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컴온 컴온' 마이크 밀스 감독, "자전적 경험이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게"
2022-06-30
글 : 송경원

사진제공 찬란
- 당신은 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커밍아웃한 아버지와 사색적인 아들의 이야기는 <비기너스>(2010)가 되었고, 어머니와의 일화는 <우리의 20세기>(2016)에 녹아 있다.

= 맞다. 늘 그랬다. 내 아버지가 75살이 되던 해에 커밍아웃을 하셨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아빠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시간을 반영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동안 내가 살던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다. 아이들이 내가 아주 완벽하게 구축해놓은 나만의 세상을 어떤 예측 불가한 방식으로 와해시켜버리는데 그게 싫거나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선물 같은 놀라운 시간이었고 그 충만했던 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 제시와 조니의 동행이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가운데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조니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미래를 묻는 인터뷰를 진행한다.

= 제시의 목소리만이 유일한 아이의 소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아이의 시선이 극 전체를 끌고 가는 것보다 좀더 다양한 경제력, 다양한 인종, 다양한 도시, 다양한 아이들의 생각을 겹친 콜라주가 되길 바랐다. 그럼으로써 나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로 증폭될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본다. 무엇보다 인터뷰 영상의 다큐멘터리적 요소와 극적 요소가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집중하면서 작업했다. 나의, 혹은 누군가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보편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접점을 찾는 일이다.

- 조니는 로스앤젤레스, 뉴욕, 디트로이트, 뉴올리스언스까지 미국 동서남북에 위치한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방송을 만든다.

= 나만의 폐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결국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미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개인적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고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하는 의문을 자주 품게 되었다. 그런 나의 혼란 속에 길을 찾아줄 존재로 성인 남자와 아이, 조니와 제시를 미국이란 공간에 내던져놓고 싶었다. 미국인의 전형적 삶의 흐름 속에서 이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미국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 각 도시는 오늘의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제조업을 대표하던 디트로이트는 화려한 미래를 상징하던 도시였는데, 한편으로는 실패한 미래처럼 다가온다. 뉴욕은 이민자 대부분이 뉴욕을 통과해 미국에 정착한 역사가 있다. 이곳에서 인터뷰한 아이들 역시 모두 이민자의 자녀로 설정했다. 자연재해로 매년 골머리를 앓는 뉴올리스언스는 미국스럽지 않은 미국이다.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면서 독특한 정신이 형성된 매력적인 도시다.

- 로비 라이언 촬영감독과 함께한 장면은 기록 영상처럼 미국의 풍경을 보여준다. 인터뷰 영상과 도시 전경을 교차편집하거나 익스트림 롱숏으로 도시를 잡기도 하고 자연풍경을 보여주었다가 표지판이나 집 등 보여주기도 한다. 흑백으로 촬영한 이유가 있을까.

= 개인적으로 흑백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해보고 싶었다. (웃음) 나는 이 영화가 어른과 아이가 동행하는 일종의 우화로 느껴지길 바랐다. <컴온 컴온>은 가족과 세상, 젊음과 나이 듦, 거대한 질문과 사소한 질문 등 상반되는 것들을 내세운 영화다. 미국 사회의 여러 단면이 녹아들길 바랐고, 의식적으로 구성한 면도 있지만 결국 이건 극영화다. 공간을 보여주고 라디오 사연을 들려줄 순 있어도 극적인 사건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아이들의 사연을 조니와 제시의 사연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용할 마음도 없었다. 아이들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무척 많았지만, 주인공의 사연과 상호작용하는 대화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편집에 공을 들였다. 흑백으로 찍으면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생겨 우화적인 면을 증폭할 수 있다.

- 이 영화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교차편집이다. 거대한 도시의 풍경이나 과거의 플래시백이 수시로 오가고 속도도 꽤 빠르다.

= <컴온 컴온>은 이제껏 내가 만든 영화 중 시간의 흐름이 가장 정직한 작품이다. 사실 나는 선형적 시간의 흐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시간은 그렇게 순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나눈 대화, 특별한 경험을 기준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영화의 가장 즐거운 지점도 이런 감각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반에 보여준 장면을 다른 시선에서 다시 보여줄 때 영화가 인생을 닮았다고 느낀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순간이 더 많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인 채 계속 흘러간다.

-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기록과 기억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의 기록이 나의 기억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제시와 조니가 나누는 대화는 애틋하고 살갑다.

= 나는 기록에 매우 집착하는 사람이다. 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기억을 남기기 위한 노력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2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 어느새 사라지고 5살짜리 아이가 눈앞에 있다. 기록이란 결국 내 아이가 내가 알지 못하는 존재로 변해가는 걸 지켜보면서 이해하려는, 기억하려는 노력이다. 지나간 순간들을 붙들려는 이 모든 발버둥이 사랑스럽다.

사진제공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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