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한민 감독 ‘한산: 용의 출현’ 27일 개봉
왜군 맞선 학익진 해전 승리 다뤄
용장 아닌 지장의 면모 초점
박해일, 이순신 고뇌·기품 재연
거북선 활약상 카타르시스 선사
한국판 ‘탑건’의 귀환
27일 개봉하는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은, 스펙터클한 액션 속에 승리의 역사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전작 <명량>(2014)에 이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형이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우리만의 ‘탑건’이 <한산>인 셈이다. 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 보름 만에 한양이 함락된다. 임금은 평양으로 파천하고 왜군은 임금을 쫓아 북진한다. 조선을 점령한 왜군의 다음 목적지는 명나라. 부산포에 진을 친 적은 백성들을 동원해 왜성을 쌓는다. 성안에는 적들이 들끓고 적들의 사기는 충천한다. 조선의 국운은 다한 것처럼 보인다. 임금은 의주로 또다시 피난을 떠나고 수군통제사 이순신(박해일)은 전세를 뒤바꿀 압도적 해전을 도모한다.
적의 수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는 ‘간자’(첩자)를 통해 왜군들이 두려워한 거북선의 도면을 손에 쥔다. 이순신은 조정의 도움도 없이 병력의 열세를 뛰어넘을 싸움의 방도를 고심한다. 1592년 여름, 철갑선을 보강한 와키자카는 이순신을 잡고 명으로 건너가기 위해 출정한다.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과 수군은 그 유명한 학익진으로 적을 맞으며 조선의 운명을 건 지상 최고의 해전을 벌인다.
<한산>은 56척의 조선 배가 73척의 왜선 중 47척을 격파하고 왜군 1만여명을 전사시켜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압도적 승리를 거둔 ‘한산대첩’을 영화화한 작품. 앞서 김 감독은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한산해전에서 ‘지장’(지혜로운 장수), 명량해전에서 ‘용장’(용맹한 장수), 노량해전에서 ‘현장’(현명한 장수) 이순신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산>은 시기상 <명량>의 전사(前史)에 해당하지만, 해상 전투 신의 거대한 스케일에서 오는 스펙터클한 쾌감은 <명량>을 능가한다. 특히 학익진 전술을 구현한 장면과 <명량>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거북선의 맹활약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난중일기>에 한산대첩이 발발했던 때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김 감독과 제작진은 학익진 연출과 거북선 구현에 특히 공을 들였다고 한다.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감독은 <명량>과 <한산>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는 “<명량> 때는 실제로 바다에 배를 띄웠지만, <한산>은 바다에 배를 전혀 띄우지 않고 (컴퓨터그래픽으로) 촬영했다. 그만큼 노하우도 쌓이고 기술도 발전됐다”며 “굉장히 통제된 환경에서 촬영했는데 그건 학익진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명량>의 초석이 있었기에 <한산>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산>의 해상 전투 신은 평창겨울올림픽 때 사용한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 지은 영상특수효과(VFX) 세트장에서 촬영했고, 오픈 세트장은 전남 여수 산속에 만들어 작업했다고 한다.
박해일, 변요한, 김성규, 안성기, 손현주, 김성균, 김향기, 옥택연, 박지환, 조재윤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한산>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도 이야기 흐름이 복잡하지 않다. 여기에 배우들의 호연이 극적 긴장을 더한다. <명량>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과 달리 유약한 이미지가 짙었던 박해일은 40대 후반의 이순신이 지녔을 법한 고뇌와 기품을 온전히 표현해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는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이순신의 슬픔과 피로가 짙게 드리운 것만 같았다. 박해일은 기자간담회에서 “<한산>의 이순신은 물처럼 어디에 섞여도 그 느낌이 비슷하길 바랐다”며 “이순신보다 이순신 주변의 배우들이 잘 드러나는 방식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이순신의 상대역인 와키자카 역할로 직접 일본어 연기를 한 변요한의 연기 변신도 눈길을 끈다. 캐릭터에 집중하기 위해 체중 증량을 했다는 변요한은 일본에서 실제 사용하던 사극 톤(고어)을 현지인의 검수를 받으며 공부해 연기했다고 한다. 변요한은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에서는 마주 보며 싸우는 것 같지만, 현장에서 각자 촬영하다 보니 박해일과는 촬영장보다 횟집에서 자주 만났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이에 박해일은 “수군이다 보니 바닷물고기를 많이 먹었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겼다.
한겨레 오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