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보고]
아날로그식 액션이 열차의 속도감과 만나다, '불릿 트레인'
2022-08-23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스턴트맨 출신 데이비드 리치 감독과 브래드 피트가 함께한 <불릿 트레인>

브래드 피트와 데이비드 리치, 두 이름의 조합만으로 영화를 기대하게 하는 <불릿 트레인>은, 탈 때와 다르게 마음대로 내릴 수 없는 급행열차 위에서 펼쳐지는 액션 코미디다. 전성기의 쿠엔틴 타란티노와 가이 리치를 보는 듯한 향수에 데이비드 리치 스타일의 액션이 주는 쾌감이 있는 B급 감성 여름영화기도 하다. <씨네21>이 데이비드 리치 감독과 배우 애런 테일러 존슨,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를 만나 인터뷰했다.

<아토믹 블론드> <데드풀2>를 연출한 스턴트맨 출신 데이비드 리치 감독의 신작 <불릿 트레인>은, <골든 슬럼버> <사신 치바>를 쓴 일본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소설 <마리아비틀>을 원작으로 한 액션 코미디다. 버킷햇과 점퍼 차림의 레이디버그(브래드 피트)는 전담 핸들러인 마리아 비틀(산드라 블록)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총을 지니지 않고 미션을 위해 열차에 오른다. “내가 하는 일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다”며 과거를 후회하는 듯한 그는 어딘지 나사가 풀어진 듯한 태도다. 레이디버그가 오른 열차는 일본 신칸센이 모델이 된 ‘불릿 트레인’(총알 열차)인데, 엄청난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급행열차다. 정거장마다 딱 1분만 정차하기 때문에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승하차가 쉽지 않다. 레이디버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열차 안에 있는 서류 가방을 확보한 뒤 열차에서 내리는 것, 간단하게 들리는 이 미션은 짐작할 수 있듯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맥거핀으로 의심되는 서류 가방은 의외로 쉽게 레이디버그의 수중에 들어오는데, 그다음 미션인 서류 가방 들고 내리기에서 자꾸 꼬인다. 사실 이 거대한 열차는 다종다양한 킬러들의 임무와 복수심이 얽힌 채 내달리는 죽음의 열차다. 저마다 다른 목적과 이유로 열차에 탄 프린스(조이 킹), 레몬(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탠저린(애런 테일러 존슨), 키무라(앤드류 코지), 울프(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즈 오카시오), 호넷(자시 비츠)은 고작 서류 가방 하나 들고 열차가 정차한 사이에 내려야 하는 레이디버그의 미션을 마치 게임 스테이지들을 클리어하고 끝판왕까지 무찔러야 나갈 수 있는 아득한 여정으로 만들어버린다. 데이비드 리치 감독이 “관객과 이야기를 이어주는 캐릭터”라고 설명한 레이디버그는 냉철보다는 나른한, 킬러답지 않은 킬러로, 총이 없기에 창의적일 수 있는 그의 액션 덕분에 피식 웃게 되는 코미디가 발생한다. 데이비드 리치 감독 특유의 아날로그식 액션이 열차의 속도감과 만나 더욱 화려해진 것도 <불릿 트레인>의 큰 재미 중 하나다.

<불릿 트레인>에서 가이 리치 감독의 <스내치>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원작 소설을 각본으로 옮기면서 일부 캐릭터들의 인종이 할리우드에 맞춰 특정되었지만, 배경과 전사, 일부 캐릭터는 소설의 설정을 그대로 따르는 까닭에 선택된 일본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열차라는 공간으로 인해 만들어진 속도감이 액션에 적용될 때 확연해지는 리듬감 덕분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은 역시 ‘불릿 트레인’인데, 소설에서 문장으로 묘사된 공간의 감각은 데이비드 리치의 액션과 만나 한층 매력적으로 부각된다. 길고 좁은 열차라는 공간의 한계는 데이비드 리치 감독에게는 도전이며 기회였다. “2시간 동안 좁고 긴 튜브 형태의 공간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승무원 칸, 식당 칸, 조용한 열차 칸, 이벤트 칸 등 각각의 공간에 어울리는 다른 스타일의 액션을 기획했다. 또 다른 도전은 플래시백이었다. 이 많은 킬러들이 한 열차에 타게 된 이유를 어떻게 보여줄지도 고민됐다.” 영화에서 플래시백은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전사를 엉뚱한 지점에서 연결함으로써 영화가 끝날 때가 돼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재미를 선사한다.

2020년 11월 촬영을 시작한 <불릿 트레인>은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소니픽처스 스튜디오의 사운드 스테이지에서 100% 촬영됐다. 열차를 대신할 긴 튜브 컨테이너 여러 개와 이 컨테이너들을 둘러싼 거대한 LED 월이 프로덕션에서 하드웨어를 담당했다면, LED 월을 통해 재생되는 도쿄에서 교토까지 담은 비디오는 열차가 달리는 창밖을 실감나게 구현했다. 영화에서 모두가 쌍둥이 해결사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만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코믹한 듀오 레몬과 탠저린을 연기한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와 애런 테일러 존슨은 팬데믹 상황이어서 만들어진 이 특별한 세트가 “진짜 일본을 달리는 열차 안에 앉아 있다고 믿을 만큼 그럴듯했다”고 입을 모았다.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촬영 중에 필요에 따라 컨테이너의 방향이 바뀌곤 했는데 그때마다 배우들은 열차의 정방향이 어디인지를 우선 파악한 다음에 액션의 방향을 정해야 했다는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일본 소설이 원작이 됐기에, <불릿 트레인>은 제작 발표 때부터 “화이트워싱”이라는 해묵은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원작자인 이사카 고타로는 소설 속 캐릭터들이 특정 인종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영화의 결정을 지지했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리치 감독은 앙상블 캐스트 중 일본 배우 사나다 히로유키가 연기한 노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는데 “수십년 전의 아픔에 대해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노인을 위해 운명과 우연이 어우러져 복수가 완성된다. 심지어 열차 바닥을 구르는 물병까지도 그를 위해 움직인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같은 이야기에 뿌리를 두었지만 영화의 종착역은 원작과 다르다. 원작이 무려 664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통해 진정한 악이란 무엇일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면, 영화는 2시간 동안 빠른 속도감과 시원한 쾌감의 액션 코미디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불릿 트레인>은 미국에서 8월5일 극장 개봉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사진제공 소니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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