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파라마운트+ '헤일로' 배우 공정환, "이제 배우들에게 국경이라는 경계는 없다"
2022-07-07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1998년 5인조 록밴드 오락실로 데뷔해 배우, 모델, 교사 등 다양한 길을 걸어온 공정환은 할리우드 진출의 꿈을 막연한 바람으로 남겨두지 않고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거나 오디션에 참여하는 등 전선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 결과 파라마운트+ 오리지널 <헤일로>에서 마드리갈 행성을 관장하는 한국인 리더 진 하 역이 마침내 그에게 주어졌다.

- <헤일로>에서 연기한 인물 진 하는 26세기에 마드리갈 행성에 정착한 한국인 토착민이자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다. 외계 종족의 침범으로 진 하와 마드리갈 행성 주민들은 죽음을 맞이하고, 혼자 살아남은 진 하의 딸 관 하(하예린)가 인류 최고의 전사인 마스터 치프를 만나 새로운 여정에 나서는 이야기다. 다인종, 다민족 사회에서 한국인 리더가 대표성을 띤다는 사실이 재밌다.

= 진 하가 죽은 뒤 그의 장례식에 판소리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떻게 구현되었을지 나도 궁금하다. 본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오디션 과정에서 받았던 진 하의 대본이 사실상 프리퀄의 내용이었다. 진 하와 그의 공동체가 몇백년 전에 이미 마드리갈 행성에 정착해 평화롭게 살던 중 어떤 침략 전쟁이 벌어져 현재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진 하란 사람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는 대대로 내려오는 한국인 족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고, 그래서 굉장히 책임감이 강한 인물로 해석했다.

- 한국어 대사 등에 있어서 직접 아이디어를 보탠 부분도 있나.

= 대본은 전부 영어 스크립트였고, 부분적으로 ‘한국어 대사로 말할 것’과 같은 형태로 표기되어 있었다. 영어를 직역해 한국어로 옮기면 유독 어색해지는 대사들이 생길 땐 원어민으로서 의견을 보탰다. 예를 들면 ‘신이시여!’(oh, my god!). 한국 사람들은 놀라거나 황망할 때 웬만해선 신을 찾지 않는다, 차라리 엄마를 찾지. (웃음) 언어가 달라지면 대사에 소요되는 시간도 달라지다보니 처음엔 쉽지 않았다. 또 외계 종족의 침범 후 딸 관 하와 절체절명인 순간들을 연기할 땐 한국적인 요소도 좀더 살리고 싶었다. 제작진은 대체로 감정이 너무 강하지 않은 미묘한 경계를 원했고, 나는 좀더 감정적 온도를 높이고 싶은 바람을 드러냈는데 그 수위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다.

-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꿈은 오래전부터 있었나. 어떤 과정을 거쳐 할리우드 프로덕션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헤일로> 캐스팅 과정의 세부가 궁금하다.

= 그저 무턱대고 언젠가 한번은 할리우드에서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영어 대본을 구해서 혼자 종종 섀도잉도 해보는 식이었다. 그러던 중 영화 <공조>를 찍다가 알게 된 북한말 선생님이 어느 날, “정환씨, 나 지금 해외 드라마 찍으러 왔는데 오디션 한번 볼래요” 하신 거다. 그 작품은 한효주 배우가 주연한 <트레드스톤>이었고, 당시에 나는 스케줄이 도저히 맞지 않아 참여가 어려울 걸 알면서도 일단 오디션이라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로부터 4달쯤 후에 미국 에이전시에서 다시 <헤일로>를 제안했다. 중학생 정도의 영어 실력이지만 다행히 틈틈이 공부해온 터라 리스닝은 편하고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태도로 임했다.

- <헤일로>를 촬영하는 동안 해외 프로덕션을 경험하며 얻은 것이 있다면.

= 많은 배우들이 경력과 상관없이 셀프 테이프를 만들어 자신을 홍보하고 전세계 해외 프로덕션 오디션을 보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촬영 기간 동안 호텔에 머물면서 도무지 동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다들 방에 틀어박혀서 뭐하는 거지?’ 하고 의아해했는데 알고보니 1~2분짜리 셀프 테이프 제작에 여념이 없더라. 며칠 전 헝가리에서 촬영을 마친 뒤, 다음달엔 인도영화를 찍으러 갈 예정이고, 그 이후엔 루마니아에 가서 미국영화를 찍는다는 식의 스케줄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묘했다. 확실히 경계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경호처 수행비서관, <창궐>의 금위장, <공조>의 북한 조직원, <판도라>의 정무수석 등 시대극과 현대물을 가리지 않고 절도 있는 프로페셔널을 연기할 때 주목받았다. 가수로 데뷔해 영화, 드라마에서 조단역으로 활동할 동안, 모델협회 이사로 활동하거나 학교에서 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 상황이 그렇기도 했고 또 정말이지 잘 쉬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다. 무엇이든 계속 하고 채워넣어야 마음이 편하다. 조금 구차한 이야기지만 2~3개월 오디션 끝에 매니저를 통해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울더라. 그때 나도 눈물이 났다. 실은 그만큼 내게도 큰 의미였던 거다. 이번에 지핀 불씨를 더 키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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