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스페이스]
[트위터 스페이스] 김혜리의 랑데부: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멋진 세계’
2022-08-12
글 : 김혜리
글 : 배동미
글 : 남선우
인간적 비극을 다룬 캐릭터 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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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imagolog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대학 시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 스탭으로 일한 배경이 있어요. 인연이 이어져 고레에다 감독이 니시카와 감독의 데뷔작 <산딸기>에 프로듀서로 함께했죠. 두 감독 모두 일본 사회에 대한 관찰을 기반으로, 궁지에 몰린 인간들이 겪는 실존적 고민에 대해 선명한 결론을 내기보다는 질문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왔습니다. 니시카와 감독의 전작으로는 <유레루> <아주 긴 변명> 등이 있습니다.

김혜리 @imagolog 니시카와 감독의 이번 영화 <멋진 세계>는 일본영화계의 안성기 배우와도 같은, 배우 야쿠쇼 고지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가 연기한 미카미 마사오라는 남성이 살인죄로 13년간 복역 후 출소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합니다. 야쿠자 출신인 미카미는 아내와 술집을 열고 민간인으로 살아가려 시도하던 중, 아내를 위협하는 다른 파 조직원의 폭력에 대응하다 상대를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관객은 여전히 억울함을 토로하는 미카미를 보며 그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까 염려하게 됩니다.

김혜리 @imagolog 미카미는 ‘범죄자’라고 할 때 우리가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사회학적 분석을 근거로 범죄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묘사되는 인간상에 가까워요. 그는 네살에 게이샤였던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시설에 맡겨집니다. 그곳에서 어머니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혼자 사회로 뛰쳐나온 후로는 소년원과 범죄 조직을 전전합니다. 그런 남자가 이제야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거죠.

<멋진 세계>

김혜리 @imagolog 감독은 미카미를 기다리고 있는 사회적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 남자의 상황을 관객이 체감하게 합니다. 우호적 변수는 전과자의 사회 통합을 위해 제공되는 최소한의 끈 같은 것들이죠. 너그러운 신원보증인 노부부, 공무원으로서 공명정대하려 애쓰는 사회복지사가 등장하고, 진심으로 미카미를 걱정하는 이웃들도 생깁니다. 한편 미카미의 사회 복귀를 어렵게 하는 요소들도 많습니다. 충분히 섬세하지 못한 제도들이 행정적 구멍을 만들고, 현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미카미 자신 안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가 형성해온 자아가 새 삶을 살기엔 너무 굳어져버린 거예요. 본성을 억누를 때면 높은 혈압 때문에 몸에 부담이 오기도 합니다.

김혜리 @imagolog 이 영화는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개인에 더 주안점을 둔, 인간적 비극을 다룬 캐릭터 스터디라고 생각해요. 결코 운이 좋지 못했던 한 인간이 변화를 위해 노력할 때, 그러나 그것이 교육, 인간관계, 기회의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늦어버린 시점에서야 이뤄질 때 얼마나 비애스러운지 영화를 보며 통렬히 느꼈습니다. 바깥세상에 반응하는 방식은 변화를 다짐한다고 해서 지울 수 없는, 몸과 정신에 남은 흔적인 거잖아요. 너무 늦은 시도들이 맞이하는 강고한 벽들을 체험한 것 같습니다.

김혜리 @imagolog 그래서 <멋진 세계>라는 제목이 역설적으로 느껴질 테지만, 미카미가 따뜻한 타인들과 연결되며 ‘멋진 세계’의 맛을 경험하는 순간이 이 영화에 없지 않아요. 물론 영화에서 개별적으로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더라도 전체의 이야기를 섣불리 낙관할 수 없게 하는 시각적인 안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강풍을 동반한 빗속에서 펄럭이는 초라한 빨래의 이미지 같은 숏들이 관객과 인물을 교감하게 하죠. 결말 또한 대화와 토론을 부추기는데, 마지막에 카메라가 영화를 빠져나가는 움직임에서 페이소스를 느꼈습니다.

<멋진 세계>와 함께 보면 좋을 작품

<반칙왕>

배동미 @somethin_fishy_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도 <멋진 세계>처럼, 웃고 나면 왠지 씁쓸한 감정이 올라오는 영화입니다. 전체적으로 코믹한 분위기지만 슬픔이 묻어 있다는 점이 비슷해요. <반칙왕>은 새 시대라는 희망에 더해 IMF라는 한국적 배경의 서글픔이 느껴지는 2000년에 개봉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할 법한 행위를 하는 상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은행원이 레슬링에 도전하는 이야기인데요. 이 영화 또한 주인공이 레슬링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구원받거나, 손쉽게 행복을 찾았다는 식으로 끝맺지 않아요. 대신 어떤 정신상태 혹은 소명의 시효가 다했음에도 캐릭터들이 붙잡고 있으려는 무언가에 대해 말합니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남선우 @pasunedame <멋진 세계>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던 인물들이 나누는 ‘평범함’에 대한 대화로부터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화두를 떠올렸습니다. 드러나지 않고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스파이의 속성을 범인(凡人)들의 생활에 적용하기를 권하죠. 우연히 스파이가 된 주인공이 은밀하게 요구받는 최초의 임무가 ‘평범히 살기’거든요. 그래서 주인공은 어떤 영수증이 가장 평범한 주부의 것으로 보일까 고민하며 장을 봅니다. <멋진 세계>가 평범히 살기가 가장 어렵다는 어른들의 오랜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면,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평범히 살기 위해 애쓰다보면 특별해질지도 모른다는 유쾌한 제안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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