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번아웃과 무기력이 시대 언어인 세상에서 이토록 자유로운 '썸머 필름을 타고!'
2022-07-20
글 : 이자연

맨발(이토 마리카)은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한창 제작 중인 작품에 불만이 많다. 사랑한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해야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카린(고다 마히루)의 로맨스영화가 영 촌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맨발이 만들고 싶은 영화는 따로 있다. 바로 10대 사무라이 이야기. 맨발은 어릴 적 할머니와 사무라이영화를 우연히 본 뒤로 골수팬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맨발은 자신이 꿈꿔온 주인공의 모습과 똑 닮은 린타로(가네코 다이치)를 만나며 생각만 해오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목표도 세웠다. 축제날 게릴라 상영으로 카린의 영화 상영회를 망치는 것이다. 다소 비뚤어진 마음이지만 맨발은 동아리 친구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고 싶다.

영화 제작의 첫 번째 단계로 스탭 구성부터 시작한다. 오토바이처럼 자전거 조명을 화려하게 개조한 친구에게 조명감독을, 공 받을 때 나는 글러브 소리만으로도 누가 공을 던졌는지 알아맞히는 야구부 친구에게 음향감독을, 평소 능글맞고 노안을 자랑하는 친구에게 주인공 라이벌 역할을 제안하며 마침내 오합지졸 촬영팀을 완성한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영원히 지속될 꿈과 엉뚱한 소동, 다소 충동적인 목표와 주인공 곁을 지켜주는 다정한 친구 등 따뜻한 요소를 활용하여 10대의 초상을 그려냈다. 화면을 맴도는 푸르스름한 빛은 여름의 청량감을 고조시키고, 아이들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몽환적으로 비춘다. 특히 이토 마리카 배우의 분 단위로 바뀌는 표정은 들쑥날쑥한 맨발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10대 특유의 다변하는 마음과 사무라이영화를 향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영화가 청소년의 관계를 그리는 성숙한 방식도 눈에 띈다. 라이벌 관계인 카린과 맨발은 결국 감독이라는 공통분모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시기와 질투, 경쟁과 역전 등 이기고 지는 문제에 머물지 않고, 가장 외로운 자리에서 각자가 짊어진 고충을 알아보는 유일한 관계로 확장시킨 것이다. 이렇듯 <썸머 필름을 타고!>가 보여주는 학교 안의 보편적 경험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 가닿아 자신의 학창 시절을 반추하게 만든다.

맨발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킥보드(가와이 유미)와 블루 하와이(이노리 기라라)의 역동적이고 통통 튀는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자칫 붕 떠 보일 수 있는 SF 요소까지도 두 인물의 개입과 연결을 통해 안정적으로 녹여낸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재팬필름페스티벌 2022’ 온라인 상영을 통해 국내 관객에게 알려지면서 정식 개봉으로까지 이어진 작품이다.

“영화는 말야, 스크린을 통해 현재랑 과거를 이어준다고 생각해. 난 내 영화를 통해 미래를 연결하고 싶어.” (친구들에게 사무라이영화가 왜 좋은지 이야기하다 자기도 모르게 영화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맨발)

CHECK POINT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2005)

평범함의 끝판왕 스즈메(우에노 주리)는 길 위에서 우연히 손톱만 한 스파이 모집 광고를 발견한다. 얼떨결에 스파이로 낙점된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바로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평범한 주부로 지내기’. 어딘가 조금씩 허술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오합지졸 스파이 모임은 <썸머 필름을 타고!>의 귀여운 촬영팀과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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