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을 상상하게 한다 '비상선언'
2022-08-03
글 : 임수연

“재난 상황에 직면한 항공기가 더이상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하여, 무조건적인 착륙을 요청하는 비상사태를 뜻하는 항공 용어.” 제목의 의미부터 명료하게 풀어낸 후 즉시 본론에 들어가는 <비상선언>은 주인공들의 즐거운 한때를 묘사하거나 빌런의 정체를 추적하는 재난영화의 공식에는 관심이 없다. 다짜고짜 사람들이 많이 타는 노선을 물으며 등장부터 수상쩍은 진석(임시완)을 일찌감치 노출시킨 뒤 무작위하게 선택된 생화학 테러의 대상자들을 점묘하듯 보여준다. 딸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비행공포증을 감수한 재혁(이병헌), 과거 재혁과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부기장 현수(김남길), 언제나 침착함을 잃지 않는 베테랑 사무장 희진(김소진) 등이 하와이행 KI501 항공편에 차례로 탑승한다. 지상에서는 비행기 테러 예고 영상의 진위 여부를 놓고 경찰들이 수사에 나선다. 본능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형사팀장 인호(송강호)는 용의자가 친구들과 하와이 여행을 떠난 아내와 같은 비행기에 있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비상선언>은 하이재킹이나 항공 재난을 다룬 할리우드영화보다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닮았다.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재난 앞에 놓인 인간 군상을 조명하며 한국 사회를 은유하는 태도가 그렇다. 밀폐된 비행기를 일종의 사회로 해석하는 인류학 실험에 그치지 않고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외부와 직접 소통할 수 있게끔 상황을 설정한 것은 <비상선언>의 텍스트를 보다 풍성하게 채색한다. 하지만 3분의 2 지점을 넘어가면서 노골적으로 짙어지는 신파 감성이나 착륙을 막는 장애물을 보여주는 납작한 방식은 이전까지 영화가 보여준 미덕을 흐릿하게 만들어 아쉬움을 남긴다. <관상> <더 킹>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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