>에서는 가상의 인물들이 자기 존재를 보게 되는 식의 설정이니 같지는 않다. 문학에서 분신이라는 테마는 인류가 시작할 때부터 존재했다. 네 가지 종류의 ‘더블’ 테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제우스가 암피트리온의 아내인 알크메네와 동침하기 위해 암피트리온인 척했던 사례를 떠올릴 수 있다. 두 번째는 도플갱어처럼 ‘악한 나’를 상정하는 것이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세 번째는 이중 거울의 분신이 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초상화 속 나의 분신이 몰락과 노화를 받아들이고 나는 계속 젊게 살아가는 더블 이미지 말이다. 네 번째는 절대적인 분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나와 똑같은 나’, 그래서 ‘나’의 적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영혼을 점령한 사람도 아닌, 절대적인 거울을 통해서 비추어지는 동일한 두 사람의 ‘나’가 존재한다.
- 네 번째가 <아노말리>의 경우겠다.
= 그렇다. 두 사람이 서로 너무 똑같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
- 자신과 동일한 존재를 맞딱뜨리는 일은 시험처럼도 느껴진다.
=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은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만나면 그를 좋아할 수가 없다. <아노말리>는 그런 사고실험이다. 과연 나는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가. 과연 나는 나를 받아들일 만큼 관용적인가. 과연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이 살고 싶은가. 내가 늘 고민하는 문제도 그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인생에 가장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가. 이 고민은 ‘우리를 이루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바로 타자와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이때 타자는 세상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한두 사람을 말한다.
- 프랑스에서 <아노말리>가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 결말에 대해서 독자들의 의견이 다양했을 것 같은데.
=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소설에서 언급하는 ‘시뮬레이션’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독자는 현실이 아닌 상황을 믿고, 가상의 사건에 몰입하지 않나. 많은 이들이 가상 캐릭터가 되어 게임을 한다. 메타버스도 낯선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과연 감각을 신뢰할 수 있을까. 우리의 감각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는 추론도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