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집착하는 시네필’이라고 말하는 알렉산더 O. 필립 감독은 오래전부터 영화감독이나 특정 영화 혹은 팬덤을 주제로 독특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이번에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작품과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린치/오즈>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조지 루카스와 팬덤을 분석한 <피플 vs 조지 루카스>(2010)나 앨프리드 히치콕의 <사이코>의 샤워신을 해체한 <78/52>(2017) 같은 그의 전작처럼 이번 영화에도 스크린 안팎을 넘어 데이비드 린치에 관한 일화가 풍성하게 아카이빙 되어 있다. 이번에는 이런 작업을 지속해온 알렉산더 O. 필립에 관해, 그리고 영화 <린치/오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 데이비드 린치에 처음 매료된 건 언제였나.
= 1997년작 <로스트 하이웨이>를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 뒤로 데이비드 린치에게 빠졌다. 특히 린치의 앵글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을 찾고 싶었다. 린치와 오즈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사실 이전부터 팝 컬처나 대중문화 신에서 종종 언급되곤 했다. 그때마다 린치에 영향을 준 감독이나 작품에 관해 항상 찾아봤고,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만드는 작업까지 이어졌다.
- 데이비드 린치가 이토록 <오즈의 마법사>에 깊은 관심이 있었는지 몰랐다. 오래전 인터뷰에서 직접 <오즈의 마법사>를 언급하고 <오버 더 레인보우>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나온다. 작업실에 <오즈의 마법사> 포스터까지 걸어두기까지 했다.
= 나 역시 데이비드 린치가 <오즈의 마법사>에 이만큼이나 집착했고 연관성을 갖는지 미처 몰랐다. 찾으면 찾을수록 보이는 게 있어서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팠다. 그냥 문을 한번 열어본 셈인데 그 안이 굉장히 깊고 특별했다. <광란의 사랑>의 경우 굉장히 의식적으로 <오즈의 마법사>를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의도했건 아니건 다른 영화에도 <오즈의 마법사>가 느껴진다는 게 마법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린치 자체가 굉장히 직관적인 필름 메이커이지 않나. 아마 자기도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정작 데이비드 린치는 인터뷰하지 않았다.
= 사실 가장 먼저 연락했다. 린치는 인터뷰를 거절했고, 당연히 거절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는 자기 영화에 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 스스로 할 말도 별로 없을 거다. (웃음) 이 영화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서 나온 거니까. 그래서 차라리 다른 감독들이 린치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린치와 인터뷰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작품 얘기가 아니라 <오즈의 마법사>에 관한 이야기만 했을 거다.
- 그래서 존 워터스, 저스틴 벤슨, 아론 무어헤드, 캐린 쿠사마 등 여섯 명의 영화 제작자가 각자의 테마로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을 해석한다. 이들은 내레이션만 맡은 건가, 실제 본인의 아이디어를 더한 건가?
= 처음에는 그들에게 각각의 챕터를 맡아달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무작정 전화 인터뷰를 시작했다. 린치에 관한 무슨 이야기도 좋다고 했다. 나는 이런 걸 ‘재즈 인터뷰’라고 부르는데, 이야기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지만 3시간 넘게 그냥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보는 거다. 그걸 녹음하고 녹취록을 만들어서 스크립트를 완성했다. 이야기를 챕터별로 구조화한 후 스크립트를 공유했다. 각자 할당된 원고를 보고 의견을 주면 일부 수정했다. 그렇게 완성한 원고를 각각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 영화 속에는 마틴 스콜세지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스파이크 리 등 방대한 영화가 레퍼런스로 나온다. 이 모든 영화 소스들을 어떻게 찾고 정리해 나갔나.
= 나는 클래식 영화를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광이다. 나와 오래 작업해온 편집자 데이비드 로렌스도 엄청난 시네필이다. 영화 속에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와 비교하기 위한 수많은 클립이 필요했다. 데이비드 로렌스가 누구보다 그런 영상을 잘 찾아내는 파트너지만 이건 꽤 인내심이 필요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래도 뭔가 발견하면 대단히 즐거워서 힘들어도 이런 작업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 영화 속에 활용한 수많은 영화 클립의 저작권은 어떻게 해결했나.
= 미국에서는 공정이용(fair-use)이라는 권리가 있고 이를 담당하는 변호사가 따로 있다. 절차는 굉장히 복잡한데 내가 왜 이 영상 클립을 사용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타당성을 확인 받으면 돈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물론 승인을 받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한번 승인받으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유통도 가능하다. 만약 스튜디오 같은 방식으로 일일이 저작권 비용을 내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한다면 수백만 달러가 들기 때문에 아예 엄두도 내지 못 할 일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공정이용에 관한 개념이 생겼다. 영국에도 페어 딜링(fair dealing)이라는 동일한 권리가 있다.
- 당신은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를 읽고 향유한다. 시네필로서 관객들에게 당신이 영화를 즐기는 방식을 공유해 달라.
= 기본적으로 영화를 분석적으로 본다. 나는 원체 시각적인 사람이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떤 패턴과 그 연결성에 집착한다. 메모를 따로 하지 않지만, 영화 속 요소가 어떻게 연결성을 갖는지 이미지 그대로 기억하는 편이다. 그렇게 강렬하게 남는 이미지는 ‘멘탈 노트’에 남겨두는데, 그렇게 머릿속에 기억해둔 것을 곧바로 작업에 활용하기도 하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떠올리기도 한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게 갑자기 연결되는 순간이 있다.
- 데이비드 린치나 오즈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영화제를 통해 이 영화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들을 위해 팁을 준다면.
=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한 번도 본적 없고 <오즈의 마법사>도 본적 없는 관객이 온다면? 어떤 게 궁금해서 영화를 보게 된 건지 내가 정말 묻고 싶다. (웃음) 뭔가 궁금해서 영화를 선택했을 텐데 그 무언가를 얻어가길 바란다. 물론 내 영화를 통해 린치의 영화나 <오즈의 마법사>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가장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