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여름휴가철이다. 아직 아무런 휴가 계획도 세우지 못해 사랑하는 계절 여름을 회사에서만 보내게 될까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다녀온 사람 모두 낙원이라 추천하는 하와이는 어떨까? 당장 인천공항으로 달려가 “하와이행 비행기표 편도로 한장이요”라고 말해볼까? 요즘 하와이행 비행기는 만석일까? 궁금해서 항공사 직원에게 “이 비행기엔 몇명이나 탑승하죠?”라고 물어본다면… 앗, 이것은 바로 <비상선언>의 시작?!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은 바이러스 테러를 결심한 남자(임시완)가 하와이행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시작된다.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의 경우처럼 뚜렷한 이유와 목적을 찾기 힘든 현대의 테러를 다루는 이 영화는 손쓸 수 없는 재앙과 재난을 느닷없이 맞닥뜨린 사람들이 지상과 상공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4D 시사가 아니었음에도, 비행기가 끝 모르게 추락하거나 균형을 잃고 회전하는 장면에선 극장 좌석이 비행기 좌석처럼 느껴져 주먹을 꼭 쥐고 스크린을 응시했다. 김소미 기자는 “어떤 의미로 <비상선언>은 코리안 익스트림 시네마의 한 갈래이자 새로운 변용처럼 보인다”고 기사에 썼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어디까지나 재난의 당사자가 아닌 목격자의 자리에서 영화를 보게 되는 관객은 극도의 현실적 공포와 고통과 무력감과 피로를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후반부의 노골적 신파에 대한 반응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중후반까지 <비상선언>의 비행은 상당히 성공적이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소진, 김남길 등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비상선언>에서 초반부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임시완이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송강호는 왜 송강호이고, 이병헌은 왜 이병헌인지 어김없이 납득당하고 만다. 명배우들의 활약이 예상대로 믿음직하다면 임시완의 활약은 예상치를 벗어나 신선하다. 아쉽게도 이번엔 송강호와 이병헌 두 배우와의 만남만 허락되었지만, 이병헌 배우가 일말의 아쉬움을 채워주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임시완 배우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어 집에 초대해 같이 술도 몇번 마셨는데 캐릭터 연구를 위해 나를 묘하게 관찰하는 느낌도 있고 손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심오한 질문을 던져 나를 종종 곤경에 빠트리기도 하는 후배다.”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이병헌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든 임시완의 매력을 상상하게 되는 이 인터뷰를 읽고 혼자 크게 웃었다. 참고로 이번주 ‘아카이브’ 지면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 현장에서 찍은 22년 전 송강호와 이병헌의 사진을 공개한다. 아카이브 지면의 사진을 고를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신나게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앳된 얼굴의 송강호와 이병헌을 보니, 임시완의 미래가 슬쩍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나는 이번 여름휴가 갈 수 있을까? 하와이는 물 건너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