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가수왕’ 남진, 74편 영화 찍은 ‘배우왕’이기도 합니다
2022-08-17
글 : 한겨레제휴기사 (한겨레 신문 제휴기사 등록)

[한겨레]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음악영화사적 관점에서 남진 재해석

남진 “원래 꿈은 배우…가수 데뷔 뒤 배우 꿈 이루려고 많은 영화 출연해”

남진이 출연한 1975년 영화 <가수왕>의 한 장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오빠 아직 살아있다~ 나 아직 살아있어~ 은빛 정열의 사나이~♬”

지난 14일 저녁 가수 남진(76)이 충북 제천 의림지 야외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며 첫 노래를 시작하자, 객석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굵은 빗줄기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졌지만, 비옷을 입고 “오빠!”를 외치며 노래에 맞춰 함께 춤추는 팬들도 눈에 띄었다. 신곡 ‘오빠 아직 살아있다’를 시작으로, ‘둥지’, ‘빈 잔’, ‘미워도 다시 한 번’, ‘나야 나’, ‘마음이 고와야지’ 등 인기곡 행진이 이어졌다.

이날 공연은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음악프로그램 ‘라이브 뮤직 토크’의 일환. 원래는 음악 공연에 이어 남진이 출연한 영화 <가수왕> 상영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폭우에 낙뢰까지 더해지며 공연 시작 50여분 만에 행사가 중단됐다.

비록 영화 상영은 취소됐지만, 공연 중간 남진은 가수 이전에 영화배우를 꿈꿨던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눴다. “사실 저는 어릴 때 꿈은 가수보다는 배우였어요. 학교 다닐 때 연극도 했었고. 그래서 가수가 된 후에도 제 꿈을 이루고자 많은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남진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다녔으며, 1965년 가수로 데뷔한 뒤에 1967년부터 1977년까지 십년에 걸쳐 약 7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한 해 7편가량이나 찍은 셈이다.

지난 14일 충북 제천 의림지 야외무대에서 관객들이 남진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김효실 기자

같은 날 오후 씨지브이(CGV) 제천에서는 연구자, 평론가들이 모여 남진과 가족밴드 ‘작은별’을 열쇳말로 1960~1970년대 음악영화사를 재해석하는 ‘한국영화사는 음악영화사다 2022’ 포럼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남진이 트로트 가수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입을 모았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쪽은 지난해부터 한국영화 역사를 음악영화의 관점에서 다시 써보자는 취지에서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발굴·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올해 남진이 출연한 영화 <고향무정>(1968, 박종호), <가수왕>(1975, 김기덕) 그리고 영화 <작은별>(강문수, 1975)을 복원해 영화제에서 상영했다.

맹수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포럼에서 “남진을 이번 포럼의 주인공으로 호명한 이유는 가수이자 배우로서 활약한 그의 10년이 영화산업과 음악산업이 상생을 모색하며 이른바 ‘타이-인’(tie-in) 전략을 구사했던 한국 대중문화의 한 시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남진’이라는 키워드는 1960~1970년대 한국 음악산업과 영화산업, 그리고 한국 음악영화의 특성을 규명하는 최상의 텍스트”라고 말했다. 남진이 대중음악계에서는 물론, 영화계에도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는 뜻이다.

지난 14일 열린 ‘한국영화사는 음악영화사다 2022’ 포럼 모습. 김효실 기자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발제문에서 남진이 출연한 영화를 멜로드라마, 무협영화, 코미디영화, 음악영화 등으로 분류하며 ‘배우로서의 남진’을 집중 조명했다. 당대 인기 가수의 영화 출연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남진은 이벤트성으로 영화를 찍는 가수들과 달리 배우로서의 이력도 충실히 쌓았다고 봤다. 이 평론가는 특히 고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가수왕>이 배우 남진 이력의 정점이자, 만듦새 뛰어난 음악영화라고 평가했다. <가수왕>은 인기 가수의 꿈을 이루고자 상경한 남준(남진)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드라마다. 이 평론가는 “가수 데뷔 초반부터 엘비스 프레슬리를 롤모델로 삼았다는 남진은 이전 영화에서 특별히 그런 면모를 보여준 적은 없다. 그런데 <가수왕>에 이르러 프레슬리에 대한 애정을 여러 장면에 표출한다”며 “화려한 복장에 앞서 별로 추지 않던 춤으로 흥을 돋우는 장면에서는 영락없이 프레슬리가 연상된다”고 밝혔다.

남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현재 남진은 한국 트로트를 대표하는 가수로 인정받지만, 데뷔 때부터 전성기에 걸쳐서 서구적인 팝송을 지향하는 모습도 함께 보여줬다. 대표곡 가운데도 ‘님과 함께’(1972), ‘그대여 변치마오’(1973) 등은 선율 진행과 악구 구성, 연주 패턴 측면에서 고전적인 트로트와 구분된다. 남진은 미국 가수 냇킹콜의 노래를 즐겨 불렀고, 선배 가수 최희준을 닮고 싶어했다.

남진 음악에 대한 발제를 맡은 김병오 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최성수, 신승훈, 조성모 등을 음악적으로 가로지르는 임영웅을 트로트 가수로 지칭하는 (지금) 시대에 남진을 트로트 가수로 정의하는 것이 크게 어폐가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당대의 관점에서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남진은 트로트 계열과 팝 계열 어느 한 계보로 치환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대중들의 마음을 판 크게 움직인 가요계 최고의 크로스오버 스타였다”고 말했다. 그는 “21세기 들어서 뒤늦게 재평가가 이뤄진 나훈아처럼, 남진 역시 새롭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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