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베르히만 아일랜드' 미아 한센뢰베 감독 "예술적 진실성을 품은 궁극의 장소를 찾아서"
2022-08-04
글 : 조현나

-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영화감독인 크리스(비키 크립스)와 토니(팀 로스) 커플이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포뢰섬으로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를 보며 포뢰섬에 대한 감독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때 매년 포뢰섬에 들러 작업하기도 한 것으로 아는데, 섬의 풍경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나.

= 잉마르 베리만의 존재가 묻어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아마도 베리만은 영화계 모두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일 터, 내 영화 인생에서도 늘 동행해온 존재다. 베리만의 삶과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0년 전부터이고, 그러면서 포뢰섬에도 강하게 이끌렸다. 포뢰섬은 베리만이 자신의 대표작을 몇편 찍었을 뿐만 아니라 말년을 보낸 장소이다. 말하자면 포뢰섬은 베리만과 관련된 예술적 진실성을 드러내 보이는 궁극의 장소인 셈이다. 포뢰섬에서 촬영된 베리만의 영화는 대부분 흑백이고 악몽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섬을 방문했을 때 느낀 건, 포뢰섬은 색깔이 있는 섬이라는 것이었다. 섬을 또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 방법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포뢰섬의 자연 또한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포뢰섬은 거대한 원시의 자연 앞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장소다.

-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크리스-토니 커플뿐만 아니라 크리스의 시나리오 속 주인공인 에이미(미아 바시코프스카), 조지프(앤더스 다니엘슨 라이)의 관계에 관해서도 세심하게 묘사한다. 감독인 크리스와 작품 속 인물인 에이미, 조지프가 서로 대화하는 상황을 통해 현실과 작품의 경계를 흐리는 부분들이 흥미로웠다.

=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창작하는 커플에 대한 영화이자 창작자의 사명, 그리고 영감에 대한 영화다. 이 요소들은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고 공존한다. 그렇기에 창작자의 영감과 커플에 관한 질문이 자연스레 오간다. 가령 영화를 만드는 커플의 이야기를 다룰 때, 두 사람의 관계에서 외로움과 동지애는 각각 어느 정도 바탕이 되어야 할까? 이런 요소들이 시나리오에선 어떻게 이야기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픽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과 관련된 영화, 다시 말해 현실에서 받은 영감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지, 창작자에게 영감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며 창작자는 이를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내는지 그 흐름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베르히만 아일랜드>다.

- 극중 크리스는 여성 창작자로서 작품 세계와 가정을 양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여성 창작자인 당신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 크리스의 말은 한편으로 내 의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을 돌봐야만 한다면,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작품들을 만들어내지 못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이자 한명의 인간으로서 밸런스를 잡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사명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의 희생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 캐스팅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팬텀 스레드>의 비키 크립스, <크로닉> <헤이트풀 8>의 팀 로스와 더불어 미아 바시코프스카, 앤더스 다니엘슨 라이와는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

= 미아와 앤더스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내정되어 있었다. 앤더스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작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함께하고 싶었다. 미아의 경우 영화 촬영 경험이 많음에도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얼굴이 좋았다. 그녀가 가진 이미지를 정말 좋아한다. 원래 크리스 역할에 그레타 거윅이 내정되어 있었다. 그가 아직 자신의 연출작을 발표하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레타 거윅이 감독으로 활동하고 <작은 아씨들> 촬영에 전념하게 되면서 결국 <베르히만 아일랜드>에 합류하지 못했다. 다시 크리스 역을 찾던 중에 <팬텀 스레드>의 비키를 보고 ‘이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어 출연을 제의했다. 다행히 빠르게 승낙해주어서 촬영에 임박했을 시점에 합류할 수 있었다.

- 영화의 결말까지 본 뒤론 자연스레 크리스와 토니의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두 사람은 예술적 동료이자 반려자로서 남은 시간을 함께할까.

= 크리스와 토니는 굉장히 복잡한 관계다. 커플로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려운 일인데 두 사람이 아티스트라면 어려움은 배가되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남자 창작자들은 주변에 상관없이 창작에 전념해왔다. 이런 상태에서 두 아티스트가 동등하게 산다는 건 쉽지 않다. 두 사람은 서로를 동료인 동시에 라이벌의 영역에 놓고 바라본다. 거기서 오는 긴장감을 유지한 채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둘은 부서지기 쉬운 관계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가 닫힌 결말일 때보다 열린 결말일 때, 작품 속 주인공의 존재를 믿게 된다. 그래서 내 작품에서도 일부러 스크린 밖의 공간을 생각하려 하는 편이다. 그래야 내 영화 속 인물들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와 토니도 마찬가지다. 둘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아직 어느 정도 이해심이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각자가 쓴 시나리오로 인해 생긴 틈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어떻게 계속 여정을 함께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두 사람이 결별한다 해도 그건 영화가 끝난 이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진제공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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