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홍은미 평론가의 '로스트 도터'
2022-08-03
글 : 홍은미 (영화평론가)
기억한다는 것

영화를 본 다음날 별스럽지 않은 사진 한장을 바라보다 어떤 기억이 떠올라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로스트 도터>가 내 의식과 몸의 감각을 마구 자극한 결과일 것이다.

한 여인이 어둠 속을 서성이다 어느 둔덕에 선다. 배에 상처를 입었는지 블라우스는 피로 얼룩져 있고 몸은 휘청인다. 파도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그녀는 심각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러고선 이내 물가에 쓰러지고 만다. 그녀의 이름은 레다(올리비아 콜맨)다. 그녀는 온몸으로 불안을 견뎌내온 강인한 여성이자 명민한 학자이고, 두딸의 어머니이자 모성 신화를 보기 좋게 깨버리는 <로스트 도터>의 주인공이다. 레다는 까다롭지만 올곧고, 냉정하지만 열정적이기도 하며, 이기적이지만 공감력이 뛰어난 다면적인 인물이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젊은 한때는 가정을 버리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향하기도 하며 절대적인 모성애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살았지만, 모녀 관계의 절대적인 구속력에서 벗어나지 않고 결코 벗어나지 못한 엄마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영화의 오프닝 신에서 쓰러진다. 상처로 인한 쇼크 때문일까, 어떤 추락의 제스처일까.

영화는 사건의 전말을 서서히 드러내고, 레다가 쓰러지는 오프닝 신은 마지막 신과 이어진다. 밤은 이른 아침으로 바뀌고 레다는 밀려드는 파도에 정신을 차린다. 그녀는 배에 난 쓰라린 상처를 매만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딸들과 지냈던 젊은 시절의 좋은 추억 하나를 기억해낸다. 해변에서 딸들과 살갗을 맞대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배꼽에 관한 대화를 나눴던 순간이다. 만신창이가 된 현재 중년의 레다는 당장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이 그것뿐인 양 멀리 떨어져 있는 첫째 딸에게 전화를 건다. 첫째와 함께 있던 둘째 딸이 전화를 이어받아 통 연락이 닿지 않은 엄마가 “아주 죽은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다 “괜찮아요, 엄마?”라고 안부를 묻는다. 그러자 레다는 “응, 살아 있어”라고 답한다. 문자 몇통에 답하지 않았다고 호들갑 떠는 딸에게 응수하는 위트 있는 답변으로 볼 수 있지만, 단순하게 보기에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현재와 과거가 만날 때

레다는 살아 있다. 홀로 휴가를 떠난 그리스의 해변에서 니나(다코타 존슨)의 대가족과 마뜩잖은 일들로 엮이고, 잠시 실종된 니나의 딸 엘레나도 찾아주며, 스스로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엘레나의 인형까지 훔쳤다가 그 사실을 니나에게 실토해 그녀에게 선물한 머리핀으로 배를 찔리는 극단적인 보복을 당했어도, 레다는 살아 있다. 치명적인 상처가 아니기에 육체적으로 무리가 없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생생히 살아가는 걸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로스트 도터>의 동명 원작 소설(한국어판 제목 <잃어버린 사랑>)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레다의 마지막 대사를 “엄마는 죽었지만 잘 지낸단다”라고 표현했다. 이는 <로스트 도터>의 감독 매기 질런홀이 표현한 바와 다르게 다가오지 않는다. 엘레나 페란테가 표현한 죽음은 일종의 제의 의식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 과거와 다시 대면하며 분열된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엄숙한 과정을 이행한 레다의 내면 상태를 이르는 표현일 것이다.

생을 돌아본다는 건 모종의 고통을 동반한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한순간 심장을 움켜잡았던, 깊게 체험해서 두텁게 축적된 순간은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불현듯 출몰한다. 우리는 육체의 시간과 의식의 시간을 동시에 살아간다. 현재의 어떤 현상을 응시하며, 갑자기 풍겨오는 냄새에 반응하며, 어떤 사물이 안기는 촉감을 느끼면서 기억이란 이름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들에 가슴을 내맡긴다. <로스트 도터>는 중년의 레다가 보내는 휴가지의 풍경과 젊은 시절의 레다(제시 버클리)가 등장하는 플래시백 장면들을 오가며 현재와 과거가 조우하는 감미롭고도 고통스러운 상황을 집요하게 형상화한다. 레다의 현재와 과거를 매개하는 이는 젊은 레다가 느꼈던 동류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니나다. 그녀는 또 다른 이름의 레다다.

추억이 일깨우는 육체의 감각

레다는 불한당처럼 휴가지를 휘젓고 다니는 니나의 가족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니나와 엘레나만은 곧게 응시한다. 처음은 엘레나를 소중히 껴안고서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니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다. 모녀의 숭고한 사랑을 완벽하게 구현한 듯한 니나와 엘레나의 친밀한 모습은 레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들의 소박한 놀이는 레다의 기억을 자극한다. 엘레나가 니나와 인형에게 물을 적셔주는 모습을 지켜보던 레다는 갑자기 격한 감정을 느끼며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이 된다. 마음은 진정되지 않고 애틋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젊을 적 어린 두딸과 해변에서 오렌지를 껍질이 끊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깎아내며 그 껍질로 “뱀”의 형상을 만들어냈던 놀이에 대한 추억이다. 레다에게 과일 껍질로 뱀의 형상을 만드는 놀이는 엘레나의 인형과도 같다. 모녀의 사랑과 구속, 애정과 집착의 표상이다. 레다는 어린 두딸과 빛나는 순간을 만끽할 때에도 가정에서 도망칠 때에도 이 ‘뱀 만들기’ 놀이를 했다. 카메라는 니나 모녀의 놀이를 바라보며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레다의 얼굴과 추억을 손에 잡힐 듯이 포착한다.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며 순간 울컥하고야 말았다. 레다의 추억이 너무 아름다워서거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기억으로밖에 보존할 수밖에 없는 레다의 상실감을 헤아려서거나, 모녀의 끈질긴 구속력에 질식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레다가 니나 모녀를 응시하며 과거의 한때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어떤 이유로건 조여드는 순간의 전율이 전이되어서다. 그런 전율은 추억의 아름다움과 추함에 좌우되지 않는다. 아름답든 추하든 부끄럽든 간에 몸에 들러붙어 어떤 강도로든 육체의 감각을 일깨운다. 머리를 스치고 가슴을 조이고 움찔하고 때로는 눈물을 왈칵 쏟아내게 만든다. <로스트 도터>는 의식이 신체를 자극하며 육체의 시간과 의식의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감각을 날카롭게 일깨운다. 탁월한 서사와 카메라의 육체적인 시선과 밀도 있는 감정의 층이 절묘하게 만날 때 느낄 수 있는 전율이다. <로스트 도터>는 실험적이고 야심 찬 형식 없이도, 영화가 기억을 다루는 데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각인시키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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