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8일 디즈니+에서 1화가 공개된 뒤 7월6일 마지막 화를 선보이며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은 <오비완 케노비>는 암흑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몰락한 지 10년이 지난 뒤, 다스 베이더가 이끄는 제국군은 뿔뿔이 흩어진 제다이를 소탕하는 데 혈안이 됐고, 은둔의 삶을 살아가는 오비완 케노비는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에서 납치된 레아 공주를 되찾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선다. 루카스필름이 <스타워즈>의 새 시리즈인 <오비완 케노비>의 촬영을 정정훈 촬영감독에게 맡긴 이유는 그가 그간 보여준 빛과 어둠의 세공술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 키 스탭으로선 최초로 <스타워즈> 시리즈에 참여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오비완 케노비>에 어두우면서도 깊이 있는 숨결을 불어넣었다.
- 마지막 화인 6화가 공개됐다.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되는 시리즈 작업은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처음 아닌가.
= 시리즈라고 해서 영화와 특별히 다른 작업은 아니었다. 매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관객에게 잘 전달됐을지 기대감과 동시에 초조함이 생기는 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닌가 싶다. 5화가 공개된 현재까지는 관객 사이에서 아쉬움보다는 만족도가 큰 것 같아 다행이다.
- 한국인 키 스탭이 <스타워즈> 시리즈에 합류한 건 처음이다.
전작 <언차티드>(감독 루빈 플라이셔, 2022)의 촬영이 끝난 뒤 미국 LA로 돌아왔을 때 루카스필름이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OTT에서 공개할 6부작짜리 시리즈이고, 어릴 때부터 영화를 공부하며 봐왔던 프랜차이즈 시리즈라 꽤 흥미진진한 제안이었다. 루카스필름과 인터뷰했을 때 데버라 차우 감독이 굉장히 영리하고,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데다가 시나리오까지 마음에 들었다.
- 루카스필름이 특별히 주문한 건 무엇인가.
= 특별한 주문은 없었고, 협업을 통해 룩을 만들어내길 원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가장 중요했던 건 LED 패널로 둘러싸인 볼륨 스튜디오 촬영이라는 새로운 환경, 도구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이 LED 조명 시스템은 ILM이 <오비완 케노비> 이전에 <만달로리안>을 작업할 때 시도했던 방식이다. 해상도가 높은 LED 패널이 세트장 벽 사방을 둘러싸고, 언리얼 엔진으로 사전에 제작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해 LED에 표시하며 촬영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블루나 그린 스크린이 아닌 빛이 스스로 발광하는 LED 볼륨 스튜디오 촬영을 준비하는 작업이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 어두운 시대를 다루는 이야기인 만큼 빛 설계를 할 때도 어두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야 했을 것 같다. 빛의 컨셉은 무엇이었나.
= 굉장히 어두운 이야기지만 마냥 어둡게만 표현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았다. 가령, 네온사인이 많이 등장하지 않나. 네온사인, 우주선 내부, 광선검 같은 조명은 이야기의 배경에 따른 자연스러운 설정이었다. 그런 설정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주되, 인위적인 조명은 적게 쓰자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LED 볼륨 스튜디오 촬영과도 관련이 깊다. LED 볼륨 스튜디오 촬영에서 LED 패널은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조명을 과하게 사용하거나 잘못 계산하면 LED 조명과 충돌하며 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창의적인 표현과 기술적인 선택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
- 에피소드 3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장면은 다스 베이더와 오비완 케노비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주해 광선검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둘의 대결은 광선검에서 발광하는 빛에 의존할 만큼 어둡게 연출됐다.
= 데버라 차우 감독과 함께 논의했던 건 다스 베이더가 서 있는 모습조차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광선검을 켰을 때 그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어둡게 찍어보자는 거였다. 촬영 현장에서 둘이서 ‘더 어둡게, 더 어둡게’ 하면서 찍었다. 그럼에도 둘의 원래 의도보다 조금 더 밝게 찍히긴 했다.
- 오비완 케노비가 레아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제국군 기지에 들어갔다가 탈출하는 시퀀스는 등장인물이 많고, 배우들의 동선이 복잡하며, 시각효과(VFX) 작업도 들어가는 데다가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게 관건이라 촬영 난이도가 높았을 것 같다.
= 그 시퀀스는 감독의 확고한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스토리보드를 정교하게 짜고, 약속대로 찍을 수 있었다. 전작에선 카메라 여러 대를 한꺼번에 쓰질 못했는데 <오비완 케노비>의 경우 최대 4대까지 썼다. 정해진 회차 안에 못 찍으면 다음 일정으로 미뤄지기 때문에 카메라를 한대라도 더 투입시켜 동시에 찍는 게 이런 군중 신에선 최선일 때가 있다. 다만, LED 볼륨 스튜디오 촬영에선 카메라를 여러 대 쓰면 안된다, 강한 라이트를 쓰지 말라는 등의 지침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LED 패널에 강한 빛을 비추면 배경 영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괜히 강한 빛을 쓰고 싶더라. 한계를 극복해야 전진할 수 있으니까.
- 그것이 이번 <스타워즈> 시리즈를 작업하며 얻은 깨달음일 것 같다.
= 유서 깊은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찍으면서, 어떤 팬들은 변화를 원하고 또 어떤 팬들은 기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를 것을 요구하는데, 촬영감독으로서 그보다 중요한 건 결국 이야기에 맞는 촬영임을 깨달았다. 물론 내 눈에는 아쉬움도 보이지만, 전작에서 퇴행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발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