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만남도 인연이다. <뒤틀린 집>의 강동헌 감독과 윤상 음악감독은 마치 오래 사귄 벗 같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데 꼭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다. 강동헌 감독의 전작 <기도하는 남자>를 보고 반한 윤상 음악감독은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먼저 연락을 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강동헌 감독은 긴 호흡으로 인간을 관찰하던 전작과 전혀 다른 호러를 들고 돌아왔다. <뒤틀린 집>은 한국판 <컨저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하우스 호러의 장치들을 익숙하게 활용하는 장르영화다. 하지만 전형적인 장르의 길을 가면서도 감독의 숨길 수 없는 개성과 시선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윤상 음악감독은 강동헌 감독의 깊은 이해자이자 동반자가 되어 모험 같았던 이번 작업을 도왔다. 좋은 영화가 무엇인지 설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좋은 만남이 무엇인지는 어렴풋하게나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강동헌 감독과 윤상 음악감독의 대화에서 그 흔적을 마주한다.
- 윤상 음악감독은 이번이 첫 영화 작업이다. 어떻게 함께하게 된 건지.
윤상 강동헌 감독님의 전작 <기도하는 남자>를 보고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같이 작업해봐야겠다, 이런 건 아니었고 막연히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웃음) 음악 다음으로 영화를 좋아하는데 <기도하는 남자>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냥 식사 한번 하자고 연락을 한 건데 마침 감독님이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며 함께하자는 제안을 주셨다. 본래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영화음악 작업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분이라면 믿고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락했다.
강동헌 연락 왔을 때 몇번을 다시 물었다. 윤상? 내가 아는 윤상은 한명밖에 없는데 그 가수 윤상? (웃음) 처음엔 뭔가 아르바이트 거리를 주려나보다 하고 만났다. <기도하는 남자> 이야기를 꺼낼 때 부끄럽고 감사한 기분이었다. 자존감도 올라가는 것 같고 내가 그래도 허송세월을 보낸 건 아니구나 싶었다. 사실 흥행이 크게 된 것도 아니고 평론가들이나 <씨네21>에서는 좋아해주셨지만 직접 반응을 접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무니까. 윤상님을 만날 때가 앞으로의 영화에 대해 고민하며 한창 방황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 <기도하는 남자>와 <뒤틀린 집>은 색깔이 다르다. <뒤틀린 집>의 경우 호러 스릴러 장르색이 강한데.
윤상 그래서 오히려 정확한 접근이 가능했다. 다른 장르였다면 더 어려웠을 것이다. 호러는 사운드가 대체로 정해져 있는 부분이 많아서 공식에 충실하게 가는 것에 집중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 제한된 부분이 더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됐다.
강동헌 전작과 달리 두 번째 영화는 좀더 대중적인 장르영화로 돌아왔다. 알다시피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다. 나도 준비 중인 작품이 무산된 경우가 적지 않다. 촬영전공 후 촬영팀에서 오랫동안 현장을 경험하다 첫 장편영화 연출 기회를 잡기까지 7년이 걸렸다. 한때 순서를 밟으면 자연스레 감독이 되겠거니 생각한 적이 있다. 몸소 겪으면서 그게 얼마나 좁고 고된 길인지 실감 중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국가고시 치르듯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뒤틀린 집>은 내가 어디까지 대중영화, 장르영화를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도전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도 있다. 마침 내가 2년간 준비했던 다른 영화와 주제적으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야기라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다.
- <뒤틀린 집>은 하우스 호러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면서도 관점이 남다르다.
강동헌 <기도하는 남자> 이후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어야 할지 고민이 오래 이어졌다. 나 역시 독립영화, 작가영화를 좋아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외면할 수 없으니까. 직업 감독이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자신의 주특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나홍진, 허진호 감독처럼 장르적인 가운데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싶었다.
윤상 대중적인 표현과 작가적인 시선 사이의 고민은 모든 창작자가 겪는 일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감독님의 고집을 좀더 보고 싶다. 나는 감독님이 아주 재능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기적처럼 드문 경험이다. <기도하는 남자>에서 그걸 느꼈다. 이런 섬세한 감정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이런 시선을 지닌 분이라면 언젠가는 많은 분들이 그 빛을 알아주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 어떤 면에서는 호러만큼 창작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르도 드물다.
강동헌 호러는 다양한 딜레마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장르다. 다행히 <뒤틀린 집> 제작사에서 나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허락해줘 원작의 분위기를 유지하되 변화를 주려 했다. <뒤틀린 집>은 영화가 먼저 나오고 소설이 나중에 나오는 특이한 케이스다. 제작사의 전략인데 덕분에 원작에 너무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이 진짜 무서운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끝에 엄마와 딸, 가족에 대한 사연으로 무게가 점점 옮겨가기 시작했다. 가족이라는 건 서로를 보호해주어야 하는 곳인데 가장 편안한 곳이 뒤틀려 있을 때 발생하는 숨막히는 기분이 있다. 그게 꼭 공포라는 한 단어로 정리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요즘 사회의 고민, 소시민의 삶, 가족에 대한 애정과 스트레스 등이 반영되었다. 노동자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마음속에 늘 켄 로치가 있다. (웃음)
- 특히 음악이나 사운드가 익숙한 표현과 감성적인 멜로디 사이에서 미묘하게 선을 탄다.
윤상 나 역시 호러의 공식을 지키되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다. 이번 영화는 그룹 캐스커의 이준오와 공동 작업을 했는데 아무래도 처음 하는 일이다보니 배우는 게 많았다. 어디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구나 하는 식으로 음악 외 사운드, 폴리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감독님이 좀더 자신이 믿는 바대로 밀어붙여도 좋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최대한 친절하게, 호러영화답게, 장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를 쓰신 것 같다. 기본적으로 감독님이 요구한 건 과잉이었다. 미적지근하게 표현하지 말고 무서울 땐 확실히 무섭게, 이게 지금 어떤 장면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음악을 원하셨다. “비판은 내가 받을 테니 우리는 투머치로 간다!”라며. (웃음) 그 와중에 나도 창작자로서 욕심이 없지 않았다. 후반부에 공포라는 효과보다는 왜 무서운지에 대한 이유를 전달하고 싶었고 정서적으로 애잔한 분위기의 곡들을 어느 정도 담아내고자 했다. 에필로그 부분에 간신히 그런 숨 쉴 구멍을 허락받았다. 나는 수십번 보다보니 완전히 밀착되어 있어서 알 수 없고 관객이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지 궁금하다.
- 후반으로 갈수록 확실히 드라마가 강해진다. 호러로 출발해 서스펜스를 경유한 뒤 드라마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강동헌 정해진 것들이 꽤 많은 프로젝트였고 프로덕션 기간도 길지 않았다. 한달 정도 각색을 한 뒤에 현장에서 유연하게 수정한 부분도 많았다. 뒤로 갈수록 그런 지점이 늘어나서 아예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현장 편집본이 시나리오 초고라고 봐도 무방하다. 큰 줄기나 표현은 배우들을 믿고 가는 편이다. 나보다 훨씬 그 분야에서 오래 하신 분인데 당연히 나보다 이해가 높겠지. 내가 하는 일은 두 가지다. 서로의 그림을 맞추는 일, 그리고 애초에 프로젝트의 목적과 방향을 잊지 않는 일. 이번에는 제대로 대중적인, 익숙한 호러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다른 스탭들이 너무 과잉이고 노골적인 거 아니냐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윤상님이 “아니다, 감독님이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런 거다”라며 대신 변호해주셨다. 누군가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건 참 행복하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어깨가 무거웠던 것도 같고. 그런데 앞에서 그렇게 변호해주고 둘이 있을 때 이렇게 슬며시 표현하신다. “감독님 작품은 이렇게 빤하게 놀라게 하진 않았으면 한다”라며. 원래 아군이 더 무섭다. (웃음) 영화는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에 대한 책임, 제작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 그 틈새 어딘가에 개성을 녹여낼 수도 있겠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끝까지, 프로젝트가 원하는 방향으로 충실하게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다음 영화에서는 또 다른 걸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윤상 호러에 충실한 건 맞다. 나도 거기에 최대한 맞춰서 작업했다. 그러나 결국 색은 감출 수 없고 뒤로 갈수록 강동헌 감독의 색깔이 나온다. 특히 에필로그에 감정적인 표현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런데 하루는 편집할 때 갑자기 그걸 자르겠다는 거다. 그게 핵심이자 메인 멜로디인데!
강동헌 윤상 음악감독님은 일찍이 성공하셨기 때문에 대중성과 흥행에 대한 이런 절박함을 모른다. (웃음)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수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많았다. 마지막 추가 촬영 때 아역배우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발을 써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보는 내내 걸리는 거다. 어쩌면 나만 알아보는 디테일일 수도 있지만 한참을 고민했다. 그때 윤상 음악감독님이 몇초만 참아보라고. 다시 한번 보라고 적극적으로 말려서 편집하지 않았다. 지금 다시 보니 그 장면을 살리기 잘했다 싶다. <기도하는 남자> 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고 개봉 버전은 상영시간 때문에 12분가량 편집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생각이 짧았다. 배우, 스탭 모두 부산국제영화제 버전을 더 좋아했는데 몇명이나 더 볼 거라고 그걸 잘랐을까. 그렇다고 내가 엄청 작가적인 시선과 고집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예를 들면 어떤 현장에서는 똑같은 테이크를 수십번씩 가기도 하는데, 촬영 스탭으로 있을 땐 대체 뭐가 다르기에 그렇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감독이라는 자리에 서면 다른 게 보이는 건가 싶었지만 메가폰을 잡은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어쩌면 최선의 선택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달라지는 건 나 자신이 아닐까 싶다. 매번 선택하고 나면 가지 않았던 길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점점 홀가분해지는 기분이다. 할 만큼 했을 때 털어낼 수 있나보다. 이제 또 다른 챕터가 끝났다. 장편 데뷔를 해야 한다는 목표에 매달렸던 첫 영화, 그리고 대중적인 호흡과 장르에 대해 고민했던 이번 영화. 양쪽을 다 해보았으니 다음에는 좀더 솔직한 내가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한다.
- 사실 두분의 인연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강동헌 아주 오래전에 짧은 인연이 있었다. 예전에 이모개 촬영감독님의 촬영부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가수 윤상의 뮤직비디오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때 사인 CD도 받았는데 이번에 들고 가서 보여드렸더니 깜짝 놀라더라.
윤상 2003년 4월이었던 것 같다. 이런 게 인연인가보다. 어쩐지 <기도하는 남자>에 그렇게 끌리더니. (웃음)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만나는 거 아닐까. 이번 영화는 내게 성장과 배움의 기회였다. 이제야 감이 잡히고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감독님도 마찬가지면 좋겠다. 좀더 개성을 밀어붙여도 괜찮다. 이제 시작이다. 사실 작업을 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을 공유하고 대화가 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다. 어쩌면 나의 팬심으로 시작된 만남이기 때문에 그런 면이 더 충족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NYU를 다닐 때 영화음악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엔니오 모리코네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음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영화를 보고 음악이 생각나면 안되는 시대라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았지만 왠지 억울했다. 이번에는 그런 기조에 충실하게 작업했지만 다음에는 음악과 사운드의 경계에서 좀더 만족할 수 있는 균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강동헌 우리 시대의 천재 뮤지션이 나를 인정하고 지지한다는데 이보다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 마치 훈장 같다. 게다가 작업할 때는 그렇게 꼼꼼하고 치열할 수가 없다. 기술시사를 마치자마자 새벽에 작업실로 달려가서 바로 작업을 하고 새벽에 이거 어떻냐고 연락하는 분이다. 이토록 영화에 애정과 공을 쏟는 분이 함께해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봉준호 감독과 정재일 음악감독처럼 오래갑시다! 이 인터뷰 제목은 이렇게 해주세요. ‘윤상이 간택한 남자.’ (웃음)
윤상 극장에서 들었더니 작업실에서 헤드폰이나 스피커로 듣던 것과 차이가 나더라. 공간에 대한 고민이랄까, 결국 영화는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것이라는 걸 이번에 확실히 배웠다. 관객이 만나는 형태와 모습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감독님, 정재일 음악감독이 꼭 봉준호 감독하고만 작업하는 건 아닌 거 아시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